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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욱 Aug 04. 2019

계획된 우연 (Planned Chance)

창조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혁신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계획된 우연'의 우연한 탄생


<우연 1, 특강을 제안 받음>

특이점, 4차산업 혁명, 기하급수적 기술 등의 과학기술의 영역에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비약을 예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2008년 캘리포니아 산타 클라라에  Singularity University(su.org)가 설립되었고, 우리나라에도 지부가 마련되었다.


이와 연을 맺고 있는 TIDE Institute는 국내에 TIDE Envision University (TEU, https://www.te.university/tide-envision-university) 개설하여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의 단초를 제공하고 한국판 SU를 만들어 가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따옴




그 TEU의 한 세션으로 특강을 의뢰받았다.

세션의 주제는 10X Future!
맥락으로 볼 때, 구글의 '10X Thinking'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연 2, 정치세미나에 들어감>


하버마스(Habermas)의 숙의와 공론장은 퍼실리테이터인 필자에게 늘 중요한 관심사였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하버마스 주제의 강연이 있다는 포스터를 보고 따져 볼 것도 없이 등록하였다.


등록을 마친 후 날아든 안내문은 단지 하나의 특강을 듣는 것이 아니라, 연구회원처럼 매주 세미나에 나가 토론하고 학기에 두 번은 발표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우연히 정치이론세미나에 등록하고 만 것이다. 정치학에 기본 지식이 없는 필자는 별로 전해주는 것 없이 많은 것을 배워 오기만 했다.




하버마스 특강은 목포대의 하상복 교수님이 해주셨다. '공론장의 구조변동'을 정말 멋지게 정리해 주셨다. 강의를 잘 해주시니 후속 토론도 진지하고 흥미롭게 진행되었다. 하상복 교수님은 흥미높은 청중을 우연히 만나게 된 것에 놀라셨다. 깊은 인상을 받은 교수님은 목포에 돌아가서 세미나 회원에게 목포 방문 초대장을 보내주셨다.


정명숙 선생님(좌)과 하상복 교수(우)


정치이론세미나 회원인 정명숙 선생님께서 연구한 바 있는 자크 웰륄과 하상복 교수님의 저술한 자크 엘륄이 우연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목포 만남의 주제는 자크 엘륄이 되었다.



세미나 토론을 위하여 정명숙님의 소논문(또 하나의 저항: 자크 엘륄과 웬델 베리가 바라보는 기술, 폭력 그리고 생태)을 읽어 내려가다가 깜짝 놀랄 발견을 하게 된다. 바로 필자가 준비하고 있던 SU, 구글, 10X와 관련된 커즈와일(SU의 공동설립자)과 싱귤래리티가 소논문에 언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전혀 연관이 없어 보였던 특강 10X와 사회학자 엘륄의 싱귤래리티에서의 만남은 필자에게 어떤 영감이 되었다. 그리고, 그 우연은 이번 강의에서 '계획된 우연(planned chance)'이라는 강의 제목을 우연히 만들어내게 했다.


또 하나의 우연을 사족처럼 보탠다면, 이는 필자가 요즘 꽂혀있는 주제인 역설(paradox)과도 관련이 있다. 역설의 평범화를 관찰하고 있던 필자에게 '계획'과 '우연'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역설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이런 자연스러움과 익숙함 역시 우연히도 때마침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연의 계획>


많은 우연의 겹침은 필연처럼 느껴졌고, 필연이라면 계획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우연은 계획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동안 열어왔던 수많은 워크숍의 설계는 바로 '계획된 우연'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 뚜렸해졌다.


"'계획된 우연'을 계획하자."




<'계획된 우연'의 실습>


80분 특강의 프로세스를 설계해야 했다. 계획된 우연으로 10X의 가능성을 체험하게 해야했다. 매우 제한된 시간이 주어진 것이지만, 프로세스는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1. 사람들의 활발한 회의 동영상을 여러 개 보여준다.
2. 토론을 통해 동영상의 공통점(적극적인 참여)을 찾게 한다.

3. 공통점이 생겨난 원인을 찾게 한다. (2인 1조)

4. 공통점으로 생겨날 결과를 찾게 한다. (2인 1조)

(그룹워크의 중요성과 원인을 제공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5. 3명의 그룹을 지어 첨단기술 전문가, 엄청난 문제 보유자, 기자로 역할을 나눈다.

6. 전문가가 파격적인 문제 해결방안(뻥을 권장한다.)을 제시한다.

