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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욱 May 24. 2020

참여의 사다리 - 수준이 다르다고...

'참여'라고 해서 다 같은 참여가 아니다. 참여의 8단계를 알아봅니다.

소통 얘기가 많이 나온다. 참여는 소통을 위한 것이니 참여와 소통은 크게 다른 말이 아니다. 참여이거나 소통이거나 모두 민주주의를 가늠하는 훌륭한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수준’이다. 가장 높은 수준은 참여자의 의견이 결정에 반영되는 것이다. 우리가 소통하는 것 같지만 불통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결국 각자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험을 많이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Sherry Arnstein의 참여에 관한 성찰은 오늘날까지 관련분야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의 하나가 되고 있다. 누군가를 참여시켜야 하는 과정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글을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또 스스로 어딘가에 어느 수준의 참여를 하고 있는 지 알아보는 데도 좋은 안목을 준다.

참여의 사다리를 하나씩 밟고 올라가 보자. 

 

 
  

The ladder of citizen participation (Arnstein, 1969), 시민 참여의 8칸 사다리

Source : S. R. Arnstein (1969) A Ladder of Citizen Participation, JAIP, Vol. 35, No. 4, pp 216-224.



참여는 민주정치 과정의 필수요소이다. 그래서 정치적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항상 참여의 절차나 형식을 요구받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참여는 끊임없는 속임과 수사의 대상에 되어오고 있다. 

  

1. Manipulation (조작)

지역유지들이 참여하는 동정자문위원회와 같은 사례에서 많이 발견된다. 자문위원들이 해야 할 일을 반대로 공무원들이 하게 되는 경우이다. 즉 공무원은 자문위원들을 가르치거나, 설득하거나, 그들에게 충고하는 경우이다.


자문위원들은 회의에 참석할 때 참석자 명단에 서명을 하게 되는데 이를 빌미로 공무원들은 그들을 참여시켰다며 자랑하게 된다. 이 때 참여자들은 사업이 종료되어 테이프 컷팅 행사에 초대되고 나서야 “내가 중요한 질문을 한 번도 던지지 못했구나!” 하며 후회하게 된다.

  

2. Therapy (치료)

사회적 약자를 정신병자와 동일시하는 경우이다. 그래서 그들과 관련되어 문제가 발생하면 기관이 스스로 잘못을 들여다보기보다는 그 약자의 문제를 치유해주려 든다. 펜실베니아주에서 있었던 한 사례는 이렇다. 한 아빠가 심하게 아픈 아이를 안고 병원 응급실에 찾아왔다. 그곳에 근무하고 있던 레지던트는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설탕물을 먹이라고 지도했다. 그 아이는 그날 오후 폐렴과 설사로 사망했다. 격분한 아빠는 지역행동기구(Community Action Agency)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 때 지역행동기구는,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병원을 조사하기 보다는, 아빠를 ‘아이돌보기 교육 프로그램’에 등록하도록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누군가 병원에 전화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이의 아버지를 문제를 일으킨 미련한 사람으로 보고 치료해주려 하는 태도이다. 

  

Arnstein은 위 두 가지 수준을 비참여(nonparticipation)로 분류했다.

  

3. Informing (정보제공)

시민의 권리, 책임, 선택사항 등의 정보를 알려주는 것은 시민참여의 중요한 기초가 된다. 하지만, 이것이 일방적일 때는 문제가 되며 이 또한 자주 발생하는 사례이다. 일방적이라는 것은 피드백을 받거나 협상의 기회를 주지 않고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대체로 계획의 마지막 단계에서 정보를 제공함으로서 이러한 기회를 박탈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킬 수 있도록 계획을 입안하는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만다.

  

4. Consultation (의견조사)

시민의 의견을 조사하는 것은 정보제공과 함께 실질적인 참여의 중요한 발걸음이다. 그러나 이 또한 조사에 그칠 뿐 시민의 우려와 아이디어를 반영하는 그 다음의 과정을 소홀히 한다면 진정한 참여의 수준에 이를 수 없게 된다. 


의견조사에 주로 사용되는 방법은 의식조사(attitude survey), 반상회(neighborhood meeting), 공청회(public hearing) 등이다. 만약 힘 있는 사람들(powerholders)이 더 이상의 조치 없이 시민의 생각을 조사하는 이 수준에만 머물도록 제한해 버린다면, 여기서 참여는 한낱 장식적 의례에 지나지 않게 된다. 몇 명이 참석했고, 몇 장의 브로슈어를 배부했고, 몇 명이 설문에 응답했는지의 통계적 숫자는 의미가 없다. 즉 참여를 위한 참여에 그치고 만다.

