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을 주면 '책임'도 져야 한다는 착각

수평적 조직문화가 매번 실패하는 진짜 이유

by 구기욱

최근 많은 기업들이 직급을 없애고 호칭을 영어 이름이나 별명으로 바꾸며 '수평적 조직문화'를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회의실에 들어가면 풍경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리더는 "알아서 하도록 권한을 줄 테니 주도적으로 해보라"라고 말하지만, 구성원들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어떻게 할까요?"라며 지시를 기다리는 것이 현실이다. 수평은 좀처럼 자라나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수평조직을 만들고 싶지만 그리 되지 못하고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기저에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아주 오래된 명제가 숨어 있다. 바로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책임'이라는 단어에 숨겨진 두 가지 얼굴


우리는 흔히 '책임(Responsibility)'이라는 단어를 하나로 뭉뚱그려 사용하지만, 사실 이 안에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의미가 혼재되어 있다.


역할 수행 의무 (Role Obligation): 특정 역할을 맡았을 때 당연히 수행해야 하는 의무로써의 책임

결과 부담 (Outcome Liability): 행위의 결과로 발생하는 손해, 실패, 위험에 대해 감당해야 하는 몫으로써의 책임


리더가 구성원에게 권한을 위임할 때 염두에 두는 책임은 대개 1번(역할 수행 의무)이다. "내가 권한을 줬으니, 네가 맡은 일을 끝까지 잘 해내라"는 뜻을 내포한다.


하지만 권한을 받는 구성원 입장에서는 이를 2번(결과 부담)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즉, "내가 스스로 결정해서 일을 진행했다가 만약 실패하면, 그 비난과 인사고과상의 불이익(손해)을 내가 다 뒤집어써야 할지도 몰라"라고 해석하게 된다. 설사 명확하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언질을 리더가 준다하여도 의심스러울 터인데, 일반적으로 그런 언질이나 확언을 해주지는 않는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율 또는 선택권은 좋지만, 그에 따른 실패의 위험까지 홀로 감당하는 것은 두렵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차라리 권한의 수용을 회피해 버린다.



4분면 모델 인포그래픽.png



권한은 높게, 하지만 책임(결과 부담)은 낮게?


그렇다면 진정한 임파워먼트(권한 위임)와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권한과 결과 부담의 결합 방식에 따라 조직의 모습을 4분면으로 나누어 설명해 보고 싶다.


흔히 우리는 권한도 높고 결과 부담도 높은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2사분면: 위임 관계). 하지만 이 상태에서 구성원들은 실패 위험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권한을 거부하고 방어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가장 이상적이고 효과적인 상태는 놀랍게도 '권한은 높지만, 결과 부담은 낮은 상태(4사분면: 신뢰 기반 자율 관계)'이다.


"결정은 네가 해라. 하지만 실패하면 그 결과는 리더인 내가 책임지겠다."


이것이 바로 4사분면의 핵심이다. 구성원에게 높은 의사결정 권한을 주면서도, 결과가 잘못되었을 때 개인에게 쏟아질 손해나 위험 부담은 조직이나 리더가 흡수해 주는 것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결과 부담)이 낮아질 때, 비로소 구성원들은 억눌렸던 내재적 동기를 폭발시키고 창의성과 주인의식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일상에서 쓰던, '리더가 바람막이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라는 기대의 표현이 바로 이것이다.



수평적 조직문화로 가는 '쌍발 전환' 전략


호칭을 바꾼다고 조직이 수평적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수직적 조직의 본질은 계층의 수가 아니라 '의사결정 권한이 어디에 있는가'이기 때문입니다.


성공적인 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해서는 리더의 뼈를 깎는 '쌍발 전환(Twin Transition)'이 필요하다.


의사결정 권한을 실질적으로 구성원에게 이전할 것

그 결과에 대한 부담(실패의 비용)은 리더 스스로 수용하거나 조직이 분담할 것


리더들이 쉽게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책임을 지지 않으면 구성원들이 태만해지지 않을까?" 하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보다 선량한 존재다. 구성원들은 기본적으로 조직과 동료에 대한 '내재적 책임감'을 가지고 있음을 기억해볼 일이다. 자율성이 주어지고 심리적 안전감이 확보된 환경에서는, 강압적인 외부의 통제가 없어도 스스로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헌신하게 된다.




구성원의 내재적 책임감을 활성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


소규모 권한 위임을 통한 점진적 신뢰 구축: 처음부터 전면적인 권한 이전을 시도하기보다는, 위험 수준이 비교적 낮은 의사결정에서부터 재량권을 부여한다. 구성원이 권한을 행사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경험을 축적하게 하면서, 점진적으로 권한의 범위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에 대한 공개적 수용과 심리적 안전감 조성: 구성원의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비난이나 처벌 대신 '학습의 기회'로 공개적으로 재규정해야 한다. 구성원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심리적 안전감을 느낄 때 더 큰 책임감을 갖고 권한을 수용하게 되며, 이를 위해 실험 예산이나 실패 면책 규정처럼 실패를 조직이 분담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성과 귀인(attribution)의 공정한 운영: 성공했을 때는 구성원의 기여를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칭찬하되, 실패했을 때는 리더 본인의 지원 부족이나 외부 환경적 요인도 함께 원인으로 짚어주는 공정한 귀인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구성원의 선의를 믿는 조직 문화 선언: 구성원이 외재적 유인(인센티브와 처벌)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는 비관적인 전제를 버려야 한다. 조직은 구성원의 자발적 시도 자체를 가치 있게 인정하고, 강압적인 통제 없이도 스스로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높이는 제도와 언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리더의 진정한 자격


결국 진정한 임파워먼트란, 리더가 자신의 통제권은 내려놓으면서 구성원의 실패로 인한 부담은 기꺼이 짊어지겠다는 '헌신과 신뢰의 선언'이다. 권한을 주는 것과 결과 부담을 지우는 것은 완전히 다른 행위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 조직의 수평적 문화는 구호가 아닌 현실이 될 것이다.









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한 조직개발, 이를 현실화할 리더 육성, 체인지 에이전트의 육성에 KOOFA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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