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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망친 곳의 낙원 Sep 15. 2022

[Day64-70] 457 단상 in London

챔피언스 리그 

2022.09.01 ~ 09.07 

당신에겐 버킷리스트가 있는가? 단언컨대 세상 모든 축구빠돌이들이겐 공통된 버킷리스트가 있을 것이다. 바로 챔피언스 리그 직관! 그런 면에서 한국은 축빠들에겐 매우 축복받은 아시아 국가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아들, SON, 쏘니, 손흥민이 챔피언스 리그 진출팀인 토트넘에서 뛰고있다는 것. 그냥저냥 하는 팀도 아니고 무려 작년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팀이다. 


오늘은 바로 그 토트넘의 22-23 챔피언스 리그 첫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본 학기가 시작되기 전 알바로 생활비나 벌며 심심한 삶을 이어가던 나에게 이건 모처럼 피가 끓어오르는 이벤트였다. 현우에게 부탁해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그것도 가장 좋은 자리로 예매했다. 


일과시간 동안 물류창고에서 알바를 하고, 저녁에 토트넘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화이트 하트 레인으로 향하는 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영국의 워킹클라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축구보고 들어와서 맥주 마시는, 전형적인 영국 working class의 삶.


보통의 프리미어 리그가 주말 낮에 열리는 것과 달리 챔피언스 리그는 주중 야간 경기로 진행된다. 현장 분위기는 낮의 그것과는 아예 달랐다. 서서히 땅거미가 지는 하늘 아래 눈부신 라이트가 경기장을 비춘다. 아직 경기가 시작되려면 한참 남았지만 이미 경기장은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외치는 홈팬들과 원정팬들의 에너지로 후끈후끈했다. 

낮과는 또 다른 후끈한 야간 경기. 영상 끝에 비속어 섞여 있음 주의. 


그리고 이윽고, 선수들이 입장하고 남자의 심장을 터지게 만드는 바로 그 오프닝 음악이 경기장에 울려퍼진다. 온 몸에 전율이 돋았다. 매일 새벽 가슴 두근거리며 TV로 시청했던 바로 그 장면을 코 앞에서 직관하는 그 느낌은 감히 글로 표현하기가 힘든 것이었다. 

이건 가서 보지 않으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감정. 


경기가 시작되자 양팀의 서포터들은 더욱 미친듯 응원하기 시작했다. 특히 멀리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날아온 원정팬들은 정말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불러댔다. 모두 웃통을 까고 홈팬들에게 주먹 감자를 날리기까지 하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그들에게 어쩌면 축구는 종교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다. 


축구가 종교인 건 홈팬들도 마찬가지. 선수들의 움직임, 심판의 판정 하나 하나에 환호하고 쌍욕을 박으며 90분 내내 쉬지 않고 소리지르고 있었다. 영국 놈들 욕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축구장에 와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경기는 꾸역꾸역 토트넘의 승리(정말 드럽게 못한다, 토트넘). 손흥민도 벌써 5경기 째 무득점이다. 손흥민이 무기력해 시무룩한 건 한국인들 뿐이었고 영국 토트넘 팬들은 집으로 가는 내내 달아올라 있었다. 비 내리는 열차 플랫폼에서 비를 맞아가면서도 모두 이드 아미(Yid Army, 유대인의 군대)를 외치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토트넘 지역이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살던 동네라 Yid(유대인)라는 애칭으로 불린다나. 


생각보다 많이 쏟아진 비에 쫄딱 젖어 집에 도착했지만 마음만은 어느 때보다 충만한 하루였다. 앞으로도 몇 번의 챔피언스 리그와 프리미어 리그를 직관할 수 있다는 것은 영국에서 유학하는 축빠들에겐 축복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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