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는 유명하거나 높은 산은 없지만, 역사적 인물이나 6.25 전쟁과 관련한 태령산과 문안산과 봉화산이 나름 유명하다. 이들 산은 서로 마주하고 있고 높이도 비슷비슷하다.
그중에 태령산은 김유신 장군의 태를 묻은 산으로 역사적으로 꽤 알려졌다. 고려 시대까지 봄과 가을에 국가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태령산은 해발 높이가 450m다. 태령산 정상에는 김유신 장군의 태를 묻은 태실이 조성되어 있고 태실은 자연석으로 둥글게 기단을 쌓아 봉토를 만들어 돌담을 쌓아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해 놓았다.
아버지 기일을 맞아 고향에 내려갔다. 아버지 기제사를 지내고 이튿날 어머니가 태령산 밑에 조성한 김유신 장군 탄생지에서 공공근로를 하신다기에 차로 모셔다 드렸다.
공공근로가 오전에 끝나서 어머니를 기다릴 겸 태령산 정상에 올라가 태실이나 보고 오기로 했다. 태령산은 젊은 시절에 한번 올라간 적이 있는데 어떻게 올라가고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김유신 장군 탄생지에서 태령산 정상까지 거리는 약 1㎞다. 장군의 탄생지 밑에 조성한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태령산에 올라가기 위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주차장을 벗어나자 화랑정으로 올라가는 콘크리트 길이 나왔다. 화랑정은 김유신 장군이 어린 시절 이곳에서 활쏘기를 즐겼다고 해서 국궁장으로 조성해 놓았다. 한옥처럼 지은 화랑정 건물을 지나자 본격적인 등산길이 시작되었다.
태령산으로 올라가는 길로 들어서자 태실로 가는 길과 연보정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연보정은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이 신라 시대 만노군 태수로 있을 때 사용한 우물이다.
우물은 신라 시대에 성을 쌓는 수법과 똑같이 자연석을 이용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어 신라 시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
등산길로 접어들어 연보정을 내려다보며 태실로 올라가자 태실까지 약 1㎞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을 바라보며 지나가자 가파른 등산길이다.
태령산은 산 밑에서 바라보면 경사가 심하지 않아 보이는데 막상 등산길에 오르자 경사가 심했다. 태령산의 태실을 보러 가는 것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한 것 같다. 어머니에게 한 시간 내에 올라갔다 오겠노라고 큰소리를 쳤는데 걱정이다.
태령산 등산길은 비탈이 심해서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도 숨이 턱턱 막혀왔다. 경사가 심해 얼굴을 땅에 박고 기다시피 해서 올라가는데 다행히 누군가가 중간 지점에 쉴 수 있도록 벤치를 설치해 놓았다.
태령산 중간 지점인 벤치에 앉아 쉬면서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보인다. 벤치에 걸터앉아 쉬는데 벤치 옆에 지팡이처럼 생긴 마른 나뭇가지가 눈에 띄었다.
그러잖아도 지팡이가 없어 올라오기 힘들었는데 지팡이 삼을 겸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태령산에 올라가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이 들었다. 정상은 눈앞에 빤히 보이는데도 등산길이 너무 가팔라 올라가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마치 장군의 혼이 깃든 태실에 함부로 접근하지 말라고 산이 경고를 보내는 것 같다. 산을 오르며 두 번 정도 숨을 고르고 올라가는데 태실 못 미처 산등성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벤치와 만뢰산과 보탑사 가는 길 그리고 태령산 태실로 가는 방향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세워 놓았다. 태실까지 거리가 0.25㎞라는 표지를 읽고 산 정상을 바라보자 둥그런 모양의 태실이 눈에 들어왔다.
고향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아랫마을을 지날 때마다 태령산을 수없이 바라보았다. 그저 눈으로만 바라보았을 뿐 오늘처럼 산에 올라와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도 두 번째다.
산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등산하는 마음이 훨씬 더 좋은 것 같다. 산등성에 놓인 벤치에 앉아 쉬다가 다시 일어나 태실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산등성을 따라 얼마 가지 않아 태실에 이르렀다.
태령산 정상에도 태실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세워 놓았다. 표지판에 태실은 『삼국사기』와 역대 지리지에 김유신의 태를 묻은 곳으로 기록되어 있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태실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태실 축조의 형식을 갖추고 있어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표지판을 읽고 난 후 태실 주변을 한 바퀴 빙빙 돌면서 사진을 찍었다. 이어서 태실로 조성한 곳에 발을 내딛고 올라섰다. 그러자 주변의 산하가 한눈에 수려하게 들어왔다.
태령산은 해발 450m로 그리 높지 않은데 태실에 올라 주변을 바라보자 마치 주변의 산을 거느린 주산처럼 시야가 확 트였다. 사방으로 파노라마와 같은 풍경이 끝없이 펼쳐졌다. 산에 올라오며 흘린 땀방울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령산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둘러싼 주변 풍경에 잠시 넋을 잃었다. 태실이 이토록 아름다운 풍광을 품고 있었다니 경이롭고 신비로웠다. 진즉에 찾아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태실에 올라 한참을 이리저리 바라보았다. 우리 선조는 어떻게 이런 자리에 태실을 조성해 놓았을까. 산의 위치도 그렇고 전경이 기막히게 펼쳐지는 자리에 어떻게 태실을 안치할 생각을 했을까? 선조들이 참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어머니와 약속 시간이 있어 태실을 내려가야 했다. 태령산을 내려오는데도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힘이 들었다. 비탈이 너무 심해 내려올 때도 조심조심 내려왔다.
화랑정에서 태실까지 올라갈 때는 사십 분이 걸렸지만 내려올 때는 삼십 분이 걸렸다. 비록 겨울이지만 눈이 오지 않아 등산하기에 수월했다. 아마도 뜨거운 여름에 올라왔다면 땀과 무더위로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태령산에서 내려와 화랑정을 돌아 주차장에 이르자 어머니의 공공근로도 끝이 났다. 주차장 옆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어머니와 마을 아주머니에게 태실에 올라갔다 왔다고 하자 “벌써 갔다 오느냐”, “나 같으면 돈 주고 갔다 오라고 해도 못 간다.”라며 지청구를 한다.
어머니와 마을 아주머니를 차에 모시고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시골집에 도착해서 어머니와 아버지 기제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을 프라이팬에 데쳐 안주 삼아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등산에 지친 허기를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