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둔 부모가 가장 듣고 싶은 것은 자녀가 결혼한다는 말이다. 결혼은 집안의 경사이자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둥지의 확장이다.
딸과 사위가 둘의 결혼식에 손님을 초청하는 내용을 담은 청첩장을 가져왔다. 청첩장을 세세하게 읽어보니 고향의 손님이 타고 올 교통편 등이 제대로 반영되었고 청첩장도 예쁘게 만들어졌다.
이튿날부터 그간 알고 지내던 지인에게 딸의 결혼 소식을 알려주고 있다. 청첩장을 손에 들고 직접 가서 전달하거나 카톡이나 문자 등을 통해 전하기도 한다.
그리고 드디어 직장의 업무망 게시판에도 딸의 결혼 소식을 게재했다. 앞으로 시간이 나는 대로 알고 지내던 지인에게 딸의 결혼 소식을 틈틈이 전해줄 예정이다.
딸의 결혼 소식을 전하면서 그간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하는 반성의 시간도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 직업을 얻어 이곳저곳 전전하며 살아왔지만 그리 훌륭한 삶을 살아오지는 않은 것 같다.
청첩장을 전하면서 느끼는 것은 삶의 결과물이 은연중에 포함되어 전달된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인에게 자녀의 결혼을 축하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은 기쁘다.
내가 낳은 자식의 결혼인데 결혼 당사자가 아닌 부모가 축하를 받는 것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축하의 말과 함께 직장의 업무망에 달린 다양한 댓글을 받고 보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삶에서 기쁜 소식은 즐거운 마음으로 전할 수 있지만 슬픈 소식은 조심스럽고 마음에 부담이 간다. 경사는 좋은 일이라 전하는 마음이 즐겁지만, 애사는 슬픈 일이라 전하는데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듣거나 결혼식을 하는 광경을 바라보면 마음이 저절로 환해졌다. 결혼이란 낯선 남녀가 만나 삶을 영위하며 사는 제도권 생활이다.
그나마 직장에 근무하면서 딸의 결혼 소식을 전하게 되어 기쁘기만 하다. 사무실 업무망 게시판에는 본인이나 자녀의 결혼 소식이 수시로 올라온다.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면서 결혼 소식은 배로 늘어났다. 가을은 결혼하기에 참 좋은 계절인가 보다. 가을은 한해의 결실을 수확하는 계절이라 결혼식도 풍성한 의미로 다가온다.
결혼에 대한 소문은 바람을 타고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널리 퍼져간다. 결혼 외의 다른 소식도 마찬가지다. 모든 소식에는 근질거림과 수군거림이란 날개가 달려있다.
누군가를 험담하는 말도 날개를 단 듯 빠르게 퍼져간다. 이런저런 소식에는 호기심과 새로움과 은밀함과 비밀스러움이 따라다닌다.
내가 고향에서 자라던 시절 결혼식은 마을의 잔치로 했다. 결혼식이 있는 날이면 마을 사람 모두가 하던 일을 접고 결혼에 쓰일 음식이나 치장이나 가마 등을 준비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따라서 마을에 결혼식이 있는 날은 하루의 먹거리를 해결하는 날이자 꽃가마를 탄 신부의 얼굴을 보기 위해 담벼락에 올라가 고개를 기웃거리는 날이다.
요즈음 결혼식은 잔치가 아니라 신부나 신랑의 얼굴을 보러 오는 것도 아니고 양가 부모의 얼굴을 보러 온다. 신랑과 신부보다 양가 부모에게 ‘나 이번 결혼식에 참석했소’ 하고 얼굴도장을 찍으로 오는 것이다.
결혼식의 세태 변화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결혼은 당사자 중심으로 간소하게 해야 한다. 결혼식이 너무 허례허식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결혼식이나 장례식이나 명절 등 제례문화에 개선해야 할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결혼식도 그렇고 장례식과 명절도 이제는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할 때다.
그간 알고 지내던 지인에게 딸의 결혼 소식은 전할 만큼 전한 것 같다. 청첩장을 받은 사람이 결혼식에 참석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그 사람의 선택이다.
내가 당신 자녀 결혼에 축의금을 냈으니 당신도 내 딸의 결혼식에 축의금을 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축의금을 낼 것인가 말 것인가는 전적으로 청첩장을 받아 든 사람의 몫이다.
결혼식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날짜에 맞추어 진행하는 가족 간의 행사일 뿐이다. 그리고 결혼식이 끝난 후 정산을 통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잣대로 삼으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