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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Mar 07. 2017

방향 없는 아포리아의 시대

심판을 기다리며......

길이 없는 아포리아의 시대에 우리는 미래에 대한 절박함 속에 있다. 몇일 따뜻한 봄기운이 긴장된 근육을 노곤하게 하더니 오늘은 난데없이 눈발이 날린다. 출근길의 새벽은 잔뜩 흐려있었고, 라디오에서 들리는 뉴스소리는 귓전에서 차갑다. 눈을 감아도 깊은 잠속에 빠질 수없는 나는 문득 아포리아라는 말을 생각해내었다. 막다름의 시대, 길이없어진 난감함 속에 서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눈꺼플이 가늘게 떨리고, 유리창을 겨우 들어온 태양은 그 얇은 눈꺼플도 뚫지 못하고 절박하게 막힌 길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절박함속에서도 혼돈의 그 어둡고 텅빈 공간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는 자궁처럼 거대한 움직임을 잉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상상한다.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무수한 적폐들은 이제 오랜 시간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스스로 자정한 역사와 시민들 앞에서 그 근원적 맨몸을 드러내 놓고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매번 반복되는 비극의 순간에도 한놈만 한놈만 미안하다고 해라 했던 어느 트럭기사의 비애 섞인 절규가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를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슬픈 안갯속에서 참담하게 했지만 결국 아포리아는 그 절박함의 막다름에서 다시 시작하게 할 것이다.


실패한 정치꾼들은 자신의 욕심과 무관심으로 빚어진 아득한 아포리아에 대한 책임보다는 오히려 역정을 내며 한 정치인이 주관했던 더러운 잠을 도구삼아 이제 이걸로라도 딛고 일어서야겠다며 후안무치의 일갈을 쏟아냈었다. 불과 얼마전만해도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야쿠자 코스프레하듯 무릎을 꿇고 거짓 용서를 빌었지 않은가. 그들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의 기억력을 무시해도 좋을 짐승의 수준으로 여기며 속으로 음흉한 웃음 짓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그 거짓되고 꼼수 같은 속삭임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아주 작은 의심에 조금쯤은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지난 3개월은 아무 책이나 읽다가도 부지 간에 불쑥 튀어나오는 참담함이 비탄의 눈물을 쏟아내게 했다. 차가운 눈처럼 떠있는 별을 보며 걷는 새벽의 길위에서, 비탄에 젖은 영혼은 날마다 생각이 깊어졌다. 서서히 눈뜨고 있는 정신과 정의에 대한 갈구함이 그동안 정치에 있어서 만큼은 문외한에 불과했던 수많은 우리에게 시대와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요구한다. 이렇게 된 것 또한 그들의 실정 탓도 있으니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결국 아포리아는 우리가 막다름에 와 있다는 사실을 자각시키고 또한 그 막다름에서 체념하기 보다는 더이상 나갈수 없는 막다름의 길을 개척하고자 한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두렵지 않다. 많이 참아야 할지도 모른다. 수많은 경제적 지표들이 거꾸로 곤두박칠 칠지 모른다는 겁박에도, 종북이든 좌파든 진영을 갈라 몰아붙이는 거짓 속임수에도 이제는 적어도 당당히 사람처럼 취급을 받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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