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작가 너도 작가

by 이상역

작가란 창작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소설을 쓰면 소설가, 수필을 쓰면 수필가, 시를 지으면 시인, 동화를 쓰면 동화작가라 부른다.


글 쓰는 분야에 따라 작가의 호칭도 달라진다. 요즈음 너도 작가 나도 작가 시대다. 작가의 대표적인 등용문은 중앙과 지방지의 신춘문예다. 그다음은 계간지나 문예지에 등단해서 작가란 호칭을 얻는다.


신문의 신춘문예는 제외하더라도 계간지나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는 작가가 너무 많고 문예지도 우후죽순 생겨나는 추세다. 작가가 되기 위한 자격시험도 없고 계간지나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는 작가에 대한 명확한 심사기준도 없다.


며칠 전 한 문예지에서 신인 공모를 한다기에 글을 써서 제출했다. 얼마 후 그 문예지에서 사무실로 찾아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사무실을 찾아가자 반갑게 맞아주면서 작품에 대한 평가를 하더니 내달 문예지와 주간지에 글을 게재할 예정이니 문예지와 주간지 구독료, 작가 등단 패, 심사비, 명함 등에 필요한 비용을 입금하란다.


그 말을 듣고 사무실을 나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심사비와 작가 등단 패 값을 내는 것은, 내 돈을 주고 작가란 호칭을 사는 꼴이다. 게다가 문예지와 주간지 구독을 강매하는 것 같아 등단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그 후 그 문예지에서 전화나 다른 연락은 오지 않았다. 좋은 글을 써서 작가로 등단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작가란 허명을 산다는 기분이 들어 기분이 찜찜하고 불쾌했다.


문예지에 글을 게재해 주는 조건으로 작가라는 호칭을 판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기별로 공모를 통해 심사에 통과된 사람에게 일정한 비용을 받아 문예지를 발행하고 등단 패를 제작하고 시상식을 개최하여 작가란 명칭을 달아주는 것이다.


계간지나 문예지별로 매월이나 분기별로 등단하는 사람이 대여섯은 된다. 등단하는 사람에게 비용을 받아 문예지나 계간지를 발행하고 패를 제작하고 나면 오히려 비용은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발간하는 문예지나 계간지는 이런 형태로 운영하면서 작가를 양산하는 실정이다. 이런 행태가 정착된 지는 꽤 오래된 것 같다.


문예지나 계간지마다 공모 기간에 글을 써서 제출하면 심사를 해서 일정한 비용을 내는 조건으로 작가란 명칭을 부여한다. 그들은 등단한 사람에게 작가란 명칭과 회원 자격과 자기들이 개최하는 문학의 밤이나 출판기념회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간다.


그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작가라면 어느 정도 권위가 있어야 하는데 자격을 너무 쉽게 주는 것 같다. 사실 신문의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해도 글을 게재해 주는 신문은 별로 없는 것도 현실이다.


신문은 신춘문예 당선에만 신경 쓸 뿐 당선되고 나면 그만이다. 신문은 웬만한 사람이 쓴 글은 게재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작가의 숙명은 자기가 쓴 글을 게재하여 사람들이 읽게 하는 것이다.


결국 신문을 통해 등단해도 글을 게재할 곳이 없어 문예지나 계간지 같은 것이 대두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작가라는 호칭도 기한을 정해주지 않는 것도 문제다.


작가는 준열한 정신으로 치열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글을 쓰지 않을 때는 작가가 아니다. 작가는 창작행위에 몰두할 때 작가란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직업에도 정년이 있듯이 작가도 일정 기간 글을 쓰지 않거나 작품을 발표하지 않으면 작가란 명칭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외국의 글쓰기 문화와 작가란 호칭을 어떻게 부여하는지는 잘 모른다. 영국은 왕실에서 작가에게 권위 있는 작위를 부여한다. 작위를 받은 작가는 평생을 먹고 살만큼 연금도 지급해 주고 오롯이 글만 쓰면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 작가가 너무 많이 양산되고 있다. 작가란 호칭은 글쓰기가 어느 정도 된 사람이 사용할 수 있게 하되 엄격한 절차와 심사를 거쳐 부여해야 한다.


영국처럼 국가에서 국민 소설가, 국민 시인, 국민 수필가, 국민 동화작가란 작위와 국민연금을 지급해 주면서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신문이나 계간지나 문예지 등을 통해 등단하는 시스템은 모두 폐지해야 한다. 이들을 폐지하고 지자체의 문화센터에서 지역주민이 글을 써서 제출하면 분기별로 심사를 거쳐 작가란 호칭을 부여하도록 해야 한다.


글쓰기 문화의 정착은 제대로 된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먼저다. 지역주민이면 어떠한 글이든 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신문이나 계간지 등에 게재할 수 있도록 문호를 활짝 열어 두고 주민이 제출한 원고를 매월이나 분기별로 심사하여 당선된 사람은 작가란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글쓰기는 시험이 아니라 향상의 잣대다. 처음부터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없다. 문화센터에서 누구든지 글을 써서 제출하면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작가란 호칭을 부여하고, 분기별로 작품을 제출하지 않거나 활동이 뜸하면 작가란 호칭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사실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작가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너도 작가 나도 작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작가는 허명이 아닌 제대로 대우도 받고 어디서나 글을 써서 발표할 수 있는 광장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요즈음은 문화가 국력을 키우고 대접을 받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작가를 너무 많이 양산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도 지자체에서 선정한 작가를 국가에서 절차를 거쳐 심사해서 작위를 부여하고 그 작가가 집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살 집과 연금을 지급해서 평생 동안 글만 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 한다.


작가 제도 개선은 뒷전인 채 노벨상 수상자만 애타게 기다리면 백 년이 가도 수상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루빨리 작가와 관련한 시스템을 개선해서 너도 작가 나도 작가인 시대를 청산하고 권위와 품격 있는 작가의 시대를 여는 것이 문화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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