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의 봄

by 이상역

고산자는 우리나라 삼천리를 두 발로 걸어서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호다. 학창 시절 조선 시대 때 지도를 만든 선각자라는 것을 배웠고, 지리원에 근무하면서 출퇴근길에 자주 만난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지도를 만드는 국가기관이다. 지리원 정문에 들어서면 청사 좌측에 야트막한 언덕 위에 고산자 김정호의 동상이 서 있다.


동상에는 지도를 만드는 기구를 어깨에 짊어지고, 오른손엔 나침반을 왼손엔 지도를 그리는 종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 바라보인다.


그 동상 옆에는 고산자를 추모하기 위해 ‘고산자의 봄’이란 아름다운 시구를 화강석에 또렷이 새겨놓았다.

꿈에도 / 잠에서도 / 太白小白 짚어내려

어느 골 貧木 아래 / 돌을 베고 누웠어도

가슴은 / 창공에 올라 / 鳥瞰하고 섰었니라


풍상 기갈이사 / 언제 / 벗어 걸어 봤으랴

발로 발로 / 오직 두 발로

재고 누비고 새겨온 山河


그 홀로 선 저 먼 고독의 부리여

오호 / 大東輿地圖 / 그대 (중간생략)


고산자 동상은 우리나라 지도 제작의 선각자인 김정호를 기리기 위해 지리원에서 세워 놓은 것이다. 아마도 국내에서 김정호 동상을 세워 놓은 곳은 이곳 외에는 없을 듯하다.


고산자 동상이 선 곳은 광교산 자락의 시작점이다. 그리고 동상 옆에 지리원도 광교산 자락의 시작점에 자리하고 있다.


고산자의 인물과 업적에 대하여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학창 시절 국사나 사회를 배우면서 그리고 영화나 TV 등을 통해서 접한 것이 전부다.


오늘날 지도는 생활의 선택이 아닌 필수품이 되었다. 나는 어디를 가고자 하면 먼저 인터넷을 검색해서 가야 할 위치나 주변의 음식점이나 관광지를 대충 훑어보고 간다. 그리고 차로 운전해서 갈 때도 내비게이션을 켜고 목적지를 찾아간다.


조선 시대에 지도는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자료로 다루었다. 따라서 관청 외에 개인이 지도를 제작하면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으로 몰려 사형을 면할 수가 없었다.


광교산의 야트막한 언덕에서 수원 시내를 내려다보는 고산자의 동상을 아침저녁으로 만난다. 고산자와 지리원은 광교산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런 인연이나 연고가 없다.


어쩌다 지리원이 광교산 자락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 고산자도 광교산과 인연을 맺은 것이다. 퇴근길에 고산자 동상 옆을 지나 광교산을 올라갈 때면 고산자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나도 고산자처럼 두 발로 전국을 걸어 다니며 지도나 한번 만들어 볼까. 오늘날은 측량 기술이 발전해서 굳이 걸어 다닐 필요는 없다지만, 사무실에서 광교중앙역까지 걸어가고 걸어오면서 고산자가 걸었던 길을 생각하고 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를 떠올리곤 한다.


고산자는 두 발로 전국을 누비면서 지도를 만들었다. 백두산과 한라산 그리고 태백산과 금강산을 오르내리며 지도를 만드는 일에 한평생을 바쳤다.


고산자는 지도 제작의 선각자이자 과학자다. 백성들에게 지리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대동여지도 지도유설(서문)에 "모든 백성이 여행하고 왕래하는데 무릇 수로나 육로의 험하고 평탄하고에 따라 나아가고 피하는 내용들을 모두 몰라서는 아니 된다."라고 적어 놓았다.


지도는 과학적인 지식과 측량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알아야 만들 수 있다. 또 지도 제작은 아무나 제작할 수 없다. 학창 시절 선생님이 칠판에 그린 한반도 지도는 지도가 아니라 그림이다. 그림은 눈대중으로 국토의 생김새를 모양에 따라 그린 것이다.


그러나 지도는 산과 하천 등의 세세한 것과 축적 등을 생각하면서 점을 찍고 선을 긋고 경위도를 생각해서 사물의 위치를 정교하게 그려 넣어야 한다. 지도 제작의 세세한 부분은 잘 알지 못하지만 뒤늦게 고산자를 만나면서 호강 아닌 호강을 누리는 신세다.


학창 시절에는 지도와 관련한 지리 과목을 좋아했다. 또 대학에서 배운 전공도 지리와 관계있는 분야다. 그러다 지리원에 와서 지도와 관련한 것을 접하게 되면서 지도에 대하여 상세하게 알게 되었다.


고산자 동상 옆을 지나갈 때마다 고산자를 연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얼마나 오랫동안 연구해야 고산자가 살았던 세상에 다가갈지는 모르지만, 어떤 마음과 자세로 지도를 그리는 일에 일생을 바쳤는지 상세하게 연구해 보고 싶다.


더해서 고산자가 제작하고자 했던 지도에 대한 많은 것을 세상에 전해주고 싶다. 역사적 인물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힘들고 어렵다.


그 이유는 적어도 그 사람이 남겨놓은 업적과 행적 등을 적어 놓은 기록을 찾아 깊은 분석과 연구가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퇴근길에 고산자 동상을 등지고 광교산 자락을 올라가야 한다.


그 길에서 고산자는 어떻게 지도를 그릴 것인가를 생각할 것이고,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삶의 지도를 생각할 것이다. 고산자와 내가 가는 인생의 길과 방향은 다르지만, 지도를 그리는 목적과 방향은 같아서 동행은 가능할 것이다.


더불어 고산자는 광교산 자락에서 봄을 노래하고, 나는 지나가는 계절의 사라짐을 노래할 것이다. 그렇게 봄과 지나가는 계절이 서로 만나고 어울려 인생이란 삶의 지도를 그리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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