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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망친 곳의 낙원 May 09. 2022

05. 폭망해버린 첫 영국 석사 지원  

1차 지원 실패 후 분석해본 몇 가지 원인들

2022년 입학을 목표로 유학을 준비 중이었지만 1년의 defer(입학연기) 신청이 가능하다는 영국 대학원 제도를 활용해 나와 와이프는 2021년 4월부터 영국의 대학들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설마 떨어지겠어?'라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 비록 학점은 엉망이지만 나름 대한민국의 건실한 미디어학부를 졸업했고, 10년에 가까운 지상파 방송 근무 경력이 있었다. 특히 영국의 대학원은 전공 관련 업무 경력을 매우 높게 평가해주는 경향이 있다고 듣기도 했고.


영국의 대학 서열을 알아보자.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건동홍국숭세단광명상가...

고딩시절 모두가 주술처럼 외우고 다녔던 대학서열표다. 물론 디테일을 두고 갑론을박이 있겠지만 어느 누구도 큰 틀에서 이 서열을 부정하지 않는다. 영국도 한국 못지 않은 대학 서열이 존재한다. 귀족, 노동자로 나뉘어 문화, 언어까지 달리하는 계급의 나라인 것을 고려하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The Student Room이라는 커뮤니티다. 영국판 디시인사이드 국내대학갤러리 되시겠다. 라이벌 학교 학생들끼리 박 터지게 싸우는 모습이 꿀잼이다.


우선 옥스포드와 캠브리지를 아울러 옥스브리지라 부르는, 우리로 치면 서울대로 명실상부 최고존엄 1티어 대학이 있다. 자, 그럼 자연히 2티어 대학들은 '최고'라는 카르텔에 함께 묶일 브랜드 방안을 찾을 게다. 마치 연세대, 고려대가 SKY라는 이름을 만들어 '최고'라는 명예를 공유받듯이. (서울대를 출신은 누구도 자신을 SKY출신이 이르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영국엔 G5 또는 골든트라이앵글이라는 용어가 있다. 옥스브리지와 런던정경대, UCL, 임페리얼 컬리지로 구성되는 상위 5개교를 지칭한다.

학교들의 위치가 삼각형을 이룬다고 골든트라이앵글이다. 억지스럽기 그지없다. 이에 비하면 SKY는 그럴싸한 네이밍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명문대 카르텔인 '러셀그룹'이 있다. 한국으로 치면 대충 인서울 명문대학 정도로 매칭할 수 있겠다.(하지만 러셀그룹 학교들이 모두 런던에 있는 것은 아니다). 25개 정도의 연구중심 대학으로 이뤄져있는데, 여기 속해있는 대학교들은 전공에 따라 랭킹이 조금씩 달라진다. 예컨대 경영학과면 건국대가 중앙대보다 더 좋을 수 있고, 국문학과는 경희대가 성균관대보다 더 좋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디어 분야의 명문대학은?

QS세계대학랭킹의 세부전공별 순위를 보면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영국 명문대학은 LSE, 골드스미스, 킹스컬리지, 워릭, 리즈, 카디프 대학 등이 있다.

QS대학순위 2022년 버전. 미디어 연구 부문 영국 대학들을 오름차순으로 나열한 것이고 왼쪽의 숫자는 세계랭킹을 의미한다. 참고로 QS 세계랭킹은 영국 대학에 매우 후하다.

사실 유학원은 나의 LSE 지원에 대해 '참가에 의의를 둔다' 정도로 생각하는 듯 했다. 최저학점 기준을 겨우 넘긴 내가 어드미션을 받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었다. 그들의 실제적 목표는 골드스미스 대학으로부터 어드미션을 받게 만드는 것이었다.


