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

by 이상역

직장에 유연근무를 신청해서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 서 근무하고 있다. 아침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한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업무에 대한 자료나 직원이 올린 결재문서 등을 검토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아침에 일찍 나와 결재문서나 자료 검토를 끝내면 오전에 할 일은 거의 끝이 난다. 그렇게 업무를 정리하고 나서 의자를 뒤로 돌려 창밖을 내다본다.


창밖에는 나뭇잎이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모습과 박물관 너머 산자락을 올려다보면 숲과 빌딩이 어우러진 모습이 풍경처럼 시야로 들어온다.


아침에 고속도로를 헤치고 달려온 바쁜 시간에서 벗어나자 마음에는 온갖 상념이 들어찬다. 그런 무료한 시간 속에서 무심한 시간이 몸의 한구석에 자리를 틀어잡고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어 댄다.


집과 직장을 오고 가는 시간에 어떻게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루라는 시간을 초 단위로 쪼개어 삶을 충실하게 보낼 수는 없을까.


집과 직장의 일은 비슷하면서도 비슷하지가 않다. 집은 가족이란 구성원과 사적인 관계에서 행위가 일어나고, 직장은 동료와의 관계에서 공적인 행위가 이루어진다.


요즈음 딸의 결혼식이 코앞으로 다가올수록 마음은 바빠지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다. 무언가를 마음먹고 준비해서 딸의 결혼과 관련한 것을 도와주려는데 마음만 앞서고 무엇을 도와줬다는 표시가 나지 않아 고민이다.


아버지인 나도 이런데 당사자인 딸은 오죽이나 더할까. 남들은 내가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무얼 그리 바쁘게 시간을 보내느냐고 반문한다.


결혼은 당사자가 알아서 준비하면 그만 아니냐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딸을 결혼시킬 때 딸이나 아내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바라만 보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고 직장에서 할 일을 제쳐두고 딸의 결혼을 전적으로 도와줄 수는 없다. 직장에서 업무는 업무대로 가정에서 일은 일대로 비교형량 해가면서 틈틈이 딸의 결혼과 관련한 것을 도와주고 있다.


딸 결혼을 도와주고 싶은 것은 내가 결혼할 때 부모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서다. 당시 나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결혼식은 고향에서 하게 되었는데 결혼식 준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한 것이라곤 결혼식 전날 고향에 내려가서 이튿날 읍내에 나가 이발하고 결혼식장에 올라간 것이 전부다. 결혼하던 나이가 지금 결혼하는 딸의 나이와 비슷하다.


남자나 여자나 성인이면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하지만 결혼은 처음이고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일이라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혼자서 준비하기에는 만만치가 않다.


더구나 누군가에게 물어가며 준비할 수도 없는 것이 결혼이다. 인생의 경험이 많은 부모가 자녀의 결혼을 도와주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딸 결혼과 관련하여 이것저것 도와주면서 느낀 것도 많다.


신혼집 살림에 필요한 그릇이나 숟가락을 챙기고, 그 밖에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썼다. 신혼집은 마치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다. 무언가 생각나서 물건을 사다 들여놓아도 아무런 표시가 나지를 않는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무언가가 빠졌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다. 아내와 함께 딸의 살림살이를 준비해 주려고 바쁘게 돌아다니지만, 마음만 바쁠 뿐 항상 무언가가 빠지거나 부족하게 느껴진다.


어제도 아내와 시장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준비해 살림을 채웠다. 그런데 딸의 집을 나서면 무언가를 더 채워줘야 한다는 허기진 마음만 들뿐 ‘이제는 되었다.’라는 만족감이 들지를 않는다.


딸의 살림살이를 챙겨주면서 느낀 것은, 부모의 마음이다. 나도 이런 심정인데 나를 결혼시킨 양가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되어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부모는 자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어떠한 것이라도 내어주거나 마련해주고 싶어 한다. 결혼해서 살림을 시작할 때는 모든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런 절실함에 내 집에 있는 것은 어떠한 것이라도 딸에게 내어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결혼하는 딸에게 어디까지 베풀어 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일까. 부모가 딸에게 베풀어 주는 마음에 만족감을 나타내는 표시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너에게 이 정도 해주었으니 되었다.’라는 표시나 딸이 ‘이제는 그만 받겠다.’라고 깨끗하게 매듭을 짓지 못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뒤늦게 딸의 결혼을 통해 이런 마음과 느낌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나의 이런 마음을 딸도 나중에 자식을 낳아 결혼시키며 깨닫게 되겠지. 부모에게 자식이란 영원히 보살펴 주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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