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시계추 앞에

by 이상역

<고등학교 입학한 딸에게 보낸 편지>


요즈음 학교생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초록이 아름답게 수를 놓는 계절이다.


지구가 아름다운 것은 계절을 통해 대지의 겉껍질을 변화하는 힘이 아닐까. 지구가 우주에서 자전한다지만 우리는 미미한 떨림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삶이 신비할 뿐이다.


네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벌써 두 달이 되었다. 그동안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냐 고생하고 있는데 곁에서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어떠한 삶이 되었든 그 길은 결코 너를 비껴가지 않는다는 것임을 명심해라. 네게 다가오는 모든 것은 스스로 받아들이고 개척하지 않으면 길은 끝내 열리지 않는다.


영국의 시인 토마스 엘리엇은 자신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라고 노래했다.


나는 4월은 엘리엇처럼 잔인한 달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희망을 주는 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4월은 생명의 탄생과 존재를 알리는 기쁨의 달인데 왜 엘리엇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을까.


네가 겪는 성장통도 어찌 보면 푸른 초록의 새싹처럼 겨울의 인고를 이겨내고 더 크고 아름답게 자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학교생활에서 무언가 불만이 있다면 그 불만을 과감히 끌어안고 해결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초원에 떠도는 정령과 대화도 나누고 자연과 함께 삶을 누린다는 마음으로 생활하기 바란다. 그런 마음을 갖고 여유롭게 하루하루를 맞이했으면 한다.


이 세상은 우리 가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공유하고 누리는 무대다. 자연은 베풀면서 대가를 바라지 않는데, 사람은 누군가에게 베풀지도 않고 대가만 바라는 욕망의 전차다.


우리가 지금 대지를 밟으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삶이란 것을 알고 있니. 사람을 만나서 울고 웃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사랑하는 감정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삶의 축복인지 알고 있니.


사람은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무언가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욕망은 끝이 없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건강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소중하다.


그렇다고 인도의 간디처럼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네가 배우는 과정에서 찾아야 할 것과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뿐이다. 공부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깊은 생각과 성찰을 통해 삶의 원리를 하나하나 깨닫기 바란다.


봄을 화려하게 색칠했던 목련꽃, 개나리꽃, 진달래꽃, 벚꽃이 서서히 계절 속으로 사라져 간다. 꽃이 진 자리에는 엷은 녹색의 새싹이 올라와 지구의 공간을 채워가며 수를 놓고 있다.


우리는 자연의 비움과 채움을 바라보며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제대로 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인지를 돌아보게 된다. 학교를 오고 가며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거라. 수많은 것들이 나를 위해 아니면 우리를 위해 삶의 공간을 채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네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진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에 대한 이유는 많겠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변명이란 말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배움은 성실과 정직과 원칙을 벗어나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만큼 배움은 몸을 세워 의지를 굳건히 하는 데서 시작한다.


오늘은 몸이 힘들다고 내일로 미루고 내일이 되면 다른 핑계로 모래로 미루면 배움의 시간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 틈새에는 늘 변명과 핑계만 들어설 뿐 배움이란 싹은 사라지고 말라붙어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


네가 계절의 힘을 빌려 이 자리에 온 만큼 나중에 자연으로 되돌려주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네가 자라면서 받은 부모의 정성과 마음은 다음에 네 자식에게 전가하는 것이 삶의 법칙이다.


삶에서 어느 정도 이룬 바가 있으니 부모님은 당연히 내게 무언가를 해주어야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말아라. 네가 지식을 배우는 것은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부족한 것을 채우는 삶의 지식을 얻는 것이지 대가를 바라는 삶의 존재 방식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 주부터 중간고사를 본다고 들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첫 시험도 중요하고 몸 관리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자신에게는 냉정하게 대해야 한다.


몸은 관심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그만한 값을 하지만, 관심의 밖으로 벗어나면 다시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기다림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만큼 철저한 자기 관리도 필요하고 시간을 매듭짓고 생활하는 방식도 중요하다.


지금 창밖은 계절의 시계추가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며 생활하기 바란다. 하루를 규정짓고 의미를 세우는 일 모두가 너로부터 기인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하루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날이 될 수도 있다. 교실 담장 너머에 바깥세상이 존재하듯이 네가 다니는 학교 울타리 안에는 희망이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희망이란 샘물은 두레박으로 퍼 올리는 자만이 맛보고 누릴 수 있는 이상의 꽃이다. 비록 엘리엇에게 4월은 잔인하여 희망마저 꺾어버린 계절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네게 4월은 푸르른 희망을 청춘의 힘으로 퍼 올리는 소망의 계절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가오는 오월에는 계절의 여왕처럼 화사하고 밝은 희망의 소식을 물고 오는 갈매기처럼 창공을 비상하는 아름다운 계절이 되었으면 한다.


요즈음 환절기라 아빠도 하루를 비몽사몽 하며 버티고 있다. 때아닌 감기와 치아치료로 몸이 탈진되었는데 걱정이다. 몸은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붙잡을 수가 없다.


건강할 때 몸을 더 돌보라는 말이 있듯이 너도 몸 관리 잘하기를 바란다. 특히 치아는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한다. 네 나이 때부터 잘 관리해야 평생을 튼튼하게 유지할 수가 있다.


우리 몸은 어느 한구석도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만큼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기준도 된다. 항상 몸 건강에 유의하고 배움의 완성을 향해 묵묵히 전진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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