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에포케
'요즘은 팀장되기 싫어 합니다.'
현실이다.
그 현실의 내면에 무엇이 있을까?
과거의 리더는 권력자였다.
권력을 부리면, 부하직원(이 때는 부하직원이라 불렀다.)들을 이를 따랐다. 부당한 경우마저 따랐다. 사적인 요구에도 기꺼이 응답했다. 상사의 이사짐을 나르고, 상가집에 가서 음식을 나르던 일이 아주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회사에 붙어 있어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던 시절에, 권력에 대한 도전은 잘릴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권력은 잘 작동했다. 그리고 권력을 부리는 리더의 일은 정교한 교육을 받지 않다도 쉽게 해낼 수 있었다. 승진하면 기뻤다. 급여도 오르지만 권력자가 되는 기쁨이 컸다.
오늘날의 리더는 서번트다.
구성원들은 잘려도 다른 데 가면 되니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났다. 구성원들은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리더가 잘 지원해주기를 요구한다. 이제 리더는 구성원들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리더가 서번트 리더가 되기를 선택하기도 전에 이미 요구받고 있다.
게다가, 구성원의 기대와 요구가 제각각이기도 하거니와 때로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어서 이를 다루어내는데 고도의 스킬이 필요하다. 권력은 없고, 할 일만 많아진다. 이제 리더(승진?)가 되는 것이 기쁜 일 만은 아니다.
과거의 리더는 전문가였다.
한 분야에서 경험을 누적하면서 전문성을 쌓아갔다. 시간이 흐르면 그 축적된 경험은 누구도 따라가지 어려운 전문성으로 작동했다. 마치 농사를 오래 지어본 농사꾼과 비슷했다. 축적된 경험은 전문성의 권위를 부여해 주었다.
그러므로, 과거에는 리더의 축적된 전문성을 배우고 싶은 부하직원들이 많았다. 그것이 그들에게 효율적인 학습의 방법이었다. 과거의 전문성이 오늘의 전문성이 아닌 상황에서 리더의 지침은 잔소리, 꼰대의 발언처럼 들린다. 어쩌면 내가 아는 것이 리더가 아는 것보다 더 옳다.
오늘날의 리더는 촉진자다.
과거의 경험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환경이 너무 빠르게 바뀌어서 어제의 지식과 경험은 오늘에 맞지 않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 경험의 축적이 권위를 잃게 되었다. 의사가 병원장이 되는 것이 어색하고, 교사가 교장이 되는 것도 이젠 어색하다.
분야의 전문성만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다양한 변화와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조율하는 촉진(퍼실리테이션) 능력이 절실해졌다. 권력을 쓰는 방법은 선배 리더로부터 쉽게 배울 수 있었지만, 촉진을 잘 하는 법은 조직내에서 발견하기 어렵고, 있어도 쉽게 따라 하기 어렵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었다.
과거의 리더는 당사자였다.
맡은 업무를 자신의 전문성과 책임 하에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당사자였다. 당사자이므로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구성원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설득에 힘이 부칠 경우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지시하고 강제했다.
오늘날의 리더는 제3자다.
온전한 제3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제3자로서의 역할을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정치, 경제, 기술, 문화등 많은 영역에서의 업무 환경의 변화가 심각하므로 업무를 구성원에게 과감하게 위임하지 않고는 리더가 일일이 결정해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구성원 개개인도 양질의 결정을 내리는데는 부족함이 많다. 오늘날의 업무는 혼자서 온전히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어느 때보다도 협업의 필요성이 높아진 것이다.
리더는 이러한 협업을 돕기 위하여 제3자의 관점에서 질문하면서 구성원과 그 협력자들이 양질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도록 중립적인 제3자(퍼실리테이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당사자로서 자신의 의견에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구성원들의 지식과 정보를 사용하기 어렵고, 동기를 잃게 할 위험성도 높다.
서번트, 중재자, 제3자로서의 리더 역할을 잘 수행하려면 다음의 네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권력자가 아닌 서번트로서의 길은 험난하다. 권력은 달콤하지만, 서빙은 씁쓸하기 쉽다. 이를 감당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서번트로서의 노력과 지원, 때로는 읍소처럼 느껴지는 순간 마저 감당할 의지를 가지는 것이다. 이를 기꺼이 감당하도록 하는 힘은 리더의 목적의식이다.
무언가를 이루려는 목적의식이 있다면 이를 이루기 위한 서번트 리더십의 발휘는 당연한 것이 되고 만다. 산악인이 에버레스산을 오르려는 목적의식을 뚜렸하게 가졌다면, 등정하는 동안의 어려움은 회피가 아닌 감당할 고통이 된다. 그리고 정복(목적 달성)의 희열을 가슴과 역사에 새기게 된다.
산악인이 산에 오를 때 산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듯이, 권력자가 아닌 서번트로서의 리더는 서빙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구성원의 지식을 꺼내는 방법, 구성원들의 이견을 조율하는 방법, 인간의 시기와 질투, 동기와 정체성, 자부심과 행복, 몰입과 성취 등이 어떻게 달성되는지 지적으로 알고 있을 때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자발성을 가져달라고 요청하는 것만으로 자발성이 생겨나지 않는다.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행동하기를 원한다면, 어떤 때 사람이 자발성을 가지게 되는지, 그런 조건을 또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지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지적으로 아는 것만으로 실현할 수는 없지만, 모르고 할 때는 효율아 떨어지거나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킨다.
오늘날 리더의 가장 큰 적은 성급한 판단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과거 경험에 의존하여 현재의 상황을 성급하게 판단하는 일은 위험하다. 하지만, 오랜동안 리더의 결단력을 요구받아 온 전통에 따라 빠른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여전하다.
가능한 한 신속한 결정이 필요하지만, 선입견과 속단은 현명한 결정을 헤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편견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보고, 다시 생각하고, 타인의 견해를 물어 새롭게 결정하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이를 에포케, 심판의 연기라 부른다. 결정을 우유부단하게 미루라는 의미가 아니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에 일어나는 두뇌 작용으로써의 심판을 연기하라는 의미이다.
서번트, 중재자, 제3자의 역할을 해내려면, 질문할 줄 알고, 경청할 줄 알고, 들은 바를 기록하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는 스킬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합의를 이끄는 자유토론 능력도 지니면 좋다.
리더 스스로 성급하게 판단하여 결론을 내리기 보다 구성원들의 새로운 견해에 귀기울이고 기다리는 스킬(intentional silence)도 필요하다. 그리고 둘이 있을 때 훈계가 아니라 대화하는 스킬은 또 다른 제3자가 되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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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탕을 흔들어 새롭게 정립하는 시간이 될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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