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드 Apr 07. 2016

소피의 세계

소설로 쓰는 철학

지난 일요일에는 안동 하회마을에 다녀왔습니다. 10시쯤 대구에서 출발했으니 봄햇살이 제법 따가울 때였습니다. 달리는 차안에서 내다보는 산들은 마치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가지 끝마다 연한 색깔을 내밀며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슬며시 내민 손바닥으로 부드러운 머리칼같은 한올씩의 바람이 만져집니다. 머리를 날리고, 볼을 스치는 따스한 바람이 간질이듯이 손가락사이를 부드럽게 지나갑니다. 눈을 감아봅니다. 햇살이 앏은 눈꺼풀을 뚫고 들어와 눈앞이 기분좋은 붉은색으로 가득찹니다. 가로에 심어놓은 벚꽃나무의 꽃송이가 하얀 팝콘들 처럼 붙어있고 때때로 부는 바람에 꽃잎을 날려보냅니다. 하늘은 시릴 만큼 푸른 색에 듬성듬성 흰구름을 뛰어놓았습니다. 너무나 느긋한 봄소풍에 그림같은 풍경들이 눈앞으로 지나갑니다. 제법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데도 지나는 풍경들은 느릿느릿하게 가슴으로 들어와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바람때문이겠지만 눈가에는 알 수 없는 눈물까지 바람을 타고 하얗게 세기 시작한 귀밑으로 날려갑니다. 모든게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입니다. 문득  시간이라는 것이 경이롭게 느껴졌습니다. 나이가 들기 시작하니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것일까요? 어느덧 삶의 끝과 있을지 모르는 다음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되었나 봅니다. "소피의 세계"의 철학선생님은 철학의 시작이 세계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놀라고 감동하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반복된 매일이 평범해져버린 우리에겐 언제부터인지 눈에 보이는 일상들이 평범해지고 대단치 않게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오래된 예전부터 그래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하기 어려운 5살이전에는 꽃이 신기했고, 처음보는 강아지가 신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아침 여명은 은은하고 신비로우며, 일몰은 수십만가지 색깔로 우리의 눈을 감탄하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치 않습니다. 인생은 늘 거기서 그 자리인것만 같고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은 어제 본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건지 깊이있게 생각해 본적도 없습니다.


철학은 이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인간의 이성은 무었인지, 이성을 가진 인간이 끝내 생각하고 추구해야하는 값진 것들이 무었인지에 대하여 깊이 빠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관심을 가지는 것에 깊이 빠져들게 마련입니다. 같이 근무하는 직원이 제게 고등학생이 읽어볼 만한 철학책이 없을까요하고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책 택배가 많은 제가 책을 많이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봅니다. 고등학교 2학년생의 어머니인 그 여직원은 어쩌면 성장과정에서 철학이라는 것이 꼭 필요한 재산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철학적 사유는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고,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타인과의 관계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인격을 형성하는 시기에 반드시 필요한 이성과 관념을 가슴과 정신에 자리잡게 할 것입니다. 훌륭한 어머니입니다.


저는 당연히 "소피의 세계"를 권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대학때까지 저는 철학이라는 것에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니체를 읽었고, 키엘케고르, 칸트, 프로이드, 로크, 흄, 데카르트, 그리고 율곡사상 등 눈에 보이는 책들을 관심을 가지고 읽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허세이며 설익은 거만함만 내게 심어주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눈으로 읽었고, 머리속에 가두어 지식으로 정보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대학때, 한성대 철학부에 다니는 여학생과 데이트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 사람과 나는 좁은 커피숍 소파에 앉아 담배를 2갑이나 피면서 철학에 대해 논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깊이가 없었습니다. 그저 철학자의 이름과 단편적인 지식들만 가지고 열렬하게 떠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겉멋만 들어 서로 자신을 과시하는데만 몰두했던 것입니다.


 저자: 요슈타인 가아더(JOSTEIN GAARDER)는 1952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 문학을 공부했고 작가로 데뷔하기 전까지는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1986년에 출간한 단편집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여러 소설과 단편, 어린이와 젊은이를 위한 작품들을 썼다.1990년 『카드의 비밀(KABALMYSTERIET)』로 노르웨이 문학비평가협회 어린이ㆍ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1994년에는 『소피의 세계(SOFIES VERDEN)』가 북유럽과 독일에서 베스트셀러로 주목받으면서 독일 청소년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세계적인 작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철학을 대중하한 책으로 극찬받은 『소피의 세계』는 지금까지 프랑스, 독일, 미국 등 6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으며 전 세계에서 4,0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교보문고 발췌-



자신은 그저 우연히 여기 존재하는 사람일뿐이다.
그러나 소피가 자기 역사의 뿌리를 알 때, 소피는 뭔가 덜 우연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소피는 이 지구에서 잠시 살다 가는 인간일 뿐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소피 자신의 역사이기도 하다면, 소피는 어떤 면에서는 수천 살을 먹은 셈이다.


"소피의 세계"는 청소년을 위한 철학입문서로 만들어 졌습니다. 아마도 저자가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철학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청소년을 위한 작품들을 많이 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마치 소설처럼 술술 읽힙니다. 소설형식으로 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최대한 쉽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감동적이기 까지 합니다.  또한 소피에게 알베르또선생님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독자는 읽는 내내 마치 제자가 되었다는 착각에 빠지고 그래서 읽는 다기 보다는 듣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이 책을 최근에야 읽게되었습니다. 만일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읽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앞에서 말한 허세와 오만 때문에 말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청소년추천도서이지만 어른들이 읽어 베스트셀러자리에 등극한 책입니다. 읽는 내내 15세 소년이 된 느낌이었다면 어떨까요. 빙그레 입가에 웃음이 도는 것은 그 동안 내가 지니고 있었던 것이 종잇장처럼 얇팍한 지식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는 긍정의 표현임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이젠 나이가 들어 다소 세상을 보는 눈이 겸허해진 탓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연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나를 좀더 깊이있게 생각해보게 만들어 뭔가 덜 우연적이되어, 그러한 나의 존재의 이유에 대하여 좀더 깊이있게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작으로서의 소피의 세계는 정말 멋진 책입니다. 청소년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기도 하지만, 어쩌다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에게도 고민하며 살아가야할 필요를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책입니다.


오늘은 봄비가 좀 많이 오는 출근길입니다. 밤새 내린 비탓인지 연한 녹색이 나무마다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이렇게 다르다니 경이로운 일입니다. 창밖에 잦아드는 빗소리가 참 좋아집니다.



PS : 함께 읽어도 좋은 책  - 이창후 "영화로 읽는 서양 철학사"



매거진의 이전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