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먼 곳에

by 이상역

벌써 2월이다. 이곳에 와서 근무한 지도 수개월이 되었다. 올 겨울도 그럭저럭 지나간다. 강추위도 그렇다고 눈이 많이 내리지도 않았다.


겨울의 추위와 눈보다도 미세먼지를 걱정하며 보낸 것 같다. 겨울이 누그러지고 봄이 오는 것은, 계절의 순환이다. 우수가 지나고 다음 주면 경칩이다. 경칩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절기다.


그동안 사무실이 조용하다 지도박물관 옆에 위성센터 건물을 짓는 공사로 시끄러워졌다. 아침부터 굴삭기로 나무를 뽑고, 뽑은 나무를 기계톱으로 자르고, 콘크리트 절단기로 콘크리를 자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앞으로 위성센터 건물을 짓기 위해 땅을 파고 자재를 실은 트럭이 왔다 갔다 하는 소리로 조용할 날이 없을 것 같다. 그간 고요한 분위기로 지내다가 공사로 인한 소음에 시달리자 시간은 정신없이 빠르게만 흘러간다.


지금까지 소음이래야 지도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 찾아오는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 재잘거리며 웃는 소리가 전부였다. 그런데 건물 짓는 공사로 몇 달간은 소음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


사무실 유리창이 소음을 막는 이중창이면 창문을 닫으면 그나마 소음이 줄어들 텐데 이중창이 아니라서 공사로 인한 소음이 그대로 사무실을 뚫고 들려온다.


사무실 뒤편에서 들려오는 소음으로 귀가 먹먹하지만, 봄날의 기운은 공사하는 현장이나 사무실이나 주변에 서서히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


겨울에는 아침에 출근길을 나서면 주변 사위가 컴컴했는데 어느새 어둠은 사라지고 밝은 햇살이 반겨준다. 출근길에 이곳저곳 바라보면 천지사방에서 봄의 기운이 대지의 바람을 타고 서서히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전철역에서 내려 광교산 여우 길을 걸어가면 봄의 기운이 충만하게 차오른다. 다른 무엇보다 봄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는 것은 길가에서 자라는 나무를 통해서다.


나무에게 봄의 기운을 전달받으면 몸도 봄의 충만한 기운에 약간 달뜨면서 달아오른다. 광교산 숲길에도 봄의 전령이 곳곳에서 고개를 불쑥불쑥 내밀며 계절을 재촉한다.


사무실에 도착해 의자에 앉아 광교산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사무실을 타고 넘어가는 바람을 바라보는 중이다. 광교산을 올려다보면 산을 타고 넘어가는 바람의 강도와 세기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알 수가 있다.


겨울에는 바람이 사무실에서 광교산을 향해 세차게 불어 가지만 봄에는 광교산에서 사무실을 향해 어슬렁거리며 데면데면 내려온다. 봄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너울 바람을 타고 소풍을 다니는 것 같다.


겨울에는 바람이 산 위로 거칠게 불어 가고 봄이 다가오면서 바람은 산 아래로 대지에 스며들듯 불어온다. 바람도 시절과 계절을 타는 것 같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면서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하늘의 미세먼지만 아니면 사무실 밖에 나가 산책하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다. 사무실에서 공사로 인한 소음을 들으며 업무를 보려니 일의 능률이 오르지를 않는다.


봄은 생명의 전령이라는데 내게 봄은 생명이 아닌 소음으로 얼룩진 전령으로 다가온다. 산골짜기 안으로 찢어질 듯 퍼져가는 굴삭기 울림소리.


이제는 그칠 만도 한데 여전히 사무실은 소란스럽다. 콘크리트를 자르는 아저씨는 바쁘기만 하다. 주어진 일을 마무리 짓고 다음 일을 해야 해서 사무실 안에 근무하는 사람의 기분을 고려할 수가 없다.


올해는 사무실에서 조용하게 보내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위성센터 건물을 짓고 나면 사무실을 다시 짓는 공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사무실에 앉아 굴삭기 소리와 트럭이 오고 가는 소리를 듣기 싫어도 들어야만 한다. 봄이 다가와도 충만함을 느끼기보다 공사로 인한 소음이 봄의 기운을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형국이다.


다음 달이면 춘삼월이다. 2월이 지나가면 겨울은 사람들 몸에서 하나하나 떨어져 나갈 것이다. 내달이 되면 봄을 맞이하는 온갖 행사와 이야기가 쏟아질 것이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봄을 보람차고 의미 있게 계획을 세워서 보내고 싶다. 겨울이 지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봄이 다가오고 지나가는 것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만은 없어서다.


봄을 제대로 맞이할 수 있게 계획을 세워 지난해보다 튼실하게 보내야겠다. 아직 봄은 다가오지 않았지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서 맞이해야겠다.


내년에는 어쩌면 봄을 직장에 근무하면서 맞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가을처럼 나도 직장을 떠나 사회로 나갈 채비를 해야만 한다.


사무실 창밖에서 공사로 인한 소음이 끊임없이 들려와도 봄은 하나둘 창문 틈으로 밀려오고 있다. 그런 봄을 어떻게 맞이하고 누릴 것인지는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채비하느냐에 따라 깊이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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