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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욱 Aug 06. 2017

숙의와 퍼실리테이션 - 급여설계

직원이 급여체계를 만드는 회사, 공정한 조직이란?

4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때로는 자장면을 시켜 먹어가며 16시간이라는 긴 하루 동안의 회의를 이어갔다.

급여 시스템을 새롭게 만들어내는데 걸린 시간이다.


독재의 반대 개념은 무엇일까?

민주주의, 다수결 등이 떠오를 것이다. 


<만장일치는 현존하는 의사결정방법이다.>



좀 더 생각해 보면, 독재는 한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고 그 반대 개념은 모든 사람이 함께 결정하는 만장일치가 된다. 그러나 만장일치하면 왠지 도리어 독재국가가 떠오르고 불가능한 이상과 같은 느낌을 가져다 준다.


독재국가의 만장일치는 실질적인 만장일치가 아니라, 강요된 거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것은 여기서 말하는 진정한 만장일치가 아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만장일치는 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그에 걸리는 시간은 감당할 수 있는 것인가?

또 그렇게 만장일치로 정하면 정말로 가장 현명한 의사결정에 도달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급여 시스템을 조직 구성원들이 만장일치로 정하는 것은 필요하고 또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2013년 회사를 설립하고 만장일치로 만들었던 급여 시스템을 지금까지 적용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경된 상황에 대하여 일부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가면서 수정을 지속해왔으나, 기본 골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업무가 다양화되고 구성원의 숫자도 늘어나게 되어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기존 시스템이 공정성을 유지하는데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급여 시스템은 절차적 공정성, 분배적 공정성, 성과관리와 연결된 동기요인와 같은 이슈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절차와 스킬을 가진 퍼실리테이터가 회의를 진행한다.>





1. 절차적 공정성 (procedural justice)


의사결정 과정에 정당하게 참여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가 있어야 하고, 그 결과 합리적인 결정이 이루어졌을 때 달성된다.


전직원 15명 중 육아 휴직 중인 2명과 특수 업무로 인하여 연봉제 적용을 받는 1명의 직원을 제외한 12명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만장일치라는 의사결정 방법을 채택했다. 

(앞으로는 직원들이 더 늘어날 경우 5명 ~ 10명 정도의 자원자들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만장일치로 정해갈 예정이다.)


만장일치는 단 한 사람이라도 거부하면 결정을 하지 못하는 방법이어서 누구나 완벽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의사결정에 도달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채택해 볼 만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문제는 퍼실리테이션으로 해결한다. 만장일치에 도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논의를 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1) 숨김없이 의견을 내도록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2) 개진된 의견을 잘 기록하며,

3) 논점과 전제 조건을 적절히 탐색하고,

4) 대립되는 의견의 장단점을 충분히 드러내며,

5) 가능한 옵션을 모두 탐색하고,

6) 결정에 필요한 객관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으며,

7) 이러한 과정을 퍼실리테이터가 중립적으로 도와 간다면,


감당할 만한 시간 안에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급여를 결정하는 방식을 정하는 데 있어 본인의 의사가 충분히 개진되고 반영되면 자신의 급여에 대한 만족도가 향상되고, 급여 체계에 대한 지지와 수용도가 높아지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중요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실제로 실현했다는 점에서 자존감이 높아지고, 조직에 대한 소속감, 유대감과 충성도도 높아질 것이다. 



<퍼실리테이터의 중립성이 실질적 참여를 이끌고 절차적 공정성을 높인다.>



2. 분배적 공정성 (distributive justice)


급여 시스템의 내용적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분배의 방법을 공정하게 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분배가 공정하다는 것은 동종 업계의 다른 조직의 급여와의 비교적 측면(외적 공정성)과 조직 내에서 타인의 급여와의 비교적 측면(내적 공정성)이 모두 충족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상호 비교한 나의 투입요소와 그로 인하여 내게 주어지는 보상과 타인의 투입요소와 그에게 주어지는 보상의 비교를 말하는 것이므로 이의 계산 방법이 타당한 지를 검증하는 것이 논의의 주된 절차가 된다. 그리고 그 양자 간 투입 대비 보상의 비율이 일치될 때 사람들은 공정하다고 인식하게 된다.(Adams, 1963) 


