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찬미

by 이상역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유일한 즐거움은 길가에 선 가로수를 바라보는 것이다. 가로수는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아달라고 애걸하지도 않고, 몸에 붙은 단풍잎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뜰을 가꾸면서 때가 되면 비움과 채움을 반복하며 생명을 노래한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하는 거라곤 길을 오고 가면서 가로수를 바라보며 계절을 인식하고 삶의 시간을 측정할 뿐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인생이란 거창한 말과 수식어를 동원해서 꾸며야 하는 장식품으로 여겼다. 젊은 시절에는 인생이 장밋빛과 같이 달콤하고 은은하고 푸르게만 보였고, 내 인생은 나의 것 하며 부른 대중가요의 노랫말처럼 오롯이 내 것인 줄만 알았다.

토요일이 휴일로 바뀌면서 습관 아닌 습관이 생겼다. 토요일에도 평소처럼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사무실을 찾아가는 것이다. 휴일에 산이나 낚시나 여행이라도 다니면 좋으련만. 아직은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고, 취미 하나 제대로 갖지를 못했다.

휴일에 사무실을 찾아갈 때면 마음의 무게가 달라진다. 평일에 사무실을 출근할 때는 마음이 무겁고 주변의 사물도 그저 그렇게 다가온다. 하지만 휴일에 가방을 손에 들고 가면 주변의 사물이 밝게 보이고 풍경도 안온하게 다가온다. 사람의 마음에 목적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깊이와 폭이 달라지는 것 같다.

오늘도 가벼운 마음으로 전철에서 내려 터벅터벅 걸어간다. 사무실로 가는 길가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바람에 살랑대며 춤을 춘다. 은행나무는 몸의 팔뚝을 싹둑 잘린 채 깊은 상처를 안고 서 있다. 팔뚝이 잘려 나간 둥치에서 나뭇가지가 자라고, 여린 가지에 노란색으로 물든 은행잎이 아름답지만 슬프게 다가온다.

은행나무는 자기가 살던 정든 고향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나왔다. 자신의 모태인 뿌리를 송두리째 뽑힌 채 생사의 기로를 헤매다 이곳에 와서 어렵게 정착해서 생명의 대를 이어가는 것이다. 은행나무는 자신이 살던 고향의 익숙한 바람과 친구와는 생이별을 당했다.

은행나무가 살던 고향에는 자신만의 우주와 별자리와 바람과 비와 눈보라가 서려 있을 것이다. 사람이 도시의 미관을 위한다는 이유로 가지와 뿌리를 자르고 성장한 방향도 고려하지 않은 채 가로수로 심은 것이다.

길가의 은행나무는 사람처럼 말을 하지 못한다. 그저 묵묵히 사람이 심어 놓은 자리에서 매년 눈물을 뿌리며 가을이면 단풍으로 슬픈 계절을 노래한다. 은행나무가 할 말이 없는 것 같지만 나무가 전하는 진정한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사람도 연고 없는 허허벌판에 가서 살라고 하면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다. 은행나무는 성하지 못한 몸을 이끌고 계절마다 자람과 변화와 색깔을 빛내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도 나무처럼 계절마다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는 없을까?

매년 은행잎을 노랗게 물들이며 계절을 노래하는 은행나무가 부럽다. 사람에게 모진 시련과 생명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자신만의 색깔과 모습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밝혀주는 은행나무를 바라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사람도 묵묵히 일하면서 자신만의 은은한 색깔과 개성을 갖춘 사람을 만나면 은근히 부럽다. 평소에 삶의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란 좀처럼 힘들다. 너무 빠른 변화와 문화 때문에 잠시도 머뭇거리며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좀처럼 생겨나지 않는다.

요즈음 사람들은 자고 나면 정보화를 외치고 개혁을 외치고 변화를 외친다. 몸의 중심을 한곳에 집중하려고 해도 주변에서 무언가를 외쳐대면 그것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몸담은 직장에도 대통령이나 기관장이 바뀔 때마다 부르짖는 구호를 외면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딱히 그 구호에는 손에 잡히는 것도 없다. 마치 대기의 공기처럼 아무것도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런 막연한 구호에 나도 어정쩡하게 편승해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신세다.

삶이란 하루하루 생활하며 보고 느끼고 만지고 하는 일상의 반복이다. 그 반복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고난의 길이며 참고 이겨내는 인내의 길이란 것을 배워간다.

길가의 은행나무처럼 자신의 목소리와 색깔로 세상을 향해 노래하는 삶을 배워야 할 것 같다. 더불어 그 노래에는 아름다운 슬픔이 잠재된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모든 생명은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태어난다. 어떠한 삶도 희생이란 대가 없이는 소망의 끈을 부여잡을 수 없다. 몸의 팔뚝이 싹둑싹둑 잘린 은행나무는 생사의 기로를 헤매다가 간신히 스스로 살아갈 길을 찾았다.

오늘도 나는 길가에 선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생명의 소중함과 가슴에 소망을 부여안고 아름다운 생의 찬가를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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