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숲길

by 이상역

요즈음 전철을 타고 출퇴근한다. 분당선 정자역에서 신분당선으로 갈아타고 광교중앙역에서 내려 사무실까지 걸어가고 걸어온다.


전철역을 빠져나와 아파트 단지 도로를 지나 다산중학교 맞은편 산자락의 숲길로 접어들면 나무 그늘과 산그늘이 겹쳐지면서 생긴 서늘함에 기분은 청량해진다.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것은, 도로에서 일 분만 걸어가도 바로 산자락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한몫은 차지할 것이다.


계절은 어느덧 오월의 끝자락을 향해 부지런히 비껴간다. 지난해부터 광교중앙역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오고 걸어간 것도 근 칠 개월이 되어간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며칠 동안만 걸어 다니다 주변 지리에 익숙해지면 차를 타고 출퇴근하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덧 아침저녁에 여우 길을 삼십 분씩 걸어가는 것이 즐거워졌다.


지금은 반대로 차를 갖고 출퇴근하고 싶어도 걷는 것을 즐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차를 집에 두고 터벅터벅 길을 나서는 것에 익숙해졌다.


여우 길은 저녁보다 아침에 사무실까지 걸어오는 것이 훨씬 기분이 좋고 상쾌하다. 계절의 여왕 오월답게 주변의 신록이 우거진 녹색의 기운을 전달받으면 기분은 배가 된다.


봄에는 생명의 탄생을 바라보며 경외감을 느끼면서 산뜻하게 걷고, 신록이 우거진 오월에는 풍성함과 여유로움을 느끼면서 걷게 된다.


광교산 여우 길을 걷다 보면 다른 상념은 사라지고 신록의 바다에 마음이 풍덩 빠져든다. 그런 기분과 느낌으로 초록의 동굴을 천천히 걸어가면 세상에서 제일 부자가 된 듯하다.


이런 기분과 느낌을 누리는 시간도 얼마 남지를 않았다. 직장에 근무하면서 봄 길을 걷는 것과 직장을 퇴직하고 사회인이 되어 봄 길을 걷는 느낌은 확연히 다를 것이다.


걷는 게 좋다 / 시간도 갈 길도 정함 없이

가는 대로 걷는 게 좋다 / 걷는다는 것


내 안의 나와 만나고 / 생각의 미로를 헤매다

나를 깨우는 것 / 아침 안개의


저녁노을의 / 무엇이라도 좋다

걸어온 길에는 / 지나온 흔적이


지금의 고뇌가 / 내일의 희망이 있는 것

오늘 나는 / 침묵하는 내게로 걸어가고 있다(이승무 시인, 걷는다는 것).


초록의 숲과 어우러진 한적한 길을 걸어갈 때면 사람마다 느끼는 기분과 감정은 각기 다를 것이다. 어떤 마음과 여유로움으로 길을 걸어가느냐에 따라 그 길에서 만나는 정경과 풍경은 달라진다.


시인은 갈 길을 뚜렷하게 정하지 않고 터벅터벅 걷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게 걷는 길에서 자신의 과거라는 흔적도 만나고 정체성도 고뇌한다. 또 내일이라는 희망을 생각하며 자신의 내면을 향해 소리 없이 걸어가는 단상을 시로 승화시켰다.


사람은 집을 나서기 전에 어딘가를 가야 한다는 목적지를 정한다. 하지만 막상 걷는 길에 들어서면 목적지는 잃어버리고 주변의 풍경과 생각에 흠뻑 빠져든다.


사람은 몸을 움직이려면 반드시 두 다리를 움직여야 한다. 걷기는 두 다리의 교차적인 활동이다. 오른발 왼발을 서로 교차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본능적인 움직임이 걷는 행위다.


그렇게 다리를 서로 교차시켜 걷다 보면 머릿속에는 생각과 감정이 태동한다. 출근길에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면 여우 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 길에 들어서면 사무실로 가는 목적은 잊은 채 터벅터벅 걷는 행위에 집중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런 과정에서 주변의 신록을 바라보며 오늘은 무엇을 하며 하루라는 일상을 보낼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숲 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아침부터 울어대는 장끼의 ‘꿩꿩’하며 들리는 울음소리를 교향곡 삼아 길을 따라 걸어간다.


숲길을 걸어갈 때도 주변에 나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느끼는 감정의 깊이가 달라진다.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으면 길을 걸어가는 느낌이 즐겁고 기분이 상승하지만, 나무가 없는 허허벌판을 걸어가면 기분은 하강하고 감정도 떨어지고 걷는 행위에 의무만 더해간다.


광교산 여우 길은 야트막한 구릉으로 이어졌다. 주변에는 리기다소나무, 벚나무, 참나무, 아카시아 등이 자라고 그 길을 걸어오고 걸어가는 것이 참 즐겁기만 하다.


아침부터 시원한 바람과 나무 그늘의 보호를 받으며 숲길을 걸어가면 마음은 상쾌해진다. 오월은 계절의 여왕답게 아카시아꽃이 만발하는 계절이다.


아카시아꽃이 여우 길에 눈꽃처럼 떨어져 길을 걸어가는 맛이랄까 멋이랄까 마음이 즐겁다. 그런 길을 걸어가면 생각이 열리고 가슴이 열리고 하루가 새롭게 열린다.


오늘도 여우 길의 그늘진 황톳길을 걸어가면 저 멀리서 걸어오는 나그네의 앞모습이 보이고 나를 지나간 나그네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만나는 곳이 숲길이다. 그 약속된 길에서 가끔 아는 얼굴을 만나고 그리운 얼굴도 만난다. 계절은 하염없이 앞으로만 내달리고 오늘도 동쪽 하늘에서 태양은 어김없이 광교산 정상을 향해 솟아오른다.


아침에 광교산 여우 길을 걸어가면 마음은 저절로 고독해진다. 그 걸음에 외로움이 땅바닥에 깔리면서 어제를 돌아보고 오늘을 생각하고 살아가야 할 내일을 생각한다.


아침마다 숲길을 걸어가는 삶이 나는 참 좋다. 숲길을 걷다 보면 바쁜 마음도 사라지고 오늘 하루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무감도 사라진다. 그리고 오롯이 나라는 고독한 존재와 대면하는 삶의 진실함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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