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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Feb 27. 2017

나의 아름다운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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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이제 막 수십번째의 가을이 지나가고 또 다시 수십번째의 겨울을 맞기 시작한 2016년의 10월말 금요일, 나는 광장에 있었다. 양심과 정의가 폐부 깊숙한 곳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지는 머릿속의 이성이 뒤늦은 나이에 펄덕이기 시작한 심장과 함께 나를 광장으로 몰았다. 하지만 하루종일 나는 고민했었다. 그곳의 낮설음이 주적거리는 나를 어설픈 이방인으로 만들어 버리지나 않을까하는 기우였다. 아득하기만한 30년전의 광장을 떠올리며 호기롭게 직선제를 외치던 모습은 이제 어정쩡한 중년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그날의 간절함과 지금의 간절함이 같을 수 있을까?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젊은 청춘의 외침보다는 오히려 오늘의 분노가 더욱 간절함을 느끼게 했었다. 그때 나의 외침이 치기어린 청춘의 분노에 의한 내지름이었다면, 지금의 분노는 어긋나버린 정상과 비도덕이 숨겨지는 사회, 비극적인 정의의 파괴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어리석었음에 대한 분함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분노는 오히려 논리적었으며 외쳐야할 모든 구호들에 공감하는 당위성이 있었다. 그러한 감정들이 뒤섞여 마침내 자칭 변절했던 가짜보수는 광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광장에 혼자 나온 나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디에 어떻게 자리를 잡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30년전의 그때는 그저 호기롭게 서서 외치고 경찰의 최루탄에 쫏기고 뛰고 어깨동무를 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 되었다. 그들은 모두 나와 같은 동년배였고 친구였고 누구나 다 동지였다. 하지만 오늘은 멋진 공연을 보러나온 것처럼 우선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야했다. 나눠주는 손피켓을 받아야 했고, 무었보다도 촛불을 들고 불을 붙여야했다. 그러므로서 나는 광장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앉아서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엄마, 중고등학생들, 청년들, 나이든 어르신들, 참으로 낮선 광경이었다. 이들은 모두 어디에 있다가 이곳에 나온 것일까?


주볏거리며 허둥대고 있던 나를 향해 누군가가 다가와 피켓과 일회용컵이 씌어진 초를 내밀었다.  


신랄하고 예리한 분석을 거부하는 애국심에는 윤리적 역설이 내재되어있다. 왜냐하면 애국심은 개인의 희생적인 이타심을 국가의 이기심으로 전환시켜버리기때문이다. 분단 이후 권력은 국민의 애국심을 기만하여 자기의 욕심을 채웠고 그렇치 않은 다수의 국민을 반애국자 또는 좌파 종북세력으로 몰아 그들 권력의 배를 채우는 도구로 사용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하나가 무대에 올랐다. 적어온 것은 있지만 발언하는 내내 눈이 그리로 향하지 않는다. 격앙된 목소리지만 차분하다. 어린 지성의 목소리는 5분여 동안 계속됐고 듣는 청중들은 이내 부끄러운 환호성으로 답했다. 입안에 모래가 씹히는 것처럼 자그락 거린다. 사회자가 나와 구호를 외친다. 구속하라, 구속하라, 구속하라. 내재된 분노가 터져나와 머리에 핏줄이 서도록 외쳐야 함에도 갑자기 숨이 막히는 것처럼 소릴 지를 수 없었다. 어색했다. 지난 30년동안 한번도 해본일이 없으니 어색한 흉내처럼 되어버린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누군가 나를 궤뚫어 보는 것처럼 느껴졌고 내 모든 과거를 틀킨 것처럼 당당할 수 없었다.


나의 첫 광장의 시작은 그런 어설픔이었다. 첫구호를 외친다.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난 내 안에 있는 분노를 모아 외칠 수 있었다. 함께 한 광장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와 함께 어두운 밤하늘을 촛불과 함께 밝히고 그 목소리가 수백킬로 떨어진 그곳까지 들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광장은 권력을 가진자와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에게는 평화의 광장이 아니다. 광장의 지성과 이성은 그들의 평화를 무너뜨리는 테러행위이며 도전이었다. 


나는 그런 광장에서 아름다운 지성의 모습을 보았다. 21세기 이전의 일반민중의 지성이 권력이나 국가가 위협을 느낄 만한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그것은 분명 달랐다. 수십년을 거쳐오는 동안 대중은 많은 교육을 받았고 그 교육의 결과로서 평범한 국민들 또한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와 올바른 국가관이 무었인가 하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광장에서 외쳤고 광장의 지성을 예측하지 못했던 국가와 권력은 자신의 어리석었음을 고스란히 들킬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권력은 그 아름다운 지성앞에서 이전에 해왔던 습관처럼 폭력과 강압이라는 무력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광장의 지성은 조용했지만 무서웠고, 잔잔했지만 산을 덮을 만한 파도와 같은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신사적이었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파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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