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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욱 Jan 24. 2021

반말(평어)를 쓰자.

소통을 증진하는 반말, 그 어색함의 문턱을 넘으면...

회사를 처음 설립할 때 반말을 쓰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당시 대학생이던 창립 멤버들에게 그러자고 제안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불편이 크고 부담된다는 이유였다.


서로 별명을 부르는 것에는 동의하였다.


이는 이름에 '님'자나 '씨'자를 붙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영어 이름이 인위적이고 어색한 면이 있으니, 영어이름에 한정하지 않고 별명으로 부르자는 것이었다. 영어학원이나 유학 중에 쓰던 익숙한 영어이름이 있는 사람은 영어이름을 별명으로 사용하였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기의 본명에서 한 글자를 따오거나 발음을 약간 수정하여 이름을 지었다. 진, 수, 케이, 미, 찬, 쿠, ...



별명을 부르자는 것은 직함을 부르지 말자는 것이라고 하였다. '대표님' 하지 말자는 뜻이다. 그 때부터 필자는 '쿠'라 불리우기 시작하였다. 이 전통을 창업 8년이 된 지금까지 잘 지켜오고 있다.


1. '님' 쓰지 않기

2. 영어 이름 아닌 찐 별명(호칭)

3. 직함 부르지 않기




영국 유학 초기에 지도교수에게 이메일을 쓸 일이 있었다. 반말 편애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Dear Stephen,'

'안녕 스티븐,'


직함과 '님'자가 없다. 마음이 편하다.


'홍길동 교수님께,'와 같이 직함을 붙여 편지글을 시작하는 것과는 크게 다른 편안함이 느껴졌다. 인사 치레의 여러 말을 적을 필요도 없었다. 매우 높은 존칭을 담아 평소와는 다른 문체로 글을 써야 하는 부담도 적었다. 그냥 쉽게 이메일을 쓰게 된 이유를 쓸 수 있었다.


'아! "반말"이 소통을 돕는구나.'

반말이라는 말이 부정적 의미를 품고 있으니, 평어라고 해도 좋다.


'평어가 소통을 돕는구나.’

존대말은 상대를 존중하고 있다는 표현을 담아야 하는 부담이 생기고, 이로 인하여 실재로 소통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기 어렵게 하는 구나.'

‘존대는 콘텐츠 자체 보다는 그 것을 다루는 방식에 신경 쓰게 하겠구나.’


머리 속에 잠재해 있던 생각이 이메일 머리말을 쓰면서 뚜렸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반말을 쓰는 상황과 존대말을 쓰는 상황을 돌아보았다. 아이들은 서로 반말을 사용한다. 매우 꺼리낌 없이 소통한다. 존대말은 위계가 있는 관계에서 사용한다. 둘 중 한 사람의 의견이 더 가치롭다는 암묵적 관계를 만든다. 자연스럽게 상급자의 의견에 순종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소통되어져야 할 어떤 부분이 생략되고 만다.


소통의 증진을 돕겠다는 사명으로 유학길에 올랐던 필자에게는 'Dear Srephen'의 경험은 매우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다. 이를 발전시켜 보고 싶었다.



구글 이미지 검색 : '반말'




그 무렵 어려운 영어에 시달리는 학업의 스트레스를 우리말 블로그(지금은 문을 닫음)에서 조금씩 해소하고 있었다. 그리고 블로그와 연계되어 있던 카페에 '반말카페'를 열어 반말을 실험해 보았다. 본문과 댓글 모두 반말로만 작성이 허용되는 카페를 만든 것이다. 제법 인기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반말을 쉽사리 지켜 주었다.


그리고 반말이 주는 효과에 대하여 토론을 해보기도 하였다. 그 실험에서 반말과 존대말의 핵심은 호칭에서 출발한다는 힌트를 발견했다.


'상무님,' '대표님'이라고 직함을 호칭으로 부르는 순간 둘 사이에는 위계가 만들어진다. 호칭은 관계에서 서로의 격을 규정하는 힘을 지닌다. 따라서 '상무'라는 직함 뿐만 아니라  '님'자도 장벽을 만든다.


'제가 혹시라고 결례가 되는 말은 하지 않을께요.'라는 마음가짐을 만들어 준다. '님'를 붙여 말할 때 말하는 사람에게 생겨나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조금 꺼리낌이 있는 의견을 굳이 말하지 않으려는 행동을 만들 수 있다. 서로 '님'자를 쓰더라도 일시적으로 위계가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위계는 소통을 저해한다. 호칭은 위계를 만든다. 고로, 위계가 있는 호칭은 소통을 저해한다.'는 가설이 가능하다.






별명 부르기 8년째,

KOOFA의 조직문화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신입사원은 처음에 시니어에게 막부르는 것 같은 어색함의 기간을 살짝 거치지만 금방 적응한다.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쓰다 보니 확실히 편해지는 건 있는 것 같아요. 좀 더 수평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입사한 지 한 달 쯤 지난 신입사원의 말이다.




별명 부르기 하나로, 온전한 수평문화를 만든다거나, 소통을 획기적으로 증진하는 일까지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직함을 부르거나, 호칭으로 모종의 강요된 존중을 표현해야 한다면, 그 것은 은연 중에 '적당히 가려서 소통하는 거야.'라는 메세지를 주고 받는 것이 될 것이다.


KOOFA가 아직 반말, 평어 쓰기까지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별명의 기능을 어느 정도 확인하였다.

이제 반말을 향해 가야한다. 가깝고 친한 부모 자식 사이에선 서로 반말을 사용한다. 처음 만나 어색한 사이에선 서로 존대한다. 이 때 소통은 상당히 제한된다. 친해 지면 자연스럽게 말을 튼다.



맥켄지 (1907) 단발령에 저항하는 반란군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ompany_of_Korean_rebels_1907_by_F.A._McKenzie_from_Tragedy_of_Korea_rotate.jpg




1895년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 한 애국자는 '두가단(頭可斷) 발불가단(髮不可斷), 목을 벨지어정 머리를 자를 순 없다.'고 외쳤다. 반말은 단발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깨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관념인데, 그 전에는 목숨을 걸만큼 가치롭다.



처음부터 말을 트는 것은 무례일까?

아니면, 그냥 하나의 관념일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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