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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망친 곳의 낙원 Jul 14. 2022

07. LSE 합격한 썰푼다

아참, 대학원이다! 고딩들 쏘리 

무려 한 달 반 만의 연재다. 헌터X헌터 토해라 일가시도 이정도는 아닐 테다. 정말 만약 기다리고 계신 분이 계셨다면 죄송하다. LSE 합격한 SOP 떡밥, 이제야 회수한다. 



대학원 어드미션이 학부에 비해 받기가 쉽다곤 해도 기본적으로 경쟁률이 10:1을 상회한다. 지원자 중 나 정도의 업무 경력을 가진 놈이 적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나보다 좋은 학부를 나보다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녀석들은 수두룩 빽빽할 것이다. 그리고 그 교집합인 녀석들은...그냥 내 상대가 아니다. 


냉정하게 봤을 때 나는 언더독이라고 생각했고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SOP를 작성했다. 내가 실제로 작성한 SOP의 일부를 보며 내가 중점적으로 생각한 부분을 적어보겠다. 나는 쫄보이기 때문에 호-옥시 생길 문제를 대비하여 영문 번역본이 아닌 국문 초고로 리뷰하겠다. (최종고엔 문장이 좀 더 다듬어졌을 뿐 내용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1. 나의 캐릭터는 공익의 수호자 


솔직히 나는 공익보다는 시청률에 목매던 평범하디 평범한 PD였다. (게다가 자회사의 PD는 공익까지 생각할 여력 자체가 없었다). 이를테면 누군가에게 "재미와 감동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이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주저않고 재미만 잡아도 된다고 얘기하던 그런 사람이었다. 한때는 지상파에 대한 과한 규제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은 아님). 


어쩌면 그런 내게 적합한 연구주제는 "미디어 산업에서 콘텐츠가 경쟁력을 가지는 방안"이겠지만, LSE는 그런 식의 연구주제를 전혀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근거는 LSE의 가장 잘 나가는 교수님들이 모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문과 칼럼을 주로 쓴다는 점, 그리고 우수 논문이라고 게재된 것들이 역시도 그러한 주제들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듯이, 절이 좋으면 중이 맞춰야 한다. 다행히 나는 공영방송사(의 자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우리 회사는 표면적으로 공익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그 집 머슴이었던 나 역시도 공익의 수호자다. (정말 기적의 논리다). 


참, 제목과 첫 문장에 힘을 주는 것이 좋다. 나는 수미쌍관 구조로 갈 것이었기 때문에 먼저 연구 주제를 제목과 서두에 던졌다. 외국 애들은 이런 두괄식 구조를 훨씬 좋아한다. 


2. 스토리텔링 하기 


일단 공익의 수호자라 자처하긴 했지만, 직장만 가지고는 스스로가 자처하는 류의 캐릭터임을 모두 입증하진 못한다. 개인적인 경험들을 토대로 내가 진짜 그런 캐릭터를 가진 사람임을 강하게 주장해야만 했다. 다행히도 학창시절 나는 학생회장 출신이었고 그 당시는 MB정권 때로 시위가 빈번이 있었다. (=시위에 참여한 게 아~~~주 특별할 정도로 대단한 경험은 아니라는 뜻). 


또 나는 농활 매니아이기도 했는데 이런 사회참여활동들이 공익의 수호자로서 SOP를 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실제 영국에서 학부를 나온 여러 학생들을 만나보니 영국 대학들은 학생들의 활동(흔히 Society activities라 부르는)을 매우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여기까지 오면 나는 학창시절부터 사회적 메시지에 관심이 많던, 공영방송 출신의 PD가 되어있다. 그리고 학점이 낮은 것은 사회활동에 전념했기 때문이라며 은근히 어필하고 있기도 했다. (사실 거기까지 생각해주길 바랐다는 게 더 맞지). 


개인적으로 스토리텔링 할 때 절대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경험하지 않은 일을 리얼하게 쓴다는 건 천하의 이야기꾼 김은숙, 김은희도 해내지 못하는 일이다. 어떤 캐릭터를 보여주기로 결정했으면 자기가 실제 했던 경험을 나열해 캐릭터와 최대한 연결시키려고 애쓰는 편이 훨씬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된다. 창의력은 그렇게 써야 한다. (이건 정말 확신한다). 물론 자신의 활동의 의미에 대해 전략적으로 각색하거나 조금 부풀리는 건 어느 정도 해야겠지만. 


3. 연구주제와 캐릭터 연결하기 


다음으론 이 선한 공익의 수호자가 현재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밝힐 차례다. 여기서는 창의력보다는 연구가 좀 필요하다. 본인이 어필하고자하는 연구 주제에 대한 영문 논문을 최소 5편 정도는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력이 된다면(본인이 언더독이라고 생각한다면 필수로), 지원하고자 하는 학교의 교수가 쓴 논문을 탐독하는 것이 좋다. 나도 대학원이 처음이라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대학원은 결국 지도교수 아래에서 논문을 써야 졸업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돌려 말하면 내가 연구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아는 교수가 없으면 제 아무리 잘난 학생도 받아주기가 좀 힘들다. 그걸 또 돌려 말하면, 이 학교 교수들이 좋아할만한 주제를 연구하겠다고 하면 조금 못나도 받아주기가 좀 용이하다. 


마침 공영방송에 대해 연구하는 교수가 LSE에 있었다. 이미 LSE의 학풍에 대해 들었을 때 확신했던 부분이다. 그 교수의 논문 서 너편을 찾아 번역하고 읽으며 나의 SOP와 궁합이 맞는 문장들을 수집했다. 그리고 수집한 문장 중 가장 아귀가 잘 맞는 것을 하나 선택해 최종 낙찰했다. 


자, 이쯤되면 공익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진 선한 공익의 수호자가 마침 LSE 교수가 좋아할만한 주제로 공부를 하고싶어 하는 상황까지 끌고왔다. 이제 골키퍼까지 제꼈다. 골 넣으러 가야지. 


4. 포부는 오그라들게 


SOP, 그러니까 학업계획서도 일종의 에세이다. 모든 종류의 글이 그렇겠지만 마무리가 중요하다. 하고 싶은 말은 앞에서 다 했으니 이젠 글을 안정적으로 소강시켜야 한다. 


마무리는 다소 감정적으로 써도 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어차피 팩트보다는 포부가 들어가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오그라드는 것을 겁낼 필요가 없다. 나는 결론에 마치 스스로를 MBC가 공영방송 수호를 위해 보낸 마지막 희망인양 스스로를 포장했다. (사실 대부분의 직원들이 나의 존재조차 모름). 


그리고 중요한 것, '이만저만해서 네가 좋아'라고 써왔으니 꼭 '그러니 나랑 사귀자'라고 박아줘야 한다. 이 글의 결론은 결국 '저 LSE에 좀 꽂아주세요'이기 때문이다. 



결론 

공학계열의 대학원이 SOP에 매우 구체적인 연구주제와 실적을 요구한다면, 문돌이들의 학업계획서는 그보다는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배우는 게 다 그런 것들이니). 공학계열의 그것이 일종의 스트레이트성 기사라면 문돌이들의 그것은 일종의 소설이나 에세이에 가까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소설이나 에세이가 흥하기 위해서는 첫째도 캐릭터, 둘째도 캐릭터다. 그리고 그 캐릭터가 최종 목표와 끝까지 일맥상통할 수 있게 이어주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이다. 


나의 SOP는? 어떻게 생각할 진 모르겠지만 자평하기론 난 그것을 완벽히 해냈다. 결과적으로 2022년도 어드미션은 LSE와 골드스미스 모두로부터 받을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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