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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망친 곳의 낙원 Aug 01. 2022

[Day21~31] 457 단상 in London

지옥같았던 프리세셔널 첫 주 

2022.07.21~31 

매일 미루지 않고 일기를 올리겠다던 결심은 결국 20일째 무너지고 말았다. 모든 문제는 프리세셔널이 널널할 것이라고 생각한 내 착각에서 시작된다. 물론 매일의 일상을 메모해뒀기 때문에 몰아서 쓸 수도 있겠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번 주만큼은 한 주치를 뭉쳐서 일상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이유1. 굉장히 단조로운 일상이었다. (집-학교-도서관-집) 
이유2. 굉장히 부정적인 일상이었다. (좌절, 분노, 반성) 
이유3. 굉장히 시간이 없다. (미친 과제량) 


프리세셔널은? 

프리세셔널은 말 그대로 본격적인 학기를 시작하기 전 국제학생들을 위해 제공되는 영어능력 향상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국제 학생들은 입학 기준에 살짝 모자란 아이엘츠(토플) 점수를 보정받을 수 있다. 또는 영어 성적이 좋아도 곧바로 석사 과정을 듣는 것이 부담스러운 학생들에게도 좋은 연착륙의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전자와 후자 모두에 해당되는 학생이다. 


1. 일상이 단조로웠던 이유 

일단 강의가 10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이어진다. 순전히 강의시간만 그렇다. 총 3교시로 이뤄지며 매 강의마다 과제가 전달된다. 이따 또 얘기하겠지만, 과제가 너무 많다. 결국 나의 일상은 "이 악물고 등교하기" - "이 악물고 강의듣기" - "이 악물고 과제하기"로 단순화될 수밖에 없었다. 


2. 일상이 부정적이었던 이유 

애초에 스스로 영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제학생들 사이에서 내 영어가 하위권일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첫 번째 멘붕은 바로 거기서 터져버린 게다. 


95%의 학생이 아시아계고 그 중 90%가 중국인인데, 그들은 "중국인은 영어를 못한다"는 내 편견을 완전히 박살내버렸다. 물론 발음이 조금 구리긴 했지만(그건 나도 마찬가지), 교수의 강의를 정확히 따라가고, 교수의 농담에 웃고, 정확한 문법을 구사했다. 나는, 그저 그들이 웃을 때 웃는 척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과제만해도 그렇다. 홈페이지에 공식적으로 공지되는 과제 외에도 강의 시간에 산발적으로 던져지는 비공식적인 과제들이 많다. 안 한다고 감점이 되진 않지만, 확실히 다음 강의를 잘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 나름 집중해서 노트하지만 자꾸 빵꾸가 나는 과제들이 생기게 되고, 그것은 내 두 번째 멘붕으로 이어졌다. 클래스에서 과제를 다 해오지 못한 학생은 나 하나 뿐이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다 헐렁헐렁하게 생겼어도 저들은 대부분 자국의 서울대, 연고대 출신들이다. 타고난 머리도 좋고, 연식도 나보다 훨씬 싱싱하다. 이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난 이 곳의 최약자다. 


3. 시간이 없는 이유 

LSE가 원래 공부를 많이 시키기로 유명하다. 알고 왔고, 각오도 했다. 그런데 입학 전 언어 교육과정부터 이렇게 조져댈(?)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긴, 어쩌면 그들은 '적당히' 내줬는데 내 영어 실력이 그들의 기대보다 훨씬 바닥이라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일 수도 있겠다...


매주 3개의 논문을 가지고 토론하고, 요약하고, 발표하고, 그 주제와 관련된 여러 영상들을 보고, 또 요약하고, 또 발표하고...그리고 금요일에는 시간제한을 두고 현장 에세이 작문을 시키기까지 한다. (600단어를 볼펜으로 써야한다. 제일 토나오는 부분이다). 


가방에 태극기 패치를 달고 다닐 정도로 노골적으로 한국인입네 하고 다니는 나. 쪽팔려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의무감이 들었다. 어쩌겠는가.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해야지. 그렇게 한 주 내내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영어와 시름했다. 



결론적으로 어찌어찌 한 주를 잘 살아남았고 2주차를 준비하고 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맞나보다. 조금씩 이런 삶이 어느정도 익숙해지고 요령도 생기는 것 같다. 요령이 만들어낸 한 시간으로 이렇게 브런치도 쓰고 있다. 


다행인 점은 확실히 영어가 느는 것이 체감된다는 것이다. 한 주 전보다는 확실히 논문 읽는 속도가 빨라졌고, 늘 비슷한 단어들이 반복되는 논문의 특성상 사전을 찾는 시간도 많이 줄었다. 


가치있는 것일수록 얻기 어렵다는 것이 내 삶의 철학이다. 이번에도 그 철학이 맞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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