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선물

by 이상역

최근까지 과거의 시간을 더듬는 긴 여행을 다녀왔다.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시간이란 징검다리에 의지해서 망부석처럼 기다렸다.


지난 과거라는 기억의 저장고에 들어가려면 현재와 미래를 접어두고 오롯이 과거의 시간에 집중해야만 한다. 그만큼 과거로 돌아가는 여행은 내 영혼이 지나온 그림자와의 대화다.


뒤늦게 후손에게 참된 기억을 남겨줄 수 있어 기쁘고 행복하다. 이제는 무언가에 기댈 수 있는 작은 언덕이 생긴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하다.


인생의 어느 날부터 손에 책이 잡혔고 글 쓰는 재미에 폭 빠져들게 되었다. 어떤 특별한 계기는 없었지만, 갑자기 글이 곁으로 찾아왔다.


초등시절에는 친구에게 동화책을 빌려 읽은 것이 전부고, 중학교 시절은 무협지나 만화를 즐겨 보았다. 그리고 고교 시절에는 책을 읽은 것이 거의 없다. 그나마 문학과 관련한 책을 읽어 본 것은 대학에 진학해서다.

그러다 직장에 들어와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금도 책은 읽고 있지만 어떤 책을 읽느냐가 중요하다. 어떤 책이든 작가의 진정성과 진실함이 느껴져야 도움이 된다.


학창 시절에 읽었던 책 보다 최근에 읽은 것이 더 많다. 나는 소설보다 사람이 겪은 체험을 글로 쓴 수필이나 산문이나 여행서가 마음에 다가왔다. 직장에 근무하면서 책을 읽을 때는 버거웠다.


그렇게 인내하며 일 년을 넘어가자 책을 읽는 것이 좋아졌고, 하루에 책을 읽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즐거움도 맛보았다. 그런 시간의 누적이 오늘의 이런 글을 쓰게 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어떤 일에 정통하려면 무수한 반복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 단순한 일을 수십 년에 걸쳐 일한 사람은 그 삶 자체가 아름다운 글이다.


비록 글이라는 도구에 삶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일 뿐 살아온 과정에는 일에 체화된 아름다움이 내재되어 있다. 그런 사람이 쓴 글을 읽으면 많은 것을 배우고 맑은 마음의 소유자임을 알게 된다.


나도 직장에 들어온 지 근 삼십여 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도 직업에 대한 철학이나 체화된 삶의 향기가 배어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알 것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으면 삶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데 나는 아직도 진행형이란 생각이 든다.


어떤 대상에 오래도록 몰두하거나 반복적으로 집중하지 못한 결과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하나의 일에 진득하게 몇 년 이상을 투자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삶의 깊은 철학이 생겨나지 않았고 남들에게 이야기할만한 것도 별로 없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란 대중가요 노랫말이 생각난다. 노랫말에는 인생에 대한 깊은 철학이 담겨 있지만, 인생이란 말은 곰곰이 되씹어보면 볼수록 참으로 아름다운 단어란 생각이 든다.


인생, 인생, 인생, 인생…. 이 말은 아무리 큰소리로 반복해서 소리 내어 불러도 질리지가 않고 마음을 들뜨게 하는 말이다. 인생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은 삶을 두고 이것저것 이야기했지만, 현재 몸으로 부딪치고 겪는 순간이 인생이다. 지금이란 순간과 시간을 견디고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삶이다. 그 삶이란 바다를 저어 가는 것이 고난이란 육신과 마음의 돛대다.


내게 우연히 다가온 글쓰기를 모아 놓고 직장을 퇴직하기 전에 첫 수필집을 발간했다. 『세종청사에서 맞이한 이순의 봄』이란 수필집에는 약 오십 편의 글이 실려 있다.


출간한 책에 담긴 수필을 하나하나 읽어보면 많은 것이 부족하고 서투르다. 직장에 다니면서 여기저기서 느끼며 봄을 맞이한 소회와 정서를 쓴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글쓰기가 이렇게 어렵고 고되고 힘든 것인 줄 몰랐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을 때는 글쓰기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는데 직접 글을 써서 책으로 묶어 출간해 보니 정말로 글쓰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후손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많다.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반드시 책 한 권을 남기고 가라는 말을 이곳에 남겨둔다.


글은 사고의 깊이를 더해주고 성찰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만나게 해 준다.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올곧게 형성해 주는 것이 글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글로 표현해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옷을 벗는 것과도 같다. 사람이 걸친 옷을 벗으면 새로운 세상이 기다린다. 옷을 걸쳤을 때와 벗었을 때의 차이는 사고의 뒤바뀜이다.


글을 쓰는 일도 같다. 글을 쓰지 않을 때와 글을 쓸 때의 차이는 사고의 뒤바뀜이다. 사고가 뒤바뀌는 것은 마음의 천지개벽이다. 글은 생각의 틀을 바르게 잡아주는 도구이자 수단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가족과 친구와 직장의 동료는 피할 수 없는 인연의 업보다. 삶에서 만남이 인연이듯이 인연 또한 새로운 만남과 이별을 예고하는 또 다른 연결고리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나 생을 누리며 살아온 것도 인생의 선물인데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 모두 아름답게 삶의 희망가를 부르며 살아가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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