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피카르트
태초에 침묵이 존재했다. 아니 오직 침묵 뿐이었다. 침묵의 무게가 느껴지는가?
"침묵은 모든 것이 아직도 존재하지 않았던 저 태고적 부터 비롯되고 있는 듯하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직접 읽어주시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라고 책을 소개하는 서두에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침묵에 대한 에세이다. 가벼운 에세이 형식이지만 침묵의 무게 만큼이나 무겁다.
31편의 글들이 오직 일관되게 침묵 그것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
한꺼번에 읽어 나가기에는 침묵의 일설에서 오는 중압감이 너무나 컷다.
처음 수십페이지를 호기롭게 읽어가다가 이대로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은 느낌에 잠시 책을 내려 놓았다.
순간 침묵에 대한 온갖 연상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할 수있는 일이라고는 눈을 감는 일뿐이다.
고뇌를 위한 침묵이며, 침묵을 위한 침묵이다.
말(言)과 글은 침묵을 전제로 한다. 침묵이 전제되지 않은 말과 글은 소음에 가깝다.
세상의 모든 소음을 침묵이 집어 삼키며, 순간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바닥으로 내려 앉는 것을 느낀다.
소음속에도 침묵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의아했다. 그래서 침묵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무기다.
더구나 광장의 침묵은 모든 것을 개혁해 버리며 모순과 적폐를 세상에 까발리며 일순 바꾸어 버리는 혁명의 전조다. 100만이 모여 한가지를 외친다. 어둠이 깔리고 촛불이 반짝인다.
거기에도 과연 침묵이 있었다. 한덩어리 같은 침묵의 크기와 무게는 무서우리 만큼 거대하다.
촛불은 소란스럽지 않았다.
광장이 바라던 것들을 일관되게 한가지로 외친다.
거기엔 놀랍게도 침묵이 한켠에서 거들고 있었으며 촛불속에서 가늘고 그렇치만 무겁고도 힘있게 살아있는 것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불길의 그것과도 같이 크고 무서웠다.
마치 모든 말이 침묵으로 부터 쏟아져 나오는 듯하다.
침묵은 100만이 모인 광장에서 모든 시민의 한몸 한몸을 휘감아 싸고 마침내 그것을 시청하는 국민들에게까지도 그 무서운 침묵의 일갈을 느끼게 했다면 침묵은 생명일 수 밖에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다가온 이책으로 삶이 더욱 진지해진다.
말을 할때도 말을 멈춰야 할때도 그리고 군중속에서도 나혼자 고뇌하는 그 순간에도
침묵이 내 삶을 거든다. 침묵이 삶을 풍요롭게 하며 삶을 보다 진중하게 한다.
이 책에 대하여는 단지 느낌으로 밖에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침묵에 대하여 이전에 알았든지, 몰랐든지 간에 책을 펴든 순간부터 침묵은 그렇게 독자의 삶을 간섭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직접읽어보라고 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매일 한두장씩 읽어 나가다보면
어느새 나와 함께 살고있는 침묵을 고스란히 느끼게 될 것이다.
인간이 진리를 언어로 완전히 표현할 능력이 없다는 것, 그것은 인간 본질의 일부이다. 진리로는 완전히 채워지지 않은 말의 공간을 인간은 슬픔으로 가득 채운다. 그때 그는 한마디 말을 침묵으로까지 연장시킬 수 있고, 말은 그 침묵 속으로 함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