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기욱 Nov 26. 2017

딜레마 속의 집단

협력, 경청, 시간의 사회적 딜레마



정보처리를 둘러싼 인간의 합리성의 경쟁으로서의 갈등 이외에 사람들의 협업을 방해하는 또 다른 걸림돌이 있는데 바로 딜레마 상황이다.


퍼실리테이션과 관련하여 크게 세 가지의 딜레마 상황이 존재한다.





딜레마 속의 집단


1. 협력 딜레마


A : 세상에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B : 그래요? 제가 보기엔 사람들은 다 똑같던데요.


A : 아니 어떻게 사람들이 다 똑같을 수 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던데.

B : 우리가 사람을 다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다 같으니까 사람이라고 부르는 거 아닐까요?


A : 그렇긴 하지만, 명백하게 사람들은 서로 다른데 다 똑 같다고 하는 것은 좀 관찰력이 부족해 보이네요.

B : 뭐라구요? 제가 관찰력이 부족하다뇨, 사람이 다 같은 점이 있고 그래서 모두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그 엄연한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 어거지 아닌가요?


A : 어거지라뇨?

B : 어거지죠.


싸움으로 번진다.


두 사람의 주장은 모두 옳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반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 같지만, 이 둘은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 



A : 세상에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B : 그래요? 제가 보기엔 사람들은 다 똑같던데요.


A : 아니 어떻게 사람들이 다 똑같을 수 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던데.

B : 우리가 사람을 다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다 같으니까 사람이라고 부르는 거 아닐까요?


F : A님은 어떤 점에서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보시나요?

A : 얼굴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경험도, 가치관도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쟎아요.

F : 네, 사람들은 정말로 다른 점이 많네요.


F : B님은 어떤 점에서 다 똑같다고 보시니요?

B : 눈도 두개이고, 입은 하나이고, 언어를 사용하고, 두 팔이 달려 있고, 서로 같으니 사람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거 쟎아요.

F : B님은 사람들의 공통점으로 모아 범주를 만들고 이에 사람이라는 명칭을 부여한 점을 말하신 거군요.


F : A님은 B님의 이런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 그 점에서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다른 점 투성이라는 점을 여전히 무시할 수 없군요.

F : B님은 A님의 이런 주장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B : 저도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공통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F : 두분의 말씀을 듣고 보니, 사람들은 서로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는 말고 들리네요. A님은 차이점의 측면을 말씀하셨고, B님은 공통점의 측면을 강조하신 것 같습니다. 맞나요?

A,B : 네, 맞아요.

F : 그렇다면, 사람은 서로 같은 점과 다른 점 또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동의 하시나요?

A,B : 네, 동의합니다.



두 사람은 모두 악의를 지녔거나, 바보가 아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있어, 거짓으로 속이려는 것도 아니었고,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있어서 어떤 오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대화는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이 것이 둘 이상이 관계하며 살아가는 데서 생겨나는 관계의 딜레마이다. 개개인에게 오류나 악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협력하지 못하고 반목하는 사이가 될 수 있다.


한 쪽에 오류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찾아 오류를 수정하는 것으로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오류를 찾아 해결하거나 오류가 없는 경우에도 당사자는 서로 협력하기 어렵고, 본의 아니게 어느 한 쪽이 싸움을 걸고 다른 한 쪽이 이를 거들면서 다툼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직과 공동체에서 겪고 있는 상당한 이슈들은 이와 관련되어 있다. 다툼을 만들지 않고 인간이 혼자 스스로 삶을 영위해 가면 좋겠지만, 자연과 환경에 맞서 살아가려면 타인과 협력해야 하는 경우가 생겨난다. 그러나 타인과 협력 시도는 이처럼 갈등이나 반목으로 귀결되는 일이 빈번하다. 딜레마다.


퍼실리테이션은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하여 도움을 준다. 둘 이상의 관계에서 자연스레 생겨나는 불편함을 해결하여 서로 쉽게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개입하는 방식을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을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라 부른다.



2. 경청 딜레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청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모든 의견은 동등하게 귀중하다는 명제는 경청을 통해서 실현된다. 흥미로운 것은 경청에 관한 책을 읽거나 경청의 훈련을 받은 사람마저도 대부분의 경우 스스로 경청을 하려 하기 보다는 타인에게 경청을 요청한다는 점이다. 이는 경청의 반대 편을 주장하는 것과 같다. 


