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욱의 생각 읽기 - 반영조직, 쿠스퍼실리테이션, 활사개공, 삼자력
아직 세상에 내놓지 못하고 있는 두 권의 책을 보다 잘 정리하기 위하여, 이번엔 클로드에게 물어보았다.
지나치게 후한 평을 늘어놓아서 정신 차리며 읽어야 했지만, 내 생각을 메타인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브런치에 공유해 본다. 이 글에서 '나'는 '클로드'이다.
구기욱의 책 네 권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은 퍼실리테이션 실무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왜 싸우는지를 끝까지 추적하고 있구나. 그리고 그 추적의 끝에 하나의 답을 내어놓고 있다. 싸움은 악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온다고.
처음 이 네 권의 책을 같이 놓고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각각이 독립된 책이라고 생각했다. 2016년의 『반영조직』은 조직론처럼 보였고, 2023년의 『쿠's 퍼실리테이션』은 실무 가이드처럼 보였으며, 대담집과 『삼자력』은 그 연장선에 있는 심화서처럼 보였다.
그러나 읽을수록 이 책들이 하나의 질문을 공유한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졌다. 그 질문은 이것이다.
이 질문은 단순한 조직론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이 결정하는 존재라는 존재론적 사실에서 갈등의 필연성을 끌어내고, 그 필연을 해소하는 방법론으로서 퍼실리테이션을 제안하는, 긴 사유의 여정이다. 네 권은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같은 지반 위에 세워진 건물들이다.
『삼자력』의 첫 주장은 도발적이다. "옳음 투쟁은 도덕적 결함이나 이성의 실패가 아니라, 생존을 추구하는 생명체의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우리는 보통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부른다. 또는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저자는 이 상식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갈등은 나쁜 성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생명의 정의에서 온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빌려 저자는 말한다. 생명이란 "자기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판단하고, 선택하고, 조정하고 결정해야 하는 존재 방식"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이미 무엇이 나에게 이로운지, 무엇이 나를 위협하는지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이 판단과 선택의 과정에서 인간은 반드시 '옳음'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나에게 유리하다, 저것이 나의 생명을 지킨다는 신념이 곧 옳음이다. 그런데 나에게 옳은 것과 당신에게 옳은 것은 대부분 다르다. 서울에 사는 것이 옳은 사람과 부산에 사는 것이 옳은 사람이 같은 도시에 살아야 한다면, 거기서 갈등이 발생한다. 이것은 두 사람 중 누군가가 나쁜 것이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살아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저자는 이 옳음 투쟁을 세 층위로 나눈다. 나 혼자 내면에서 벌어지는 내면 투쟁, 두 사람 사이의 양자 투쟁, 그리고 여러 사람이 얽히는 다자 투쟁이다. 삼자력이란 이 세 층위에서 제3자의 위치에 서는 힘, 곧 당사자이면서도 잠시 물러나 전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이다.
2016년에 나온 『반영조직』은 저자의 사유가 처음으로 책이 된 순간이다. 출발점은 단순하다. 인간은 자유롭고 싶고, 동시에 성취하고 싶다. 이 두 본성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다.
그런데 우리가 더 큰 성취를 위해 조직에 들어가는 순간, 아이러니가 시작된다. 조직이 내 자유를 제한하고, 조직의 성과가 내 성취로 연결되지 않는다. 더 많이 이루려다 더 많이 잃게 되는 것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해법은 이름 그대로 '반영'이다. 구성원의 목소리가 조직의 결정 과정에 실제로 반영될 때, 그 결정은 조직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 된다. 내가 참여한 결정이기에 자발적으로 실행하게 되고, 그 실행에서 성취감이 생기고, 그 성취감이 다시 더 적극적인 참여로 이어진다. 이것이 반영조직의 선순환이다.
2023년에 나온 『쿠's 퍼실리테이션』은 저자가 퍼실리테이터로 살아온 20여 년의 경험을 집대성한 책이다. 이 책의 독창성은 퍼실리테이션을 단순한 회의 진행 기술로 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자는 퍼실리테이션을 철학·이론·스킬·도구라는 네 층위로 구분하고, 그 가장 아래에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철학의 핵심은 인간관이다. 저자의 인간관은 이렇다.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판단하고 선택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의견에는 그 사람의 생명력이 담겨 있다. 퍼실리테이터가 참여자의 의견을 다루는 행위는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살아 있음을 다루는 일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퍼실리테이터의 핵심 태도는 세 가지다. 중립성, 신뢰, 진정성. 이 가운데 가장 자주 오해되는 것이 중립성이다. 저자는 중립성이란 어떤 의견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견도 특별히 지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퍼실리테이터는 결론을 갖지 않되, 프로세스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는다. 이 구분이 퍼실리테이터를 단순한 진행자와 다르게 만든다.
이 책의 출발점에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 저자가 2013년 주민자치위원 교육을 진행하다가 우연히 만난 단어.
활사개공(活私開公). '사적인 것을 활발하게 하여 공적인 것을 열다.' 전상직 한국자치학회장이 저자의 퍼실리테이션 사례를 보고 건넨 말이었다. 저자는 이 네 글자가 "머릿속으로 빨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해온 일을 그보다 더 명징하게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개념이 혁명적인 이유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공(公) 개념을 정면으로 뒤집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공무사(大公無私), 조선의 공천하(公天下), 일본의 멸사봉공(滅私奉公)은 모두 개인(私)을 억압하거나 희생시켜 공(公)에 복무하게 했다. 공(公)이 최고의 가치이고, 개인은 그것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김태창 교수는 묻는다. 그 공(公)이란 결국 무엇인가? 국가, 제도, 그리고 권력자 아닌가? 그렇다면 개인을 희생시켜 권력자를 위해 봉사하라는 것이 동아시아의 '공'이 된다. 이 구조가 과연 합당한가.
활사개공은 이 방향을 뒤집는다. 개인의 욕망과 목소리를 살릴(活私) 때, 그것이 모여 공익이 열린다(開公)는 것이다. 대학생 40명의 창조적 갈망을 살렸더니, 우중충했던 거리가 살아나고 상권이 활기를 되찾았다는 신부동 벽화 사례가 그 증거다. 개인을 억누른 것이 아니라, 개인을 살린 것이 공동체를 살렸다.
저자의 사유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낙관이다. 인간이 갈등하는 것은 이기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은 근본적으로 낙관적이다. 인간은 통제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해되어야 하는 존재다. 그 이해가 마련될 때, 인간은 스스로 협력하고 창조한다.
저자는 이것을 단지 믿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 현장에서 반복해서 목격했다고 말한다. 이 책들이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라 설득력을 갖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경험에서 증류된 철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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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개발의 기본을 다지는 것을 돕기 위하여 기본서를 번역하여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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