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유모차

by 이상역

고향집에 들어서자 웃으며 맞아주던 어머니가 보이 지 않는다. 넓지 않은 마당에는 어머니가 애용하는 낡은 유모차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유모차의 손잡이를 잡아보니 어머니의 살갗처럼 갈라져 반들거리고, 아기가 등을 대던 등받이는 누런 헝겊으로 변한 채 바람에 펄럭인다.


유모차를 지탱하는 바퀴는 어머니의 닳고 닳은 손가락 지문처럼 무늬가 닳아 맨몸을 드러냈고 동서남북을 향해 엇박자로 서 있다

.

어머니는 광혜원에서 육십 리를 6.25가 나던 해 동짓달에 꽃가마를 타고 오셨다. 흰 눈을 맞으며 꽃가마를 탔던 열여덟 새색시 꿈은 무엇이었을까.


비탈진 밭에서 김을 매다 힘이 들면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이란 ‘찔레꽃’ 노래를 부르며 고단함을 달랬다.


산비탈 덤불숲에 핀 찔레꽃에는 어머니의 불꽃같은 청춘과 봄날의 새색시를 그리워하는 꿈이 깃들어 있다. 꽃가마를 타던 새색시는 어느덧 구순을 넘어 낡은 유모차에 의지하고 살아간다.


낡은 유모차 주변엔 어머니의 살림살이가 자리 잡고 있다. 마당 북쪽에는 안채가, 동쪽에는 사랑채가 그리고 팔 남매를 키운 담뱃잎을 말리던 건조기는 남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 건조기 앞에는 쌀을 찧는 도정기가 쌀겨를 뒤집어쓴 채 오도카니 놓여 있다.


아기가 타다 버린 유모차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 그러나 구순을 넘은 어머니에게는 아주 소중하다. 비록 낡은 유모차지만 어머니의 굽은 허리에 힘도 실어주고 집 밖으로 외출도 동행해 준다.


유모차 쓰임새는 다양하다. 텃밭에서 뽑은 채소를 싣는 바구니로도, 마을회관에 이웃과 나누어 먹을 떡이나 반찬을 싣는 찬그릇으로도, 텃밭 매러 갈 때 호미와 낫을 싣는 연장통으로도 이용한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찾아오면 뭐라도 챙겨주려고 유모차를 밀고 간다. 유모차를 밀고 가다 힘이 들면 허리를 쭉 펴고 밭은 숨을 토해낸다. 어머니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허리는 자식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더 굽어졌다.


어머니가 온몸으로 유모차를 밀고 가면 어머니보다 항상 앞서가는 것은 유모차다. 유모차를 밀고 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유모차가 어머니를 이끌고 가는 것인지 어머니가 유모차를 밀고 가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어머니는 아기 때 타지 못한 유모차를 노년이 되어 애지중지하며 밀고 가는 것을 바라보면 눈물이 솟아난다. 어머니의 허리가 굽어지기까지는 낡은 유모차의 사연처럼 인생의 많은 것이 지나갔다.


아버지를 앞세워 논밭에서 농사를 짓던 시절도, 팔 남매의 먹거리를 챙겨주던 바쁜 손길도, 자식들을 바리바리 출가시킨 축복의 시간도, 운명 앞에서 어쩌지 못한 아버지의 목숨도 지나갔다. 아버지가 생전에 부엌에서 즐겨 부르던 사발가는 마당바위 옆에서 멎은 지 오래다.


어머니의 허리가 굽어지고 그 빈자리에는 눈물과 한숨이 들어섰다. 아버지는 또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고 자식들은 삶을 찾아 뿔뿔이 어머니 곁을 떠났다.


낡은 유모차는 어머니가 온 힘을 다해서 밀어야 한다. 어머니는 자식을 키워 세상에 내보냈지만, 이제는 자식보다 유모차에 의지하고 사는 것이 편하다고 하신다.


어머니 곁에서 팔 남매가 한 마디씩 거들면 정신이 없다고 하지만 낡은 유모차는 어머니의 푸념과 한숨을 말없이 받아준다. 유모차는 불평도 불만도 없다. 어머니처럼 밭은 숨도 내쉬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머니보다 항상 앞장서서 길을 나선다.


어머니의 굽은 허리에서는 고독이 피어나고 낡은 유모차에서는 쓸쓸함이 피어오른다. 어머니는 허리가 굽어져 똑바로 펴서 하는 일은 하지 못한다. 허리를 펴면 허리의 힘이 빠져서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어머니에게 걸어 다닐 때 짚고 다니라고 지팡이를 사다 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자식이 부모에게 지팡이를 선물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받지 않았다. 자식이 부모에게 지팡이를 사 드리면 자식에게 해로운 일이 생긴다는 속설을 믿어서다.


낡은 유모차가 자식을 대신해서 어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 마을의 이곳저곳을 안내해 줘서 고맙다. 자식이 어머니의 지팡이가 되어 길을 안내하는 것이 도리인데 유모차가 자식을 대신해서 인생의 길잡이를 해주는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나도 언젠가 어머니처럼 허리가 굽어 유모차에 의지해서 노후를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다가오기 전에 어머니를 자주 찾아가서 낡은 유모차 노릇이라도 해주어야겠다.

keyword
이전 15화태실에 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