  

5. Placation (달래기)

이 수준에서는 참여자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지만, 아직은 명백하게 명목적 참여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이다.


달래기의 대표적인 예는 취약계층의 몇 명을 골라 지역행동기구 또는 개발 위원회, 교육위원회, 주택 위원회 등 공공 위원회의 위원으로 앉히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약들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들은 위원회에서 소수자에 머물러 다수결에 의한 최종 의사결정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게 되고 만다.


이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스스로의 우선과제가 무엇인지를 정밀하게 찾아내는 능력과 그 우선과제를 위해 효과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능력을 갖추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이들 계층에서 이러한 능력을 보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참여의 결과 그들이 실제로 얻어간 이익이 없다면 이는 바로 달래기 수준의 참여 수준에 머물렀음을 말하는 것이 된다.

  

Arnstein은 위 세 가지 수준을 명목참여(tokenism)으로 분류했다.

  

6. Partnership (공동협력)

공동협력은 시민과 힘 있는 사람들 사이에 협상의 과정을 통하여 권력이 재분배되는 수준을 말한다. 그들은 공동정책위원회(joint policy board), 기획위원회(planning committee) 등을 통해 기획, 의사결정의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 일단 협상으로 주고받으며 일정한 기본규칙(ground rule)에 정하고 나면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그 규칙을 파기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시민공동체의 대표로 참여하는 리더가 시민들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책임 있는 리더인 경우에 이러한 관계의 형성이 가능해진다. 이 경우에는 시민공동체 대표가 전문가로 위촉되기 쉬우며 따라서 시민들은 공공계획의 성과물에 대한 진정한 협상력을 보유하게 된다.


필라델피아의 모범도시 프로그램에서 이 수준에 다다른 도시의 수는 75개 도시 중 단지 15개 정도에 달했다. 이들은 대부분 시에서 권한을 주기보다는 이전의 형식적인 참여 방식에 분노한 시민들의 요구와 강력한 협상에 의하여 쟁취된 경우에 해당된다.




 

7. Delegated Power (권한위임)

어떤 특정한 계획이나 프로젝트에서 시민과 공무원의 협상 과정에 있어 시민측이 지배적인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모범도시계획’에서 시민들은 확실하게 다수의석을 차지하여 진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된 경우가 있다. 이 수준의 사다리 계단에 다다르면 시민들이 공공계획의 결과가 그들에게 유리해지도록 결정하는 중요한 카드를 쥐게 되는 셈이다. 이 수준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조정하는데 있어 힘 있는 사람들이 다른 쪽의 압력에 반응하기 보다는 시민들과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범도시 프로그램 중 이 수준에 이른 도시는 극소수인 7개뿐인 것으로 분석됐다. 시민측이 비토권(veto)을 가지게 되어 시민이 동의하지 않는 계획은 통과될 수 없는 형태의 권한위임 사례도 존재한다. 

  

8. Citizen Control (시민통제)

실제로 이 수준의 절대적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경우는 없다 하더라도 말뿐인 시민통제가 아닌 실제 시민통제의 수준에 다다른다는 개념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사람들은 어떤 공공계획이나 제도를 만드는데 있어 단지 자신들이 조건에 대하여 협상하고 지배할 수 있도록 보장받기를 원한다.


자금원과의 사이에 매개자가 없는 마을기업(neighborhood corporation)은 이러한 시민통제의 모범사례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이 새 모델은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직접 통제하는 힘을 길러주도록 한다.

이 실험적 모델에 대하여 비효율적이라거나 기회주의를 조장한다는 등의 비판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다른 모델도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을 중단하지 못했음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Arnstein은 위 세 가지 수준을 시민권력(citizen power)으로 분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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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또는 소통이라 이름 붙여 놓고 실제로는 결정에 영향을 끼치기 어렵게 되어 있는 공공절차를 많이 접하게 된다. 약자의 목소리가 반영되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이라면 정책의 형성과 집행과정에 그 목소리가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Arnstein은 이러한 관찰에 도움을 주는 프레임을 훌륭하게 제공하고 있다. 논문이 많이 인용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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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네이버 블로그에 작성해 두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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