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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Mar 27. 2017

날마다 비워지는 우편함을 소망함

저녁 7시 아파트 현관문앞에서 나는 지친다. 하루종일 귓가에서 웅얼대던 무수한 언어들의 소음과 촘촘하게 얽힌 뇌세포를 자극하는 비릿한 생각들. 그 속에서 나는 굽어진 등을 펴지 못하는 부끄러운 패잔병이다. 암호를 떠올리 듯 네자리 숫자의 번호를 누른다. 순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번호는 본능처럼 손가락에 각인되어 있었으며 두려움 속에서도 손가락은 각인된 기억을 따라 저절로 움직인다. 기특한 손가락이다. 첫번째 번호를 누르면서 문득 누군가가 번호를 바꿔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의심을 한다. 겨우 3명 밖에 되지 않는 식구들 그 작은 울타리 안에서도 소외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당황스럽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그들의 존재가 없으니 난 존재하는 것일까. 


지난밤 읽던 이기적 유전자가 나의 진화를 더듬게 한다. 나는 진화했을까 아니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중일까. 태어난 후 부터 수십년을 살아오던 내 삶의 진화는 온전한 법칙대로의 진화였을까. 진화론자들의 수억년이 내가 살아온 수십년의 시간 속에도 과도하게 압축된 채로 존재한다. 하지만 지난 삶이 대체로 좋진 않았다. 이기적 유전자는 자신의 존재를 생존기계에 맡겨 수없이 많은 세대동안 자신을 발전시킨다.  유전자는 죽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더 먼 세대까지 전하기 위하여 무수한 복제를 한다. 우성인자는 발전시키고 열성인자는 가차없이 죽여버린 복제된 이기적 유전자는 오늘도 그렇게 열심히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곰곰히 생각해봐도 성공한 유전자는 아니었다. 결코 이기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았다. 게으른 유전자는 도무지 지난 삶에서 단 일보도 전진하지 못했다. 벌써 늙어가고 있으니 진화하기도 전에 퇴화되고 있는 것인가. 흔들리는 시선으로 보이는 현관문이 열지못하는 높다란 벽처럼 느껴진다. 이벽을 뚫고 저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다. 저안은 피안일텐데 실패한 유전자는 그곳을 안전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승강기없는 저층아파트의 불꺼진 계단을 두고 터벅터벅 불안한 걸음으로 힘겹게 올라온 이곳은 단세포같은 본능이었다. 


공중으로 뜨는 느낌이다. 영혼만 남은 허공으로 두번째 번호를 누른다. 물리적인 느낌이 없다. 그냥 도어락을 뚫고 지나가는 허상과도 같다. 손 끝에는 감각이 없고 삐하는 소리만 있다. 그 소리는 언제나 낮설다. 나는 외롭다기 보다는 혼자라는 것에 더욱 익숙했다. 갑자기 아래층 남자가 생각났다. 그집은 늘상 비어있다. 우편함에 수북히 쌓인 알 수 없는 소식들을 그는 기다리지 않았다. 혹시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이미 고독하게 죽어있지 않을까하는 싸늘한 걱정들이, 한번씩 비어지는 우편함을 볼때마다 오지랍넓게도 같이 비어진다. 그를 본적이 없다. 함께 살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신뒤로는 그집에 사는 사람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 마치 한층이 비어버린 듯한 그곳을 지날때면 생각은 두번째 번호를 누르는 허상의 손가락처럼 통과한 벽너머의 허공을 찌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씩 비어지는 우편함과 더불어 나 역시도 비어버리는 것은 참 다행스런 일이다. 우편함이 비어지면 그집은 사람의 온기가 조금씩이라도 쌓이는 것일까. 혼자서는 채울 수 없는 그 공간을 그는 한번씩 집으로 올때마다 채우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는 내가 가끔식 자기를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냥 그렇게 비워지고 부터 하루쯤 지나고 나면 우편함에는 하나 둘씩 우편물이 쌓여갈 것이다. 내 생각과 함께.


3월 중순인데도 덜컹거리는 계단창문틈으로 들어온 바람은 날카롭다. 세번째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을 바람은 베어버릴 것처럼 휘익소리를 내며 스친다. 순간 도어락에서 손을 뗀다. 등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네번째 번호 누르기를 잠시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무언가 희끗한 것이 안경너머 한쪽으로 없어진다. 무엇이었을까. 요즘은 지독한 금단증상처럼 그러한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금연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무엇때문인까. 이불위를 꾸물꾸물 기어가는 벌레들, 몸을 타고 오르는 오싹한 한기들. 때론 방구석에서 누군가 빤히 쳐다보는 것 같아 고개를 돌리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비현실적 그림자들. 그것들 처럼 암호를 누르는 그 순간에도 앞집의 현관문앞으로 무언가가 슥하고 지나갔다. 앞집은 아래층과 달리 자주 소란스럽다. 부부의 싸우는 소리가 기세좋게 아무런 부끄럼도 없이 그집 현관문과 우리집의 현관문을 뚫고 들어올때가 많다. 키우는 조그만 개의 앙칼지게 짓는 소리와 함께. 그들은 그집에서 방금 빠져나온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본적이 있을까. 가끔 마주치긴 하지만 눈인사 조차 하질 않는다. 벌써 수년째 앞을 마주하고 살지만 보이지 않는 헛된 존재들 처럼 그들은 지날 때마다 고개를 돌려도 볼 수가 없었다. 


네번째 번호를 누르고서야 높다란 벽은 무장해제를 하고 나를 안으로 들일 수 있다는 신호를 한다. 삐리릭. 손잡이를 돌리고 무거운 현관문을 열었다. 환히 불켜진 거실을 생각했지만 숨막히는 어둠만이 있었다. 거기엔 번호를 바꿀 가족들도 없었고 다만 흔적들만 흩어져 있다. 겨우 21g 쯤되는 영혼들이 남아 하루동안 지친 내 손을 반갑게 끈다. 세상에 갇혀있던 나는 다시 내 집에서 세상으로 부터 갇힌다. 세상으로 나가는 문은 암호가 없다. 그저 열림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된다. 그럼에도 세상은 더 갇혀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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