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의 사상을 옅보다.
평생을 한가지만을 생각 하며, 한가지 일만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분명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한 사람을 우리는 거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 거장이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사진작가가 있다면 바로 작가 최민식(1928년 3월 6일 - 2013년 2월 12일)이다. 최민식작가는 평생 사람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사람에 대한 진솔한 마음을 담아 그것을 사진으로 표현해 내었던 작가다. 그는 독창성이란 다른 사람들이 밟지않은 길을 처음으로 밟는 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금이 나올때까지 외골수로 자기가 선택한 곳을 팔 때 생겨나는 것이라고했다. 그는 대중들 속에서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진지하게 관찰하고 그속에 스며들어 있는 시대적 삶의 고통과 애환을 과감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 해냄으로서 과연 그 분야에 있어서는 독창적이라고 할만큼의 작가가 되었다. 그는 사진으로 호흡하고 사진으로 생각하고 사진으로 행동하며 살아왔다. 한마디로 사진으로 사회 현실에 투신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돈을 벌기위한 상업사진에 대한 유혹은 언제나 있었을 것이지만 무려 55년이라는 세월을 흔들림없이 서민들의 지난한 삶만을 찍으며 민중들과 함께 했었던 사진작가였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은 좋아하지만 사진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고 사진을 취미삼아 찍는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핏보기에 사진에 대한 책이라고 밖에 보여지지 않을 이 책을 읽게된 계기는 최민식이라는 작가의 이름과 정신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우연히 펼쳐보게된 이 책의 서문은 그가 사진작가임과 동시에 사상가란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다.
사진과 정신의 힘은 외면적, 감각적 인지와 달리, 내면적 요구와 관계된다. 정신은 "비감각적으로 이해되지만, 삶에 올바른 의미를 부여하는 어떤 인간적인 힘이다. 그것은 생각하는 자에게만 생겨나는 것으로 사진은 최소한 정신적 작업이어야 한다. (서문)
그동안 그가 펴낸 책들을 살펴보니 대다수가 사진작가 답게 사진집이 많았다. 하지만 이책은 사진에 대한 최민식작가의 사상과 정신이 담겨진 책이다. 군데 군데 사진이 실려 있기는 하지만 사진집이라고 할 만큼 많치도 깊이있게 감상할 만큼 크지도 않았다. 그저 작가가 찍은 사진을 설명하는 정도로서의 삽화라면 적당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 책은 최민식 작가의 사진에 대한 당신의 생각, 즉 사진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피사체와 공감할 수 있는 사진이란 어떤 것인가? 그리고 사진을 찍는 사진가는 어떤 생각과 사상을 가지고 창작활동을 해야 하는가 하는 작가의 물음과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창작예술의 보고와 같은 책이다.
그래서인지 사진이라는 말을 빼고 글쓰기이든 회화든, 조각이든 그것과 사진이라는 낱말 하나만 교체하면 대단히 뛰어난 그 분야 창작예술의 교본이 된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었다. 예컨데 어떻게 글을 써야하는가? 글을 쓰는 작가는 어떤 생각과 사상을 가지고 창작활동을 해야 하는가? 처럼 사진이라는 낱말을 공란으로 쳐두면 놀랍게도 그 분야 예술의 지침서 같은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예컨데 이책은 사진을 찍는 기술이라든지 하는 사진에 국한된 글이 아니라는 뜻이다. 소설이든 시든 그리고 그림이든 그것이 예술이며 문학이듯이 사진역시 문학이며 예술이었다.
"과거 위대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항상 그들이 살던 시대의 사회적ㆍ인간적 삶의 중요한 문제들과 사진을 가장 폭넓게 관련지어 생각했다. 사진의 본질에 대한 문제를 그 시대의 가장 절박하고 가장 근본적인 사회적 흐름 속에서 심오하게 추구함으로써 걸작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는 55년의 작가생활 중 오롯이 사람만을 진솔하게 표현하는데 평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이 작가 최민식의 작가정신이었으며 사상이었다. 그는 늘 현실과 시대의 문제들이 사진에 담겨야하며 그것을 보는 독자들이 작가의 생각을 공감하고 사회적 문제들에 대하여 함께 풀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사진은 역사이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록이 되어야한다는 점에서 과히 그를 대한민국 1세대 다큐멘터리 작가라 불리울만 하다.
