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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Apr 15. 2017

책읽는 주말

정유년, 새로 시작하는 일년이 4개월째로 접어듭니다. 3개월 남짓동안 27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작년 한해엔 100권정도를 읽었는데 읽는 속도가 작년에 비해 조금은 빨라진 듯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읽은 책의 스토리나 마음을 흔들었던 문장들은 책을 덮고 얼마지 않아 잊혀집니다. 그래도 무조건 읽습니다. 철드는 것처럼 느지막히 찾아온 즐거움이 그저 그렇게 지내왔던 지난 세월을 아쉬워 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읽고 말겠다는 호기로운 치기도 아닙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만큼 젋지도 않지만, 그냥저냥 지내다보면 인생이란 것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작은 조바심 때문입니다.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현실의 생각들과 얽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저런 잡념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눈은 인쇄된 활자를 따라가지만 정작 생각은 엉뚱한 곳에서 헤멥니다. 그러다 보면 정갈한 문자 역시 뒤죽박죽이 되어서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됩니다. 한페이지를 송두리째 잊어버린 적도 많습니다. 기억나는 곳을 찾아 뒤적거리다 보면 알콜성 치매라고 놀리는 직장 동료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그냥 한자리에 앉아 인내심을 함양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럴때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주말을 오롯이 책과 함께 보내기로 했으니 봄창을 열고 따뜻한 바람과 느긋한 햇살에 눈한번 감아주는 것도 괜찮다 싶습니다. 하늘은 맑습니다. 어제는 4월이었어도 추웠는데 오늘은 4월인데 너무 덥습니다. 갑자기 여름이 느껴지는 열기가 당황스럽긴 합니다만 계절이란 것이 늘상 봄은 언제 였는지도 모르게 오고가는 것이라 덤덤합니다.


쓰기위해서 읽기도 합니다. 브런치에 49개의 글이 올려졌습니다. 지난 글을 볼때면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팬티를 벗고 남앞에 선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부끄러워집니다. 알몸으로 선 글들은 영문을 모른채 황급히 이곳저곳을 가리며 위태롭게 서있습니다. 거기엔 문학관도 인생관도 없어보입니다. 맥락도 없어보이고 마치 어린아이가 투정부리듯 소리만 질러뎁니다. 어디서 훔쳐왔는지도 모를 표절하고 도굴된 글들이 어울리지 않는 옷마냥 어색하게 보입니다. 몇일 지나면 그 어색하게 서있던 글들도 바닷가 모래집들 처럼 한꺼번에 허물어집니다. 무라까미 하루끼는 새벽운동하다 갑자기 책상으로 달려가 17시간동안 글을 쓴적이 있다고 합니다. 정말 무섭도록 부러운 작가입니다. 17시간을 읽는 것도 힘든데 17시간을 정신없이 쓰다니요.


책을 읽다보면 쓰고싶은 욕심이 일어나곤 합니다. 하지만 막상 글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막연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읽는 것을 도와줄 잔잔한 재즈와 한잔의 아메리카노는 막상 쓰려고 하는 일에는 그렇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컴퓨터 자판위에 올라간 손가락들이 멍하니 한곳을 바라보는 눈처럼 제자리에 멈춰 서있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많아서 그런지 읽던 책을 덮고 컴퓨터 전원을 넣기가 쉽지 않습니다. 격하게 글을 쓰기엔 많이도 모자란가 봅니다.


글쓰는 것은 언어의 기록이라고 이태준의 문장강화 첫장에서 말합니다. 언어가 시각화된 것이 문장이라는 것입니다. 말하듯하는 글쓰기를 한다면 참으로 좋을 것같습니다. 머리속에서 빙빙 돌기만하는 혼란의 문자들이 뇌를 타고 가슴을 지나 손가락에서 춤추듯 써지는 아름답고 가지런한 문장들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읽고 쓰는 것으로 남은 삶을 채우고 싶다면 너무 큰 욕심일지는 모르겠으나 하루하루의 삶의 의미를 글로 만들어 간다면 그만큼 더 풍성해질것 같습니다.


요즘들어 나도 모르게 문득문득 올라오는 감성적 생각들이 마음 한구석을 자극하곤 합니다. 세월호도 그렇고 플랜이라는 시사다큐를 보고서도 뭉클하게 올라오는 슬픈 생각들이 메말랐던 눈물을 나게 합니다. 살아온 시간들도 그렇고 살아갈 시간들에 대한 알 수없는 감정들이 전에는 보이지 않던 봄꽃들에도 감정이입이 되곤 합니다. 누구는 사춘기에 빗대어 오십춘기라고 합니다. 사춘기 같은 오십이란 나이에 읽고 쓰는 일이 어렵긴 해도 이제껏 해온 어떤 일보다 더 마음이 즐거운 것을 보면 작가는 못되도 아류는 되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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