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이 많은 사람의 불 끄기

라면을 금지당했다.

by 김기둥





우리 집은 한의원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어머니와 내가 좋아한다. 어머니는 원체 체력이 약하신 탓에 양약은 독처럼 신체에 무리를 주어, 기댈 곳은 한약밖에 없으셨다. 내게는 힘에 부쳤던 입시를 간신히 완주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공신이었다. 그뿐인가. 양약으로는 큰 소득이 없었던 피부 문제를 단박에 해결해 주기도 했다. 이쯤 되면 안 좋아하는 게 이상했다. 분명 그랬다. 라면을 금지당하기 전까지는.



사건의 발단은 피부였다. 사춘기 호르몬의 공격에도 속 썩인 적 없던 얼굴이 불긋불긋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볼을 뒤덮고 턱과 눈 밑의 피부가 발바닥 각질처럼 겹겹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나름 유명한 피부과를 한 달 이상 다녔음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의사는 내 피부가 '스테로이드 리바운드'와 '극도의 건조함'으로 생겨난 피부염이라 진단했다. 소독과 보습 크림. 항히스타민제. 할 수 있는 걸 다해봤지만 결국, 대학병원에서 5만 원짜리 연고를 처방받고 나서야 이 피부염은 일단락됐다. 1년도 채 안돼 재발되긴 했지만.



보다 못한 어머니는 나를 끌고 한의원으로 향했다. 한의사는 '몸에서 배출되지 못한 열'과 '똥독'으로 생긴 해프닝이라 일갈했다. 설마 싶어 케일로 쌈을 싸 먹고 변비를 해결해 주는 한약을 먹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호전되고 그 효과가 상당히 오래갔다. 매운 음식을 몇 번만 먹으면 재발된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내가 사랑하는 라면, 마라탕, 치킨 등은 모두 압수당했다. 철없이 몰래 먹을까 싶다가도 한약값을 생각하면 발걸음이 돌려졌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매운 음식, 튀긴 음식... 이 음식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끊기 수월했다. 미친 듯이 올라간 물가 덕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라면이다.


주방의 서랍을 열기만 하면 그 자리에 있는 라면. 3분이면 끓여 먹을 수 있는 라면. 편의점에서 간단히 해결 가능한 라면. 라면, 라면, 라면!

간단하고 저렴한 데다 익히 아는 맛이니 이를 끊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수제 과채 주스를 만들어(-케일, 양배추, 배 등을 갈아 만든 특제 주스) 입맛을 꺼트리긴 했지만 길 가다 편의점에 눈길을 주지 않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편의점들 대부분이 통창이라 컵라면 코너가 훤히 보이기까지 하니 안 보이는 척하는 것도 힘들었다.

유혹을 이기고 간신히 집에 들어가더라도 유튜브에 뜨는 라면 레시피가 내 입에서 눈물이 나게 만들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다행히 아직까지는 '라면 끊기'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벌써 세 달째니 앞으로 금지가 풀리기까지 네 달 남았다.

몸의 열기로 생긴 염증이 피부와 함께 올라와 없어지기까지 3개월. 건강하고 새로운 피부가 그 자리를 대체하기까지 3개월, 그렇게 해서 총 6개월 동안은 디톡스 식단으로 살아야 한다. 피부로 마음 고생하지 않는 그날까지 내려진 라면 금지령은 계속될 것이다. 어쩌면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선천적 체질로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못 먹는 모든 이들에게 동지로서 심심한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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