글을 쓰는 사람 역시 사회적. 인간적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그의 서재에는 수많은 책들이 빼곡하게 차있다. 그의 서재는 그가 직감이나 천부적 재능 또는 숙달된 기술이 뛰어나서 사진작가로서의 명성을 남긴게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한다는 기술적인 면보다 수많은 인문학 서적을 읽으면서 사진이 표현해 내어야할 삶의 모습을, 공감하는 가슴으로 찍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이란 정신으로 진실을 생산하는 것이며 그래야 가치가 있는 것이란 것을 사진을 통해 말하는 작가였다. 그의 말들은 하나도 허언이 없었다. 오직 그가 그렇게 고집스럽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창작활동이란 결코 우연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끝에 대중들앞에 당당히 내놓을수있는 작품이 된다는 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무엇이 휴머니즘이며 무엇이 인간과 사회를 위한 정의인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어둠을 밝히는 것이 마땅히 작가적 사명의 하나라 할 때 현실을 떠나서는 작가로서의 존재가 무의미하다. 보편적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겉만 흩는 표현에서는 진실을 발견할 수 없다. 진실의 고발자로서, 참된 삶의 교시자로서 리얼리즘 사진의 사명은 지대하다. 사진 곳곳에 진실이 담겨야 하며, 그런 사진에서 우리는 심원한 기쁨을 찾을 수 있다" - 47p
우리가 쓰는 글 역시 휴머니즘을 담아야 하며 인간과 사회를 위한 정의를 작품에 녹아내어야한다. 이 또한 작가정신이 아닐까? 블랙리스트를 통해 통제하려는 자에게 굴복하여 그 통제에 스스로 검열하며, 통제하려는 자의 입맛에 맞게 시대를 표현한다면 더이상 그는 작가가 아니다. 최민식 작가는 정부로 부터 작품에 대한 부정적인 검열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가난한 이미지만 찍는 작가에게 왜 이런사진을 찍냐며 종북으로 몰기도 했다하니 지금이나 그때나 별반 나아진 것이 없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새삼 안타까워지기도 한다.
사진으로 사회정의를 말하며 정면으로 부조리한 사회에 맞서는 투사같은 느낌이었다. 작가는 늘 현실을 표현하여야 하며 사회를 고민하고 인생을 의미있게 조명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글을 쓰는 것이 부담스러워 지기도 했다. 더 잘 쓰고 싶기도 하고 매끄럽지 못한 글에서 느끼는 한계같은 것이 불쑥 올라오면 자못 당황스럽게 되기도 하고 써놓은 글마저도 그만 내려놓고 싶기도 했다. 최민식작가는 그럴 수록 더 많은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더 많이 찍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놓고 자신을 평가받아야 한다고 했다. 뛰어난 작품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우연히 완성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착오와 실패로 인하여 다듬어지고 완성되어 진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사진속의 현실과 현실을 반영한 사진, 그속에 녹아있는 작가의 정신은 늘 시대를 고민하고 인생을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동시대의 온갖 문제를 압축해 표현했으며, 우리는 그 치열한 과정을 통해 이룩된 정신으로부터 섬뜩한 삶의 교훈을 얻고 전율을 느낀다. 결국 감동을 주지 못하는 사진은 가치없는 사진이라 할 수 있다. (서문)
늘상 부족한 것은 삶과 인생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내 자신의 정신이며, 맥락없이 오락가락하는 확고하지 못한 어설픈 사상은 쓰는 글마다 어쩔수 없는 졸작이 되게 한다. 움직일 수 없고 흔들릴 수 없는 날선 작가정신을 무었으로 삼아야 하는가 하는 것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최민식 작가의 작가정신이 사람이었던 것처럼 나 역시도 글을 쓰는 동안 담아야 할 그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목적지가 정해져야 그 길을 가는 방법에 대하여 고민해 볼 수 있는 것이니 과연 무엇을 담아 써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이 글쓰기의 최상의 정신이 될까 하는 것은 모든 글쓰기의 가장 기본이라는 것을 최민식작가의 글을 통해서 알게 된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볍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시민의 북복종]에서 쓴 글이다. 최민식 작가의 글에서 느껴지는 인간과 정의에 대한 존경심이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이 글과 왠지 맞닿아 있는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