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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Apr 24. 2017

작은 것이 아름답다

직경이 5밀리가 않되는 꽃들이 봄빛 찬연한 아스팔트 한 귀퉁이를 보금자리 삼아 작은 망울을 터뜨립니다. 봄이란 것이 흐트러지게 피는 벚꽃에만 오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눈빛 뜨거운 큰 눈망울 같은 목련에 만도 아니었습니다. 너무 작아서 관심을 두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작은 들풀들이 눈에 띄지 않는 삶의 귀퉁이에서 수줍게 존재감을 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꽃이라고 불러주지 않으면 꽃이라고 할 수 없는 작고 비천한 꽃들은 누가 피워내지 않아도 그렇게 스스로를 아름답게 피우고 있었습니다.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화단에 있으면 그저 잡풀이라고 뽑아버릴 뻔한 그 꽃들이 어느 순간부터 눈에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어느 순간 보이기 시작했다면 살아가는 것이 얼마쯤 여유로워 졌을거라는데 오히려 여유보다는 삶에서 느껴지는 각박함과 치열함이 내게 작은 것들을 볼 수 있게 하는 것같습니다. 도무지 인생이라는 것이 더 이상 좋아질 기미가 없다고 느꼈을 때 바람에 살랑 떨고 있는 작은 꽃들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것들은 옹기종기 햇볕 좋은 곳에 몫을 잡고 하나 아니면 둘 정도씩 일정한 거리도 없이 듬성듬성 피어있었습니다. 


희고 작은 꽃망울들이 옹기종기 붙어 마치 부케같은 그 자그마한 꽃들은 5월의 신부처럼 수줍기만 합니다. 노란꽃들은 원색의 완벽한 노랑이어서 유채꽃의 화분처럼 스치기만해도 온통 노란 물이 들것 같습니다. 근시인 나는 최대한 허리를 굽히고 쪼그리고 앉아야만 자세히 볼 수있는 그런 꽃들입니다. 쪼그리고 앉은 나의 시선은 꽃들 사이를 더듬고 더듬어 그 꽃들의 아주 작은 수술마저도 완전하게 보려고 하는 것처럼 간절했습니다. 꽃들은 놀랄만큼 정교했습니다. 꽃잎들은 정확한 모양으로 한송이를 이루고 수술과 꽃가루는 나비와 벌을 불러들이기에 가장 완벽한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꽃들 틈에서 향기같은 노래소리가 나는 듯했습니다. 피부가 느끼지 못하는 가느다란 바람에도 약하게 흔들리는 꽃들은 교태가 섞이지 않았음에도 그 미묘한 간드러짐이 봄꽃의 그 어느것에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아름다움을 본다는 것은 일체의 감각적 연을 끊고 영혼을 정화하여야 한다 합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정화된 영혼이 작은 꽃들을 아름답게 보여지게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여린 꽃들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으로 영혼이 정화되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꽃으로 다가간 것이 아니라 꽃이 나를 불러 무릎을 굽히고 앉게 한 것입니다. 


때론 기억상실증에 걸려, 보여지는 삶의 모습들을 매일 경이롭게 생각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전에 보았던 것들을 마치 오늘 처음 본 것처럼 놀라고 즐거워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작은 꽃들은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영원히 아름다울 것 같았습니다. 꽃을 바라보던 나는 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 아름다움이 혹시 그리움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오래전의 일들 그러나 지금은 생생하게 기억해내지 못하는 사랑했던 사람의 일들이 생각났기 때문에 이 봄에 사뭇 그 작은 꽃들에게 간절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이미 기억상실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전에 있었지만 지금은 곁에 없어진 것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혼자라는 것이 몹시도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그러자 봄볕의 따스함이, 빰을 스쳐가는 따스한 봄바람이, 20몇년전 동두천의 어느 군부대를 면회온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그 사람의 기억이 불러일으키는 간절한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트라우마처럼 남은 그리움의 기억이 그 봄빛 찬란한 4월의 봄에 홀연히 찾아왔다 떠나간 그녀를 노란 작은 꽃이 환영처럼 불러세운 것입니다. 외로움이 온전히 내 삶에 아픈 기억이 되었을 때 그녀가 그 작은 꽃의 아름다움으로 찾아왔던 것입니다. 반가웠고 또 그리웠습니다. 청춘의 그리움을 다시 불러 아름다움이 무었인지 알게하는 작은 꽃이 오늘 더욱 이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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