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든스의 구조화 이론과 부르디외의 실천이론 비교
Pérez의 2008년 논문 '기든스(1938~)와 부르디외(1930~2002)의 인간의 주체성 이론에 나타난 자발주의(임의론)와 결정주의(결정론) (Voluntarism and determinism in Giddens’s and Bourdieu’s theories of human agency)'의 직지심공 녹음 준비를 위한 요약입니다.
'자발성' 주제의 직지심공을 위한 두번째 논문입니다.
논문 레퍼런스 : Pérez, F. P. (2008). Voluntarism and determinism in Giddens’s and Bourdieu’s theories of human agency. The Essex Graduate Journal, 4, 12-17.
*페레즈는 호주 퀸즈랜드대 사회과학대학 조교수
이분법적으로 바라 보던 것을 통합(holistic theorisation)하려는 현대 학자들의 노력 중에서 기든스와 부르디외는 주체적 인간에 관한 서로 다른 두개의 대립되는 설명으로서 구조화 이론과 실천 이론이 등장시켰다.
이분법적 세계관
agency/structure(주체/구조); subjective/objective(주관/객관); idealism/determinism(관념론/결정론); existentialism/structuralism(실존주의/구조주의); Ethnomethodology/Functionalism(민속방법론/기능주의)
이 둘의 주장은 전체적 설명을 시도하는 점에서는 같지만, 다음과 같은 비판을 받고 있다.
기든스는 위험할 정도로 지나치게 자발성을 지닌 행위주체의 관점에 치우쳐있다. 반면, 부르디외는 지나치게 인간 행동의 구조적 영향으로 인한 결정론적 측면을 강조한다.
*아비투스(habitus: ethos/hexis)
주관 객관과 같은 구조에 대한 전통적인 이분법적 접근은 문제가 있다.
구조와 주체는 원래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실제(reality)를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동전의 양면처럼)일 뿐이다.
주체들은 서로 다른 사회적 실행(practice)을 통하여 사회적 구조를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끊임없을 순환을 만들다.
주체들은 행위를 위하여 사회적 구조를 만들고, 동시에 구조를 조금 바꾸어 다시 만들어내며, 그 것은 결국 구조화된 절차의 다음 사이클을 위한 행동의 새로운 조건을 수립하게 된다.
구조란 행동없이 만들어질 수 없는 구조화된 실행(practice)인 것이다.
그러므로 구조는 규칙과 자원으로 안내되는 '일련의 지속된 행위의 연속'이다.
*쿠는 구조를 장기 의사결정으로 봄, 행위 이전에 결정이 존재함
기든스의 구조화 이론의 두 가지 요소
규칙(rules) - 사회적 생활의 시행과 재생산에 적용되는 일반화할 수 있는 절차(‘generalisable procedures applied in the enactment/reproduction of social life’)
절차적 규칙(수행 방법)과 도덕적 규칙(허용 행위)으로 나뉨
자원(resources): 물질 자원, 권위 자원 (사회 규범과 관련된 문화 또는 정치적 권력 등)
구조는 가상적 존재이다. 지각있는 행위자의 행동을 추적하는 기억 속에 존재함
사회적 행위나 행동은 3가지의 요소로 되어 있다.- motivation (행동을 야기하는 동기), knowledge (목적의 위계를 달성하는 합리성) and reflexivity (행위에 대한 성찰적 감시)
사람은 일부의 정보만을 가지고 행동하게 됨 - 가지성의 부족
성찰성은 습관화되고 일상화된 행동을 이끄는 실행 의식(‘practical consciousness’)과 합리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논변 의식(‘discursive consciousness’)으로 나눔
결론적으로 기든스는 행위자를 상황의 다양한 변화에 반응하는 능력을 가지 성찰적이고 자기감시적인 존재로 보았다.
Giddens clearly views the agent as a ‘reflexive’ and ‘self-monitoring’ being able to respond to a variety of changing situations.
기든스의 자발성의 근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기든스의 주장 : 모든 사회적 행위자는 아무리 낮은 위치에 있더라도 그들을 압박하고 있는 사회 형식을 어느 정도 뚫어낼 수 있다. 그런 행동의 어떤 단계에서 행위자는 어떤 다른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all social actors, no matter how lowly, have some degree of penetration of the social forms which oppress them’ (Giddens, 1979, p.72) or that ‘at any phase in any given sequence of conduct, any given agent could have acted in a manner somewhat different than she did’ (Giddens, 1984 cited in Cohen, 1989).
이러한 기든스의 구조화 이론에 대하여, 행위자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위험한 주체의 관점을 내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1. 개별 행위자로부터 나오는 가지성(knowledgeability)과 성찰성(reflexivity) - 달리 생각할 수 있음, 구조의 압력에 저항할 수 있음
-> 지나치게 낙관적임. 사회적 실패(이혼, 실업, 가난)를 설명하지 못함
-> 어떤 시도를 하더라도 결국 같은 결과를 낳는다면 그것을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나? 이런 순진한 인류애적 관점이 불평등과 배재의 현실을 부정하게 만든다.
2. 물질적, 비물질적 자원과 함께 내재화한 규칙으로서의 느슨한 사회적 구조의 개념 - 행위자에 대한 외적 제약을 개념화하지 못함
-> 규칙과 자원 이상의 구조가 없다면서, 부르디외의 '아비투스'와 같은 명백하고, 물질적이고, 손에 잡히는 구조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행위자(계급적)들이 규칙과 자원을 차별적으로 보유하고, 서로 다르게 행동(계급에 따라 소비패턴이 다름)하는 것을 설명하지 못함.
