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의 날갯짓

by 이상역

고향에서 노을 진 시루봉을 바라보며 ‘기러기’란 동요를 부르던 때가 생각난다. 붉은 노을이 물든 서편 하늘에 기러기들이 무리 지어 날갯짓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산 너머 낯선 세상을 동경하던 시절이 아련하게 밀려오며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해변에 바닷물이 밀려왔다 나갈 때 드러나는 모래알처럼 동심의 영글지 않은 꿈들이 환영처럼 앞가슴에 밀려와 생각의 톱을 쌓는다.


달 밝은 가을밤에 기러기들이

찬 서리 맞으면서 어디 로들 가나요

고단한 날개 쉬어가라고

갈대들이 손을 저어 기러기를 부르네(윤석중 작사/포스터 작곡, 기러기)


가을날에 ‘기러기’란 동요는 부르면 부를수록 가슴 아린 서정과 정경을 떠올리게 한다. 연약한 갈대가 바람에 서걱거리는 계절이다.


오랜만에 둑길을 걸어가며 ‘기러기’란 동요나 큰 소리로 불러보고 싶다. ‘기러기’란 동요의 가사가 참으로 멋스럽다. 이 동요는 부를 때마다 지은이의 마음과 가을의 전설을 떠올리게 한다.


가을밤에 찬 서리를 맞아가며 날갯짓하는 기러기의 비상을 바라본 지도 꽤 오래다. 오늘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의 밤하늘이 보고 싶고, 옛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한 번쯤 가고 싶은 옅은 꿈을 꾸어본다.


고향에는 유년 시절의 꾸었던 꿈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아마도 그 시절의 꿈은 하늘을 나는 기러기만 알고 있을 것이다.


하늘에서 날갯짓하는 기러기 모습을 보고 갈대들이 손짓하며 쉬어가라는 비유는 동심에서만 나올 수 있는 詩語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하는 마음과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이 서글프다. 더불어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한 아련한 추억이 또렷이 떠오른다.


고향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아버지는 소를 끌고 들녘에 나가 풀 뜯기는 일을 자주 시켰다. 그 소를 앞세우고 앞산에 올라가 저녁이 다하도록 소와 함께 싸다녔던 야생의 푸른 시간이 생각난다.


모처럼 ‘기러기’란 동요를 부르며 지난 시절을 돌아보니 가슴 아린 추억이 송골송골 돋아난다. ‘기러기’란 동요가 가을의 전설을 떠올리게 하고 가슴속에 간직한 밀어를 끝없이 들추어낸다.


기러기는 자기 짝을 잃으면 한평생 홀로 산다. 그런 외기러기의 마음과 사랑을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오늘은 가을을 상징하는 기러기가 동요로 환생해서 옛 시절을 떠올려보았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고 하늘을 날던 기러기를 볼 수 없는 아쉬움을 ‘기러기’란 동요나 불러가며 마음을 달래 본다.

가을은 참 아름다운 계절이다. 계절의 미는 나이가 더해갈수록 새록새록 높아간다. 기러기가 하늘을 비상하는 날갯짓은 푸르름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생의 비상이자 날갯짓이다.


오늘은 아이의 손을 잡고 뒷동산 언덕에 올라가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를 바라보며 ‘기러기’란 동요나 큰소리로 불러보고 싶다.


어느새 가을이 소리 없이 다가왔다 밀려간다. 계절은 시간을 따라 오고 가는데 우리는 그런 계절의 변화를 외면하고 바쁜 듯이 들숨 날숨만 열심히 토해낸다.


세상살이가 점점 고달프고 힘들어만 간다. 요즈음 무언가 하나의 대상에 미치도록 빠져들고 싶어도 마음만 앞설 뿐 실천하지 못하는 나날의 연속이다.


삶의 무게를 벗어버리고 오롯이 옛 시절의 꿈이나 하나둘 떠올리며 살아가는 삶은 정녕 누릴 수 없는 것일까? 어린 시절에 꾸었던 무지개 같은 영롱한 꿈들이 그립기만 하다.


비록 그 시절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지만, 아련한 상념에 젖어본다. 가을은 사는 것에 대한 이유와 왜 사는 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계절이다.


뭇 생명이 스러져가는 가을밤에 ‘기러기’란 동요나 부르면서 삶의 고단한 마음이나 위로하고 달래주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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