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의견은 동등하게 귀중하다.’
이 책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이 신념과 실현에 관한 이야기다.
‘모든 의견은 동등하게 귀중하다.’
들어보면 맞는 말이고 듣기 좋은 매력적인 진술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럴 듯 할 뿐 쉽게 받아들여지 어려운 말이다.
사람들에겐 다양한 의견 있고, 그 중에는 쓸데없는 의견도, 하찮은 의견도, 잘못된 의견도 있다. 그렇더라도 한 발 양보하여 귀중하게 여겨줄 수는 있는데, 어떻게 동등하게 귀중할 수 있는가?
퍼실리테이션을 배우는 것은 이 의심을 풀어가는 과정이다. 지나치게 이상적이어서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이 명제를 현실에서 가능해 지도록 시도해 가는 과정이 퍼실리테이션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퍼실리테이션을 성공한 어느날 그 성공이 이 신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아름다운 삶의 한 조작을 발견한다. 그리고 퍼실리테이션에 대한 신뢰가 커지고 성공의 경험도 쌓이기 시작한다. 다름과 같음의 다르지 않음에 놀라움의 미소를 짓기도 한다.
퍼실리테이션의 빠른 정의
퍼실리테이션은 사람을 돕는 일이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다양하므로 퍼실리테이션의 모양과 방법도 다양하다. 그러므로 퍼실리테이션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점이 많은 사람들이 퍼실리테이션을 어려워 하기도 하고, 오해하기도 하는 이유가 된다.
퍼실리테이션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의견을 표현하도록 하고, 그 내용을 서로 쉽게 이해하고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도록 지원하여,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거나 현명한 결론에 도달하도록 돕는 일체의 방법을 말한다.
이를 간단하게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다.
퍼실리테이션은 신뢰다.
퍼실리테이션은 절차다.
퍼실리테이션은 중립이다.
퍼실리테이션은 철학이다.
퍼실리테이션은 사랑이다.
퍼실리테이션은 인문학이다.
퍼실리테이션은 실현 기술이다.
퍼실리테이션은 질문하는 것이다.
퍼실리테이션은 경청하는 것이다.
퍼실리테이션은 기록하는 것이다.
퍼실리테이션은 소통의 기술이다.
퍼실리테이션은 협업의 기술이다.
퍼실리테이션은 합의를 이끌어낸다.
퍼실리테이션은 리더의 필수 역량이다.
퍼실리테이션은 정보처리를 돕는 것이다.
퍼실리테이션은 민주적 의사결정을 돕는다.
퍼실리테이션은 현명한 의사결정을 돕는다.
퍼실리테이션은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퍼실리테이션은 창의적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퍼실리테이션은 다름이 도움되게 하는 방법이다.
퍼실리테이션은 구성원의 자아실현을 이루어낸다.
퍼실리테이션은 모든 의견이 가치없이 탈락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퍼실리테이션은 다름이 다툼의 이유가 아닌 도움의 이유가 되게 하는 것이다.
퍼실리테이션은 'facilitation'이라는 단어의 뜻인 ‘촉진’처럼 그 뜻대로 되는 것이다. 즉 결과적으로 촉진이 되었어야 촉진한 것이 된다. 촉진을 위하여 개입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방해한 것이 되었다면 그것은 방해이지 촉진이 아닌 것이다. 반면, 촉진의 개념도 잘 모르고, 퍼실리테이션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도구들을 적용한 것도 아닌데, 결과적으로 촉진이 되었다면 그 것은 촉진, 즉 퍼실리테이션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원시시대에 추장이 사냥을 위한 작전회의를 잘 이끌었다면 그는 퍼실리테이션을 한 것이고, 세종대왕이 어전회의를 잘 이끌어 훌륭한 결론을 이끌어 갔다면 그도 퍼실리테이션을 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퍼실리테이션을 열심히 배워 이런 저런 퍼실리테이션 기법과 도구를 적용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참여자들이 불편해 하고 원하던 결과를 내지 못했다면 이는 퍼실리테이션을 한 것이 아니다. 그냥 기법을 적용해 본 것 뿐이다.