3. 구조가 가상의 존재(virtual existence)를 가진다는 주장
-> '가상의 존재'라는 개념이 사회이론의 토대가 될 수 있는가? (Layder, 1981) 시간과 공간을 벗어난 것을 존재라고 할 수 있는가?
‘can anything which is out of time and space have an existence?’ (Craib, 1992, p.152).
저자가 보기에는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기든스의 주장은 행위자와 구조의 근본적으로 추상적이고 철학적 관점을 지닌 기본 개념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명확하게 해놓는다면 유용성이 높아질 것이다.
기든스는 '달리 행할 수 있음(act otherwise)'를 강조하는 반면, 코헨(Cohen)은 '자원의 역할(role of resources)을 지적한다.
부르디외의 실천이론은 기든스의 구조화이론에 대비하여 인간 행위에 대한 객관주의와 주관주의적 접근의 그럴듯한 대조를 이룬다.
부르디외는 장, 아비투스, 자본(‘habitus’, ‘fields’ and ‘capital’)을 중심 개념으로 두고 사회를 설명한다.
'아비투스'는 '과거의 경험을 통합하여 생성된 성질(경향)의 체계이다. 이는 매순간 지각, 인식, 행위의 모태가 되고, 무한히 다양한 과업의 성취를 가능하게 한다.
‘a system of generated dispositions integrating past experiences, which functions at every moment in a matrix of perceptions, appreciations and actions and makes possible the achievement of infinitely diversified tasks’ (Bourdieu, 1977, p.83).'
이는 인간의 사회적 지각, 이해, 평가, 행위에 항상 영향을 미치는 정신 구조의 집합이고 내재화된 스키마이다.
특정 계급의 조건들이 아비투스가 되어 객관적인 사회 구조를 만들고, 행위자는 구조를 주입받음으로서 주관화된 정신적 경험을 만든다.
'장'은 사람들이 희소한 자원을 두고 각축을 벌이는 사회적 장소이며, 권력 관계가 있는 구조에 기반을 둔 사회적 지위의 체계이고, 지위 사이의 객관적인 관계의 망이며 구성이다.
‘field’ as a social arena within which people compete for scarce resources; a system of social positions based on structure in power relationships; ‘a network, or configuration of objective relations between positions’ (Bourdieu and Wacquant, 1992, p.97).
일상은 수평, 수직으로 얽혀 있는 조직화된 역장에서의 지속적인 투쟁 말고 다름 아니다. 장은 위계적으로 형성되어 있다.(사회 계급, 상류층-서민)
'자본'은 사회 개체애 널리 퍼져있는 여러 유형의 자원이다. 이는 사회적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 또는 다양한 장에서 가치를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capital’ in Bourdieu’s social theory can be defined as different types of resources distributed throughout the social body which have an exchange value in one or more of the various ‘fields’ which comprise the social world (Bourdieu, 1977).
따라서 부르디외의 자본은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경제 자본만이 아니라, 문화(취미), 상징(명성), 사회(인맥) 자본을 포함한다.
[(Habitus) (Capital)] + Field = Practice (Bourdieu, 1984, p.101)
축구선수, 시장상인, 자본가, 음악가(클래식, 트로트)
구조화된 구조(‘structured structures’)와 구조화 하는 구조(‘structuring structures’), 심지어 구조화된 구조화 하는 구조(‘structured structuring structures’)
부르디외가 자발론/결정론의 균형을 이루는 설명을 한다고는 하지만, 학자들은 그가 객관주의자의 편에 서있다고 비판한다. 이 이유로 다음 세가지를 든다.
1. 부르디외의 행위의 개념은 (과거의 경험에 크게 기반한) 일차적으로 도구적 기계적이다. 행위자의 성찰적, 창의적, 비판적 특성을 무시한다.
2. 지위에 따른 행위의 측면에서 행위자의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의 상호주관적 요소와 권력을 도외시한다.
3. '이성적으로 발전시킨 전략'에 대하여는 이론화가 미흡하다. 장>아비투스>실천 사이의 연결은 결정-기계적이며, 행위자를 근본적으로 수동적이라고 본다.
개인의 의지력, 성찰성, 변화를 만드는 능력을 설명할 수 있는 여지가 적다. 인간의 이기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개인과 사회적 변화를 위하여 일상과 습관을 바꾸는 것을 주장하기에도 고통스럽다.
저자의 생각에는 부르디외가 철저한 결정론자는 아니지만, 부르디외는 사람이 성찰적이지 않다거나 자발성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서로 다른 계층의 아비투스의 - 특히 무의식적인 -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 했다고 본다.
자발주의나 결정주의의 관점 모두 나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어떤 기본 전제 위에서 하나의 이론을 바라볼 때, 어떤 것이 더 맞아 보일 수 있다.
두 이론의 비판함에 있어 일반적 존재론의 수준(the ontology-in-general level)에서 재조명이 필요하다.
구조와 인간 행위를 이원주의(dualism)가 아닌 이분법(duality)으로 보는 위험이 있다. 동전의 양면이라는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면 이 논쟁은 혼란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개념을 잘 정리한다면, 앞서 설명한 양쪽의 주장이 모두 이해된다. 미시, 중시, 거시의 구분도 필요하다.
구조 수준의 연속성과 규제성을 인정하면서, 개인 수준의 의식, 성찰성, 갈등, 경쟁의 요소를 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