(퍼실리테이터는 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7. 기자는 열심히 기록하며 취재한다.

8. 3~4회 파트너를 바꾸어 진행한다.

9. 취재한 내용을 전시한다.

10. 전시한 내용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해결방안을 선정한다.

11. 선정한 해결방안은 부검한다. (해결방안이 성공하지 못할 이유 찾기) (6인 1조)

12. 성공하지 못할 이유를 해결할 방안을 토론한다.

(제한된 시간으로 인하여 여기까지 진행하고, 과정을 돌아보는 토론과 설명으로 마무리하였다.)

13. 엄청난 문제의 해결방안을 최종 정리한다.

 


'Planned Chance' 워크숍 진행 모습


토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두뇌 활동의 결과이다. 그리고 많은 결과는 아이디어와 아이디어 사이의 우연한 만남에서 만들어졌다. 이 우연한 만남이 일어나도록 계획하는 것을 잊지 말자.


그 만남이 일어나게 하려면,

자기검열이 없는 안전한 발언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유능한 퍼실리테이터의 존재,


제기된 아이디어들이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록의 유지,


아이디어가 다양하게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그룹워크의 설계,


부분에 매몰되지 않고 전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퍼실리테이터의 안내 등이 중요함을 공유하였다.



<'계획된 우연'의 계획>


몇몇 그룹에서 우연한 해법이 나타났다. 그 해법을 발견하고 나서 미소짓던 참여자의 모습이 선하다. (이 글을 쓸 생각을 미리 했더라면, 도출된 해법 사진을 찍어 왔어야 했는데... 아쉽다.)
 

계획된 우연을 만들어 내는데 필요한 것을 정리해 보았다.


다음과 같은 것에 중점을 두면 좋을 것이다.


1. 발언의 안전한 환경을 조성한다. ('맞고 틀린 답이 없습니다.')

2. 뻥치기 세션을 포함한다. ('거짓말을 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3. 마주침을 만든다. 우연의 비약을 기대하는 지점이다. (발언 내용을 기록한다.(예: 취재기자의 역할), 파트너를 바꾼다. 내용을 전시한다.)


4. 의심을 모두 꺼낼 때까지 파고든다. ('아직 남아있는 걱정은 무엇인가요?')

5. 발언의 자기 검열이 심한 그룹에서는 예행연습을 먼저 시도한다. (열린 발언이 무엇인지 경험해보지 않은 경우 잘 해내지 못한다. 위험이 없는 연습 과정을 통해서 열린 발언을 경험해 보도록 설계한다.)

6. 인간의 부정성과 긍정성 모두를 활용한다. ('해도 안될 것 같은 우려와 하면 좋을 것 같은 기대를 모두 말하도록 안내한다.)


7. 전체를 보는 시간을 마련한다. (부분에 매달리다 보면, 큰 그림을 발견하지 못할 수 있다. 부분의 활동 속에서 드러나는 큰 그림을 만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8. 퍼실리테이터는 프로세스에 집중한다. (정보의 마주침이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절차를 설계하고 진행한다.)






'계획된 우연'을 머리 속에 이름 짓고 난 후,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두 개의 유사 개념이 등장했다.


"Planned Happenstance"

"Planned Serendipity"

 

Planned Happenstance는 존 크럼즈볼트(John Krumboltz)가 주창한 이론으로 경력개발과 진로에서의 우연성을 강조한 이론이다. 진로상담과 설계에 적용을 권장하고 있다.


Planned Serendipity는 Thor Muller & Lane Becker의 저서인 'Get Lucky'에서 사용하고 있는 개념이다. 대성공을 거둔 회사의 성공비결을 묻는 질문에 '행운'이라는 대답을 들은 데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카오스 이론에 기초하여 회사의 성공을 이끄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Planned Chance'는 창의 또는 혁신을 만들어내기 위한 워크숍 또는 프로젝트에서 짧은 기간 내에 그룹이 결과를 내도록 하는 하나의 방법을 개념화 한 것이다.


공통점은 카오스와 복잡계 이론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차이점은 'Planned Happenstance'의 경우, 경력개발이라는 개인 차원의 이슈을 다루고 있고,  'Planned Serendipity'는 회사 차원의 사업 성공에 초점을 모으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필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Planned Chance'는 팀과 프로젝트에 중점을 두고, 개인 간의 지식, 경험, 의견 간의 우연적 결합과 구성을 일으키기 위한 계획과 디자인이라는 점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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