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관심과 정성을 다해서 돌봐야 아름답게 성장한다. 나는 관심과 애정보다 무심하게 바라만 보던 것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는 시간을 선사받았다.
우리 집에서 제일 괄시받는 것은 난이다. 이 난은 이사할 때마다 버려도 그만인 재산목록에 오른다. 난은 베란다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신세다.
우리 가족이 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아내가 베란다 청소를 하면서 물을 줄 때다. 나는 난을 기르는 재주도 없고 분재할 줄도 영양주사를 놓지도 못한다.
재주가 없는 것이 아니라 무심으로 일관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난의 꽃대에서 향기를 품어내는 난꽃을 만나면 소유하고 싶은 옅은 욕망이 생겨난다.
나의 게으름으로 난을 잃은 것도 꽤 된다. 지금까지 남은 것 중에 좀 특별하게 인연을 맺은 난이 있다. 몇 해 전 직장에서 퇴근하다 경비실 옆 화단에 싹이 싹둑 잘린 채 버려진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화분에서 무엇이 자라는지는 관심이 없었고 화분의 색깔과 생김생김이 좀 멋스럽고 괜찮아 보여 경비에게 말하고 집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화분을 가져와서 한 일이라곤 출퇴근할 때마다 풍경으로 바라본 것이 전부다. 그런데 그 화분에서 이듬해 봄이 되자 난의 잎새가 수북하게 올라왔다.
마치 정신이 약간 모자란 사람의 다듬지 않은 머리카락처럼 난의 잎들이 천지사방으로 뻗어 올라왔다. 그러더니 매년 한두 개의 꽃대를 세워 꽃을 피우며 가족에게 향기를 선물하고 있다.
난의 생명은 꽃대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자손을 남기는 일은 선택이 아닌 본능이다. 수북한 난의 잎새를 헤집으며 올라오는 꽃대는 바라볼수록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난의 꽃대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고고히 드높이는 학처럼 다가왔다. 난이 꽃대를 세워 꽃을 피우자 꽃대에 이슬이 주렁주렁 매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호기심에 난의 이슬을 손가락에 묻혀 맛을 보았다. 이슬의 맛이 꿀처럼 달콤했다.
베란다에는 벌도 나비도 들어오지 못하는데, 스스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어 가족에게 기쁨과 달콤한 맛을 선사하는 것이다. 막내는 난의 이슬을 맛볼 때마다 “아빠! 꿀처럼 아주 달아요?” 하면서 난꽃 같은 웃음을 짓는다.
집에는 다른 난도 있는데, 오로지 이 난초만 꽃을 피워 향기와 꿀을 준다. 그렇게 매년 꽃을 피워 향기를 주던 이 난이 삶의 반란을 일으켰다. 삶의 반란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난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느껴졌다. 일 년에 한두 개의 꽃대를 세워 향기를 피우던 난에서 올해는 열 개 이상의 꽃대를 세워 무더기로 꽃을 피웠다. 이 작은 반란으로 작은 소일거리가 생겼다.
다름 아닌 난을 지긋이 들여다보는 일이다.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난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방울방울 맺혀있는 이슬과 함께 환하게 웃는 꽃의 모습에서 생명의 외경심을 전달받는다.
아침마다 난 꽃에서 나오는 은은한 향기가 거실과 베란다에 가득하다. 난의 향기로 마음을 잔잔하게 자극받으면 삶도 덩달아 충만해지는 것 같다.
난꽃에서 솟아나는 은은한 향기를 맡으면 나도 난꽃처럼 남들에게 향기를 전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옅은 소망을 꿈꾸게 된다.
요즈음 무심하게 바라만 보던 것에서 삶의 희열을 전해받고 있다. 아침에 화려한 꽃대를 세운 난을 바라볼 때면 귀여운 아기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처럼 마음이 한없이 즐겁다.
그 난이 나와 무슨 인연으로 우리 집에 머무르며 자신의 인생을 활짝 피우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비록 그 난이 내일 생명을 마감할지라도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살다가 소천하기를 바랄 뿐이다.
난의 꽃대에 주렁주렁 매달린 이슬을 바라볼 때마다 생명의 찬란함과 그윽한 향기를 전달받는다. 이슬에 반사되는 햇살의 영롱함에는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깃들어있다.
난의 향기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올라올 때마다 가족의 소중함과 생의 의지가 새록새록 샘솟는다. 아이들과 누리는 삶의 행복이리라. 아이들과 나도 무슨 인연으로 만나 가족을 이루고 서로 마주하며 살아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와 우연히 만난 난이 생의 아름다운 순간을 누리고 있듯이 지금 내가 아이들과 누리는 삶도 아름다운 순간이리라. 나의 무심함에도 불구하고 난이 있는 힘을 다해 꽃대를 세우고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피웠듯이 나도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지 못하더라도 있는 힘을 다해 생명의 꽃을 피워야만 한다.
그것은 생명을 가진 자가 감내해야 할 신성한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리고 잠깐 스쳐가는 인연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자만이 생의 환희를 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