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의 아침

by 이상역

어제 저녁에는 일행과 시드니 스템포드 호텔 바에서 밤이 이슥하도록 맥주를 마셔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외국에서 마시는 술은 사람에게 향수를 자극하는 조미료이자 첨가제다. 맥주를 한 병씩 손에 들고 낯선 땅에서 느끼는 밤의 여로. 일행은 잠이 오지 않는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호텔 바가 떠들썩했다.


지금은 일행이 곤하게 잠든 첫새벽이다. 호텔 방의 작은 테이블에 앉아 어제저녁에 보고 느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휘황찬란한 야경에 대한 감상을 비망록에 끄적거리는 중이다.


북극과 거꾸로 매달린 남극의 초승달

풋 잭슨만 물결 위로 출렁이는 빛의 도시


은빛 야경은 너울거리며 바다의 심연으로 빠져들고

하버 브리지 밑을 서성이는 북방의 나그네

반기는 것은 오직 초승달뿐이라네.


전설 바다를 일렁이는 잔물결

불빛이 사람을 유혹하는 밤의 길목에서

무쇠로 만든 철의 향기를 맛보았네.


시드니의 뭇별들이 나그네를 반기고

갈 길 모르고 방황하는 밤의 미로

검은 푸른빛에 갇혀 물결만 출렁이네.


하버 브리지를 달려가는 기차의 밭은 숨소리

정박지를 잃은 나그네는 부둣가를 서성이고

밤의 고독을 노래하는 여울진 파도 소리

어쩌다 시드니에 구름을 타고 와

미의 원형질을 만났네.


생애 처음 마주한 은빛의 보랏빛 향연

가을에서 봄을 따라온 북극의 시간이

길을 잃고 부둣가를 서성이네.


아침의 단잠을 깨우는 은은한 새소리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호주 시드니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 밝은 햇살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새벽을 밝혀준다.


그동안 차와 사람 소리가 단잠을 깨웠는데 오늘은 모처럼 남녘의 이름 모를 새가 쪼르륵 날아와 단잠을 깨우며 노래를 부른다.


사람은 집을 떠나면 고향과 가족에 대한 기억을 잠시 잊고 일행과 낯선 밤거리로 나서거나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시름을 달랜다.


여행은 어느덧 종점을 향해 간다. 이번 건축문화 여행의 색깔은 초원의 녹색과 호주의 시드니에서 만난 미의 원형을 찾아가는 여정이란 생각이 든다.


초원의 녹색에는 순수하고 원시적 색깔이 들어있다. 뉴질랜드는 초원에서 그린을 노래하고, 시드니는 푸른 정원과 나무들이 미를 이루어 도시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뉴질랜드는 근원적인 냄새가 깔려있고 호주는 서정적이고 도시적인 냄새가 강하다. 호텔 창문 밖 수영장에는 하늘의 파란 물이 그대로 담긴 채 출렁이고, 하늘을 떠가는 조각구름은 바람에 실려 정처 없이 어딘가를 향해 흘러간다.

오늘 아침의 기상 시간은 여유롭다. 그동안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행동하고 움직이다 보니 군대에서 훈련받던 시절이 떠오를 정도였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조금만 늦어도 단체로 기합 받던 군대 시절이 이번 여행에도 기합만 제외하고 그대로 적용되었다. 몸이 긴장 상태를 유지하다가 갑자기 느긋해지자 늘어져만 간다.


일행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다. 호주는 대륙의 나라답게 호텔을 하늘로 치솟게 짓지 않고, 밥상을 펴듯이 바닥으로 펼쳐 지은 풍요가 부럽기만 하다.


우리는 자투리땅만 생겨도 하늘 높이 건물을 치솟도록 짓는다.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는 잣대는 들이댈 수 없지만, 호주와 우리나라 국토의 넓이에 차이가 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도 대륙 국가라면 호주와 같이 건물을 펼쳐 짓겠지만 국토가 좁으니 효율성과 경제성을 따져 건물을 높이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행을 와서 며칠 만에 여유로운 시간이 생기니 이제야 우리나라와 달리 보이는 것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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