 <Adams, J. S. (1963) Toward an understanding of inequity>



이 때 투입요소는 성과평가 또는 성과관리의 측면에서 핵심성과지표(KPI)가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의 투입요소는 무수히 많기 때문에 이를 모두 측정하는 데는 거의 무한대의 비용이 든다. 그러므로 편의상 그 중 중요한 일부만을 지표로 삼아 측정하게 되는데 이를 KPI라고 부른다. 


불행하게도 이 탈락한 지표들은 불공정성을 높이는 원인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어떤 것을 채택하고 채택하지 않을 지에 대하여 서로 이해와 공감을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채택된 지표에 대하여 불신을 가지게 되고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어 구성원들의 불만이 높아지게 된다.


그러므로 급여 시스템을 논의 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내용이 된다. 지표의 타당한 선택과 어쩔 수 없이 비용 또는 측정 기술 상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제외된 지표 때문에 발생하게 될 불공정함을 어떤 방식으로 보완할 지 또는 초월할 지에 대하여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 것이 충분히 이루어지는 과정을 바로 숙의라고 말할 수 있다.


<회의는 타인의 사고를 학습하는 과정이다.>



3. 동기요인


공정성을 높이려는 것은 구성원의 자발성을 높이려는 뜻을 품고 있다.

자발성은 공정성에서 나오고, 성과는 자발적 구성원들에게서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내재적 동기를 약화시키고 자발성을 감소시키는 부작용을 나을 수 있다.


분배적 공정성을 높이려면 투입요소의 측정을 정교하게 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모든 투입요소를 측정해야 완벽한 공정성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교한 투입요소의 측정은 구성원들에게 드러나는 성과에만 집중하게 하고 이로 인하여 외재적 동기에만 집중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므로, 외재적 동기의 강화는 자칫 내재적 동기를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예민하게 들여다 보아야 한다.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정밀한 측정에 몰두한 나머지 그로 인하여 구성원들의 내재적 동기가 약화되고 측정지표에 경쟁적으로 몰두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기록은 사고과정의 효율을 높여준다.>




이는 구성원 간의 협력을 방해하거나, 일 할 때마다 측정지표를 고려하고, 일 자체가 제공하는 본질적인 즐거움을 빼았게 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많이 측정하는 것이 악영향을 줄 수 있지만, 적게 측정하는 것도 악양향을 준다. 일부만 측정하면 그 것만으로 이미 공정성을 헤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부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측정지표들을 선택하게 된다면 그 대부분 단기적인 성과를 측정하는 것들일 것이다. 따라서 구성원들은 단기적 성과에만 몰두하고 장기적인 성과를 등한시 하여 결과적으로 조직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과평가가 조직의 성과를 높이려는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구성원의 내재적 동기를 저하시키고, 협력을 방해하고, 공정성을 헤쳐서, 성과를 낮추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잘 알아야 한다.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진퇴양난이다.

느슨한 평가는 조직의 공정성을 낮추어 낮은 성과로 이어진다.

정교한 평가는 구성원들이 지표에 매몰되게 하여 내재적 동기를 낮추게 된다.


공정성과 내재적 동기를 동시에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는 구성원들이 평가의 한계점에 대하여 스스로 확인하고, 완벽하지 못하지만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정도의 참여의 과정 즉 숙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하여 숙의에 다다를 만큼 충분히 논의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것이 과연 비용을 절약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점을 피커 센게는 'Fast is slow'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급여 시스템의 재설계에는 4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큰 비용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검토한 서로의 생각에 대한 이해, 다양한 방법들의 장단점의 확인,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이유을 아는 포기, 그리고 내가 결정했다는 주인의식 등 더 많은 것을 얻었다.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 낸 제도에 대한 회고적 후회나 못미더움은 사라졌다.

미래에 무엇을 더 할 것인가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숙의가 자발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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