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by 이상역

고요한 山寺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은 처마 밑에 매달린 풍경이다. 풍경이 땡그랑땡그랑 울어대면 절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세속의 잡념을 털어내고 마음을 정갈하게 하라는 메시지다.


산사의 풍경이 거센 기류를 타고 울어대면 마음이 흐트러지고 세상의 기류를 따라 맑게 울어대면 마음도 밝아지고 청정해진다.


나도 공무원이라는 세속의 풍경을 달고 세월에 기댄 횟수가 꽤 되었다. 하지만 내가 찾아가는 관사의 풍경소리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정신을 맑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혼미함만 더해간다.


그런 혼미한 삶 속에 마중물로 길어 올린 삶의 풍경소리를 모아 세상에 내어 놓았다. 삶에 대한 만족은 자신의 감정을 얼마나 잘 다스리며 사느냐에 따라 질이 달라진다.


삶이란 물질이 아닌 사람의 정신에 의해 내면의 만족을 높이는 전해질이 아닐까. 내가 그날그날 살아가는 첫 느낌은 등청길에서 바라보는 관악산을 통해서다.


관악산이 설산처럼 밝은 모습으로 다가오면 기분이 좋은 날이고, 희미하고 어두운 모습으로 다가오면 기분도 그리 썩 좋지 못한 날이다.


그리고 이곳 청사에 근무하면서 느끼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명을 누리며 향유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가정과 사회와 국가라는 틀 속에서 살아가려면 수많은 올가미에 얽매인다. 따라서 생명을 향유할 자유는 있되 그 자유는 제도라는 올가미 안에서 누리는 구속된 자유다.


과천청사에도 세상 밖 사계절이 그대로 존재한다. 이곳은 다른 곳보다 특별한 성역도 아니고 더구나 다른 사람보다 많은 혜택을 받으며 사는 곳도 아니다.


국민이면 함께 겪는 정치, 경제, 교육, 사회 등의 문제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청사의 주소가 어느 날인가 중앙동 1번지에서 관문로 88번지로 바뀌었다.


주소가 바뀐 자세한 사연은 알지 못한다. 내 주변의 일은 항상 나와는 상관없이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런 변화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오늘을 사는 나의 현주소다.


삶을 주관자가 아닌 방관자 입장에서 사는 방식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제는 거의 화석처럼 굳어졌다. 깊은 산사와 같은 이곳에서 가끔은 내 마음을 데워주고 비장미가 흐르는 아름다운 가로수를 만나기도 한다.


그런 가로수를 배경으로 길섶에 남긴 흔적을 서투르게나마 표현해 보았다. 세속적인 삶에 얽매인 중생도 한 직업에 오랫동안 정진하면 일정한 경지에 다다른다. 그런 과정에서 달인도 되고 그 삶은 예술로 완성된다.


인생은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안내하지 않는 길이다. 삶의 길섶에 남긴 풍경소리가 다른 사람 영혼에 혼미함이 아닌 소통으로 다가가는 길이 되기를 바란다.


내 삶의 풍경소리가 진한 향기를 품고 맑은 소리가 되어 널리 울려 퍼지기를 기도한다. 더불어 다른 분들도 자신의 가슴에 담긴 삶의 풍경소리를 동행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드러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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