경청의 주체는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 되어야 한다. 경청의 강조는 스스로 경청하라는 것이지 타인의 불청을 탓하라는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 경청을 요청하는 순간 경청은 경청이 아니라 설득이 되고 만다. 설득은 경청의 반대편이다.


여기에도 딜레마가 있다. 


서로 경청만 한다면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대화는 없고 침묵만 존재할 것이다. 서로 말하는 데만 집중하고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말하는 가치 또한 만들어 지기 어렵다. 들림이 없는 말은 허공에 대한 외침이 되고 말 뿐이다.


경청은 중요한데, 서로 경청만 한다면 결코 경청의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딜레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한 그룹에서 적어도 한 사람 정도는 경청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누군가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룹의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할 힘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경청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통해서 자신이 발언을 할 때 외에는 타인의 발언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여유를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경청을 매개로 하여 함께 참여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듣는 것이 가능해진다.


서로 경청자일 수도 없고, 서로 발언자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느 한 사람이 경청자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사회적 관계의 협력의 가능성을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다. 이 역할은 하는 사람은 리더일 수도, 구성원일 수도 있다. 직위나 신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청의 역할을 잘 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퍼실리테이션의 핵심내용은 경청이다. 퍼실리테이터가 스스로 경청의 기술을 발휘하고, 타인들도 경청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을 동원하여 서로의 의견을 쉽게 말하고 잘 들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3. 시간 딜레마


Slow is Fast and Fast is Slow. 

급할 수록 돌아가라.

돌다리도 두드려서 건너라. 

인생은 타이밍이다.

시간은 금이다.

시계로 살기보다 나침반으로 살아라.


시간을 다루는 지혜도 서로 모순적이다.

너무 신중해도, 너무 성급해도 바람직하지 않다.


설계도를 작성하는 시간을 절약하여 빠르게 집을 짓다 가는, 중간에 다시 허물고 집을 지어야 하는 일이 생긴다. 그렇다고 설계도를 이리 고치고 저리 고치면서 완벽함을 쫓는다고 집이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신중한들 집을 짓지 않고서는 설계를 잘한 의미가 없다. 시간을 많이 써도 문제이고, 적게 써도 문제다. 딜레마다.


퍼실리테이션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도 유효하다. 신중하게 정보를 다루되 너무 늦어지지 않도록 하는 기술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회의를 하다보면 시간이 많이 든다고 불평한다. 사실이다. 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당장의 회의 주제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평소 맡고 있는 다양하고 긴박한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현재 참여하고 있는 회의에서 빨리 결론을 내고 머리 속에 있는 다른 업무를 해결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참여자의 정서와 지루하고 판에 박힌 회의 방식으로는 현명한 결정에 도달하기 어렵다. 회의는 형식적으로 흐르고, 결론은 회의로부터 가치를 부여받지 못한 채 마루리 되고 만다. 가치를 추가하지 못한 회의는 시간을 낭비한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고, 다음 회의는 이를 전제로 준비되고 참여한다. 그리고 회의시간을 줄이는 것이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많은 조직들이 회의시간을 줄이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는 건축을 하면서 설계도를 대충 만들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대충 만들어진 설계도는 부실한 공사를 낳고 부실한 공사는 부실 건축물을 지을 것이다. 그리고 설계도를 만드는데 절약한 시간을 건축을 다시 하거나 부실공사를 치유하는데 몇 배의 시간을 쏟아 붓게 된다. 이 것이 바로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Fast is slow.’이다.


그렇다고 설계하는 데만 마냥 시간을 허비하라는 것은 아니다. 집중력 있게 정보를 처리하여 후회없는 결정 즉 필요한 사항을 충분히 고려한 결정 (informed decision)을 하는 것이 오히려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퍼실리테이션은 그 집중력과 회의의 밀도를 높여 회의의 시간을 일정 부분 절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노젓기만 해서도, 방향타만 잡고 있어도 배는 원하는 목적이에 갈 수 없다. 머리 쓰는 전략과 손발 쓰는 실행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퍼실리테이션은 머리 쓰는 시간을 절약해 준다.





다용도 퍼실리테이션

https://brunch.co.kr/@giewookkoo/2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