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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Oct 18. 2016

자발적 복종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

600년전 라 보에시라는 18세 청년이 쓴 이 한권의 책이 자발적 복종의 굴레에 있던 우리에게 억압된 민주주의를 깨우쳐주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자유에로의 크나 큰 열망을 갖게 해준다는 사실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리고 전제적 군주정 아래에 있던 그 시대의 목마른 자유를 향한 한 청년의 간절한 언설(言說)이 지금 21세기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이토록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지 또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대단한 힘을 가진 척하는 한 인간의 명성에 홀리거나 마법에 사로잡힌 듯 목이 눌린채 비천하게 복종한다는 사실. 이는 대단히 놀라운 일이 분명하나 흔히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 마음 아프고 놀라울 뿐이다(36p)"


책의 서두에 나오는 이 문장을 읽고 저는 놀라 가슴이 두근 거렸습니다.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와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우리 일반 대중은 민주주의를 제데로 누려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비참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빼앗긴 자유와 권력으로부터의 억압이 너무도 당연한 습관처럼 살아왔습니다. 저항하기 보다는 안일함으로 수십년간 권력자를 향한 자발적 복종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간간히 자신이 그러한 처지에 있다고 생각하는 깨어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복종하는 자들을 구하기위해 자신을 희생하고자 했지만 오히려 그때마다 붉은 물을 뒤집어 쓰고 오히려 구하려는 자들로부터 매국이라 비난 받았습니다. 일제하의 독립군이 그렇고 민주열사들이 그렇습니다.


나만 아니면돼? 미안하지만 그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겪은 불행이 곧 내게도 올 수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합니다. 우리는 한사람의 대단한 힘을 가진 권력자 아래에 있는 국민이라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권력이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행한 폭력은 언젠가 고스란히 내가 똑같이 겪어야 할 불행이며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아이가 세월호를 타지않았다고 어찌 그들에게 일개 교통사고에 그리도 오랜 세월 저항할 수 있냐고 물을 수가 있으며 하늘이 무너진듯한 아픔을 겪은 부모들을 종북좌파라 매도할 수있을까요. 한낮 교통사고에 어떻게 300명이나 되는 어린 학생들이 깊은 바다속에 수장될 수 있는가라고 조금이라도 힘없는 그들 편에서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권력자가 잔인한 폭력으로 또는 교묘한 술책으로 우리의 자유를 옭아맬 수 있도록 스스로 허락한 셈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수많은 제 국민들을 간첩으로 몰아 법정에 세우고 고문하고 죽이고 민주주의를 억압했던 사람의 동상을 세워 그를 추모하며 유신의 그를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5.18의 살인마였던 자의 호를 따서 합천에 일해공원을 만든 자들은 그 옛날 폭군네로의 죽음뒤에 그가 베푼연회와 축제를 추억하며 죽음을 애도한 것과 다를 것없는 지독한 자발적 복종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귀족적 지위나 그들 독재자의 발밑에 업드렸던 고위층 말고도 그를 추앙하는 습관적 복종자들이 억압받는 우리 가난한 일반 민중속에도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통회할 일입니다.


"그대들 자신이 그대들 위에서 군림할 특권을 그에게 인정하지 않았다면 그대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그 많은 눈을 그는 어디서 구할 수 있었겠는가?......... 그대들이 그를 용인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가 감히 그대들에게 달려들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겠는가.......그대들은 그가 와서 짓밟을 수 있도록 탐스러운 과실의 씨를 뿌리고 있는 것이다. ..... 그대들은 그가 더럽고 비열한 쾌락에 파묻혀 호의호식하도록 온갖 고역에 자신을 길들이고 있다(52~53p)


한 농민이 일년전 공권력이 쏜 물대포에 쓰러져 외상성뇌출혈을 일으켜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병원에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그리고 권력은 그에게 병사라 주장하며 시신을 훼손하면서 까지 자신들의 잘못을 덮으려 하고 있습니다. 병사라 주장하는 의사는 살아오면서 배운 모든 삶의 가치와 생명의 존엄까지 포기하면서 권력자에게 낮게 엎드려 잘못된 충성을 하고있습니다. 그는 한사람의 권력자를 위해 히포크라테스를 버렸고 마음 한구석에서 절규하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그와 권력을 지지하는 왜곡된 언론이 있고 그것을 고스란히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일반민중의 어리석은 자발적인 복종이 있습니다.


야생에서 뛰놀던 말은 우리가 길들이려고 하면 재갈을 물어뜯고 박차에 뒷발질을 합니다. 마치 자신이 복종하는 것은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강압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고 적어도 그 최소한의 진실을 증언하고자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쉽게도 우리는 우리자신의 처지가 구속된 상태에 있으며 권력자에의해 농락당하고 길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국민을 어리석게 만들기위해 언론을 장악하고 큰일이 있을 때마다 그것은 공공의 복지와 안녕을 위하는 일이라며 그럴듯한 연설과 과장된 태도로 불행의 수렁으로 빠질 위기에 처한 국민들을 달콤하게 달랩니다. 우리는 그들의 간교한 술책과 그 상투적인 화법을 통해 바보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라 보시에는 독재자의 가장 패악적인 범죄는 민중을 우둔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의에 무지하고 정치에 무감각하게 민중을 길들이면서 선량한 국민으로 교화하는 것이라고 감언이설로 교묘하게 둘러대는 것입니다.


라 보에시는 단지 그러한 불합리한 현실을 견뎌내기를 멈추기만해도 권력자는 더 이상 우리에게 어떤 해약도 끼칠수 없다고 합니다.그와 싸울 필요도 없으며 민중이 권력자에 대한 굴종에 동의하지 않으면 독재자는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가 그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으면 된다고 합니다.오직 그를 지지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얼마전 파파이스를 보다가 스치듯 언급된 이 책이 내 뇌리에 꼿히게 된 것은 아마도 [자발적 복종]이라는 책제목이 주는 날카로운 시대적 깨우침에 다름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이 책은 역자 서문과 후기를 합쳐도 겨우 154페이지 남짓한 얇은 책이지만 이 책이 주는 가르침은 1000페이지를 넘어가는 그 어떤 책들보다도 더 명료하며 우리가 후손들에게 남겨주어야할 희망을 위한 도끼같은 깨우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는 이 책의 역자인 목수정씨가 쓴 서문입니다. 이 책을 손에 들고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더 이상 노예가 되길 거부하는 순간, 이 굴욕적인 세상은 사라진다. 스스로 복종한 자 그들은 독재자와 공범이다. 아무도 복종하지 않는다면, 독재자는 결코 그 어떤 권력도 발휘할 수 없다. 그가 지닌 모든 권력은 바로 자발적 복종을 바친 자들이 건네준 것이기 때문이다. 복종을 멈춰라. 그 순간 당신은 자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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