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비영리법인이 정부나 지자체에 등록되어 있다. ㅇㅇ협회, ㅇㅇ학회, ㅇㅇ조합 등 다양한 형태의 명칭을 달고 정부나 지자체 또는 국회와 접촉하며 자신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활동한다.
이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을 위해 정치권과 손을 잡고 정부나 지자체에 압력을 가하거나 회원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시위 등을 통해 사회적 또는 정치적인 이슈를 부각해서 해결한다.
그간 공직에 근무하면서 꽤 많은 비영리법인 업무를 맡아 관리했다. 건축과에서 24개의 비영리법인을 맡아 관리하고, 부동산산업과에서 중개사협회를 관리하고, 자동차운영과에서 운수업계의 대표인 택시나 버스 및 화물공제조합 등 6개 공제조합 업무를 맡아서 관리했다.
그러다 본부에서 지리원으로 자리를 이동하자 공간정보산업협회 등 4개의 비영리법인 업무를 관리하게 되었다. 비영리법인 업무는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행정적으로 관리하지만 정치적 행위로 변질되면 관리하기가 어려워진다.
비영리법인은 사업자나 기술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사람이 모여 만든 단체가 사단법인이고 재산이 모여 만든 단체가 재단법인이다.
지리원에 부임하자 공간정보산업협회의 공공측량 성과심사 업무를 별도 법인화 하는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국토부에서 방침을 정해 산업협회에서 공공측량 성과심사를 분리하여 법인을 설립하는 방안을 몇 년째 추진해 온 것 같다.
공공측량 성과심사 업무를 기존의 다른 기관에 위탁하는 방안에 대한 대안을 찾지 못하자 협회 내에 공공측량 성과심사를 전담하는 공간정보품질인증센터를 설치하고 나중에 이를 법인화하는 방안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그러나 산업협회는 자생력 등 이유를 내세워 법인 설립을 미루어 오다가 공간정보품질인증센터를 법인화하겠다는 자구계획서를 다시 제출했다.
그에 따라 협회 내 인증센터를 법인화하는 방안을 두고 지리원과 협회 간에 지루한 줄다리기를 해왔다. 비영리법인은 회원 고유의 업무도 있지만 정부나 지자체의 업무를 위탁받아 처리하는 업무도 있다.
그런데 산업협회는 회장의 장기 독주체제가 이어져 등록관청과 대립하고 독불장군식 체제로 협회를 이끌어 왔다. 정부나 지자체의 위탁업무는 정부나 지자체의 감사를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이들 감사에서 위탁업무에 대한 지적을 받고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위탁업무를 취소하거나 비영리법인 등록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
산업협회에서 공공측량 성과심사 위탁업무를 법인화하여 떼어 내면 협회는 고유업무만 남게 된다. 협회는 수익의 대부분이 공공측량 성과심사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 수익이 떨어져 나가면 협회 운영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법인 설립을 차일피일 미루어 왔다.
비영리법인의 회장은 회장으로 선출되면 곧바로 자신의 자리를 사유화하기 위한 체재로 조직과 규정을 정비한다. 그리고 장기집권을 위해 회장이란 직함을 이용하여 각 시도의 이사장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거나 각종 이권을 챙겨주거나 판공비를 사용한다.
어떤 비영리법인 회장은 회장 자리를 마치 자신의 것인 냥 몇십 년씩 맡아하는 단체도 있다. 사실 정부나 지자체의 시각에서 보면 비영리법인 업무는 그다지 중요한 영역이 아니다.
비영리법인에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퇴임한 사람이 임원으로 근무하는 곳이 많다. 비영리법인의 특징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자신의 것으로 챙기고,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떼미는 습성이 있다.
그리고 정책에 문제가 생기면 어김없이 공직에서 나간 임원을 앞세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비영리법인 업무를 맡아 일하면서 임원으로 근무하던 선배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몇 번 있다.
그들은 공직에 근무할 때는 법과 원칙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일하던 존경받는 선배였는데 비영리법인에 근무하는 동안에는 공직에서 하던 원칙과 행동을 버리고 협회 사람처럼 행동한다.
현직에선 법과 원칙을 주장하던 선배가 비영리법인을 대변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회장이 주장하는 말과 행동을 그 선배도 똑같이 되풀이하는 것을 보고 사람도 자리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만약 내가 비영리법인에서 근무하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나도 그 선배들처럼 회장의 나팔수가 되어 행동할지 아니면 다른 행동을 하게 될지는 나 자신도 모르겠다.
세월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리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비단 비영리법인에 근무하는 선배만이 아니라 사람은 어떤 직위나 자리에서 근무하느냐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 같다.
오늘도 몇 개의 사단법인이 태어나고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 조직이 우리 사회를 받쳐 주면서 건전한 활동을 하면 다행이지만 오롯이 자신들의 목적과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사회는 발전이 아니라 퇴보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 사단법인의 존재가 필요악이라면 악한 것보다는 사람들을 위해 활동하는 필요한 단체로써 사회구성원 역할에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