위에 나열한 퍼실리테이션의 빠른 정의에는 신뢰, 사랑, 인문, 실용, 협업, 합의, 민주, 창의, 도움, 자아실현, 모두 사람들이 환영하고 반기는 개념이고 어휘들이다. 사람들이 환영하고 반기는 말이지만 이 것들이 실제로 실현되게 하는 데는 만만치 않은 걸림돌이 있다. 이를 극복하도록 돕는 것들의 일체가 퍼실리테이션이 된다.
그렇다면 사람을 어떻게 돕는다는 것인가?
그 돕는 활동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그 것은 한 마디로 사람들의 정보처리를 돕는 것이다. 즉 다른 말로 사고과정, 인지활동,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생각하는 과정을 돕는 것이 퍼실리테이션이다.
정보원 정보자원 정보처리 의사결정 실행 실행결과 목적달성
정서처리 정서처리 정서처리
(정서처리가 띠를 두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냄)
<정보처리와 목적적 존재>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으로부터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신호를 수집한다. 그리고 그 지각한 신호를 해석하여 두뇌에 그 정보를 저장한다. 그리고 그 정보는 삶을 살아가는데 유용하게 활용한다.
인간은 생명체로서 생명의 유지와 존속의 당연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적어도 생명의 유지와 존속이라는 필연적 목적 또는 의지를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목적은 지닌다는 것은 또한 당연하게 목적을 달성할 수단을 찾는다는 것을 말한다. 수단을 찾지 않는다면 목적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므로 목적을 지니고 있는 한 수단을 찾는 것 또한 당연하다. 여기서 목적 달성에 맞는 수단을 잘 찾아내는 것이 이성이고 합리성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늘 선택의 문제가 남는다.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여러 가지의 수단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여러 가지의 수단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을 찾는 과정에 우리는 이성 또는 합리성을 동원한다. 그리고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인 수단이냐는 데 있어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또한 이성적 사고에만 머물지 않고 감정에 이끌려 결정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개인마다의 서로 다른 정보, 지식, 이해관계, 관점, 성격 그리고 감정들이 작동하면서 타인과 경쟁하게 된다. 서로 갈등하는 근원이다.
이 과정을 혼자 하게 된다면 여러 선택을 놓고 내적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반면 여럿이 함께 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의 선택과의 외적 갈등까지 겪어야 한다. 이러한 갈등은 지지 않고 이겨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고,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 수 있으므로 회피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협업을 피하거나 권위있는 사람의 단독적인 선택에 맡기도 한다.
이러한 행태의 누적은 권위주의 문화,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낳는 하나의 매커니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퍼실리테이션은 이를 열린문화, 수평적인 조직문화로 바꾸어가는 하나의 방법론이기도 하다.
((BOX))
구성원과 참여자
이 책에서 구성원(constituent)은 조직, 단체, 공동체의 일원(member)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직장의 구성원을 직원(staff), 종업원(employee), 부하직원(subordinate) 등으로 부른다. 이 용어에는 크고 작은 위계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보다 위계를 배제하고 조직의 하나의 주체로서의 의미를 내포한 표현이 퍼실리테이션을 다루는데 더 어울린다고 보아 구성원(constituent)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참여자(participant)는 회의 또는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을 지칭한다. 구성원이 지속성 있는 신분의 의미라면, 참여자는 회의 또는 워크숍의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일시적인 역할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길고 넓게 보면, 퍼실리테이션은 조직개발의 핵심 기술로서 조직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다. 짧고 좁게 보면, 회의나 워크숍에 효과적으로 개입하는 방법으로서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다.
대부분의 경우 구성원이 회의 참여자가 되지만, 때로는 조직의 외부자를 회의에 참여시키는 경우도 있으므로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딜레마 속의 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