사실 골드스미스도 100분토론 진행자 정준희 등 많은 유명 언론인, 언론학자들을 배출한 세계적인 명문 미디어 대학으로, 나로선 이 역시 상향지원임이 분명했다. 따라서 유학원은 골드스미스에 떨어질 것을 대비해 영국 중부의 명문대학인 워릭대학과 리즈대학, 그리고 런던의 시티대학에도 예비로 지원하길 권했고 나는 그들의 말에 따랐다.


폭망해버린 결과와 몇 가지 추론 가능한 원인들

나의 2021년 영국대학원 지원성적표다.

지원 - LSE, 골드스미스, 워릭, 리즈, 시티
리젝 - LSE, 골드스미스, 리즈
어드미션 - 워릭(추가과제 후), 시티(바로)

시티 대학은 거의 지원하는 모두에게 어드미션을 준다는 점에서 사실상 완전 실패한 결과였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을 두고 여러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내가 납득했던 가장 설득력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지원은 최대한 빨리하라

영국의 대학원은 Rolling admission이라는 특이한 시스템으로 어드미션을 발행한다. 데드라인까지 지원서를 받고  안에서 줄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지원자가 들어오는대로 그때그때 뽑고 정원이  차면 마감해버리는 시스템이다. 자격이 너무 모자라거나 아니면 반대로 지나치게 뛰어난 사람들은 일찍 내나 늦게 내나 달라질 것이 없지만, 애매한 사람들은 빨리 지원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정원 마감에 가까워질수록 학교 입장에선 어드미션 발행에 신중해지고,  결과 일찍 냈으면 붙었을지도 모를 지원자가 떨어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2021 지원서를 제출한 시기는 5월이었다. apply 오픈이 2020 10월부터였고 어드미션을 빨리 받은 사람들은 그해 12월에 받기도 했다.  그래도 조금(많이) 짜치는데 지원까지 늦게 하니 다른 지원자들에게 치여 어드미션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예비군 퇴소와 같은 메커니즘이다. 늦으면 무조건 손해다.


2. SOP에는 영혼을 갈아라

미국 대학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영국 석사 지원은 수능이나 SAT 같은 별도의 입학시험으로 줄을 세우는 경쟁이 아니기 때문에 SOP(학업계획서)라는 에세이가 합격에 절대적인 변수가 된다. 특히 본인의 학점, 경력사항이 애매하다고 생각이 된다면 SOP에 영혼을 갈아넣어야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학점은 많이 모자랐지면 경력에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을 한 나머지 SOP에 두 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된다. 


(1) 스토리텔링 전략 실패 

서양 대학들이 스토리텔링을 매우 중요시 한다는 사실은 이미 검색을 통해 알고 있었. 정량적인 스펙이 부족해도 스토리가 좋으면 깊이 감명받고, 반대로 스펙은 좋은데 그걸 무미건조하게 나열하면 오히려 매력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인터넷에 나와있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스토리텔링을 잘하면 그게 좋은 SOP냐고 묻는다면, 그런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다음 글에서 내 경험을 통해 영국 대학원 SOP에 있어 어떤 스토리텔링이 좋은 스토리텔링인지 나만의 고찰에 대해 다뤄볼 예정이다. 


(2) 학교 맞춤형 전략 부재 

시간이 많지 않았던 나, 공들여 한 개의 SOP를 만들어 여러 학교에 동시다발적으로 지원했다. 많이들 하는 전략이고 실제로 먹히기도 한다. 하지만 스펙이 낮은, 다시 말해 언더독의 입장에서 경쟁해야하는 지원자는 절대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되었다. 연애도 마찬가지겠지만, 잘생긴 녀석들이야 마구잡이로 고백해도 잘만 연애하지만, 애매한 우리는 여성 분의 취향을 고려한 맞춤형 고백을 하지 않으면 어장에조차 들 수 없다. 나는 못난 놈인 주제에 마치 잘난 놈처럼 SOP를 작성했고 결과는 처참했다. 

"착해서", "예뻐서" 따위로 대답하면 Game over. 그녀의 취향을 저격할 구체적인 대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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