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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Jan 17. 2017

침이 고인다

김애란 소설집

김애란의 글은 오감적이다. 생활이 피아노의 음계(도도한 생활)가 되기도 하고, 지하철역의 이름이 시원한 숲(신림)이 되기도하고, 하늘에 펄럭이는 깃발(구파발)같아 지기도 한다. 어릴적 어미에게서 버림받은 생각이 나면 침이고이기도 하고, 여인숙의 침대에선 비리한 삶의 냄새가 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오감을 깨우는 삶의 지난함이다. 그러나 자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소시민의 삶이 그렇듯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가 사는 공간에서 소리가 나기도하고 같은 숲에서 같은 냄새를 가진 바람이 코끝을 스칠것만 같다. 삶의 연대가 아닐까? 누구든 그런 삶을 지나쳐 왔기에 같은 소리와 같은 냄새가 나는것이다.


통통튀듯 발랄한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서글픈 삶의 이야기지만 왠지 입가에 웃음이 묻어나기도 한다. 가벼움을 가장한 진지함은 깊은 생각을 만든다. 연주할 수도 없는 반지하 단칸방에 들여놓은 피아노는 자존심일까 아니면 덜어낼 수 없는 짐일까.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안고 가자니 모양이 빠진다. 그러다 장마철에 새어들어온 물이 방을 한강으로 만든 그 찰나 피아노는 허영의 도도한 자리에서 급격한 추락을 맞는다. 체르니를 배운다기 보다는 체르니란 말을 가지고 싶었던 화자는 어울리지 않는 피아노의 자리에 있던 애써 남이 봐주길 바랐던 그자리에서 내려올 수 밖에 없다. 그런다고 그게 내려와질까?


때마침 찾아온 언니의 헤어진 남자친구는 난장이 된 반지하를 더욱 어렵게 한다. 그 남자친구는 "성탄특선"의 여동생의 남자친구처럼 찌질하다. 있으면 걸리적거리고 없으면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악세사리(피아노)같은 연인이다. 주머니가 비면 사랑마저도 공간을 헤메고, 이솝우화의 신포도 처럼 아쉽지만 부담스러운 것이 될 뿐이다. 


김애란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들을 작가의 특별한 문체로 공감을 공유한다. 누구에게나 버리지 못하는 자존심같은 피아노가 있기 마련이다. 버리지 못하는 바이얼린이 될 수도 있고, 해석되지 않는 영자 신문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 중에 어울리지 않는 강남생활을 자신의 유일한 자랑거리인양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강남 사람을 따라가려다가 가랭이가 찟어 질 지언정 그 서투르고 우아하게 치장된 고급스런 삶의 언저리에서 내려오기를 끝내 거절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의 인생은 과장된 듯한 삶처럼 보인다. 그의 삶을 짓누르는 과도한 허영은  본인은 모르겠지만 비참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이 역설적이게도 내 자신에게도 있다는 사실은 슬그머니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은 저마다 낼 수 있는 음계하나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작가는 말한다. 누구든 자신의 소리가 있듯이 삶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자신들의 소리를 낸다. 하지만 그 많은 음계들이 하나의 화음을 내듯이 서로에게 버므려지고 녹아져 완벽한 화음으로 보여지게 하는 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란 것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누구든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여기는 또한 누구나 같이 살아야 하는 곳이므로 김애란의 글들에서 느끼는 공감의 끄덕임은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작가의 단편이 그리 어렵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8편을 읽으면서도 공교롭게도 장편을 읽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김애란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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