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창

by 이상역

과학기술 발달로 글을 쓰는 도구가 다양해졌다. 글은 종이에만 손으로 쓸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린 것은 컴퓨터 개발 등 지식정보화 시대를 맞이해서다.


정보화 시대를 맞아 글을 쓰는 도구가 종이에서 컴퓨터나 노트북으로 확대되었고, 통신문화가 발전하면서 휴대폰에 글을 쓰는 시대로 진화했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글은 사람에서 컴퓨터도 쓸 수 있다는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글은 머릿속 생각을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말을 하면 그 말이 그대로 글로 나타나는 시대로 변해간다.


사람의 생각을 대체하는 인공지능이 개발되면서 소설이나 시나 수필은 사람만이 쓰는 것이 아닌 인공지능이 쓰는 시대로 변모하게 되었다.


물론 글은 누가 생각해서 쓰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 인공지능이 사람 대신 소설이나 시나 수필을 쓰게 될 경우 글쓰기 영역에서 사람의 역할은 줄어들고 인공지능의 역할이 늘어나는 시대가 도래할 것 같다.

나는 주로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이용하여 글을 쓴다. 볼펜을 들고 종이에 글을 쓰는 것은 잊은 지 오래다. 손으로 종이에 글을 쓰면 손가락도 아프고 수시로 고쳐 쓸 수 없어 거의 쓰지 않는다.


그리고 글은 쓰는 환경에 따라 글의 완성도가 다르다. 휴대폰에 글을 쓰면 화면의 범위와 좁은 환경이란 제한으로 글의 단락이나 전체적인 내용과 줄거리를 볼 수 없어 문맥의 흐름을 놓치기 쉽다.


아울러 노트북을 사용해도 마찬가지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서 화면에 글을 쓰면 글의 문장이나 단락은 파악되는데 전체적인 내용과 흐름을 들여다볼 수 없어 사고의 제약이 따른다.


따라서 휴대폰이나 노트북의 화면에 글을 쓸 때는 항상 쓴 글을 종이로 출력해서 글을 읽고 수정한다. 출력된 종이를 들고 읽으면 전체적인 내용이나 단락과 문맥의 연결 등 글의 윤곽이 보인다.


휴대폰 화면에 글을 쓰면 단어나 문장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고, 노트북 화면에 글을 쓰면 문장이나 단락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해서 문맥의 전체적인 흐름 등을 파악할 수 다.


글을 쓰는 사람의 시야는 눈앞에 보이는 화면과 범위에만 충실한 것 같다. 휴대폰 화면을 볼 때는 휴대폰이란 제한된 환경만 생각하게 되고, 노트북 화면을 볼 때는 노트북이란 화면만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쓴 글을 종이에 출력해서 읽으면 시야를 가리는 환경이 사라지고 사방 주위가 열리면서 글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흐름이나 배경 등을 생각하게 된다.


글을 쓰는 창은 사방 주위가 활짝 열린 환경에서 써야 제대로 된 글이 나온다.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쓴 글을 종이에 출력해서 전체적인 내용을 보고 다듬는 퇴고의 과정도 중요하다.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휴대폰이나 노트북 화면에 글을 쓸 때는 반드시 쓴 글을 종이로 출력해서 전체적인 내용을 읽어보는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된 글이 완성된다.


요즘 직장을 다니던 시절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낸다. 나이 들어 글쓰기를 배우러 다니는데 이제까지 배우던 글쓰기와는 차원이 다른 강의를 들어서다.


지금껏 강사에게 글쓰기 이론과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지도법이 아닌 수필의 정형화된 틀에서 글을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


물론 글쓰기 기법에 대하여 어떤 지도법이 맞다 맞지 않다 하는 기준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글도 일정한 틀을 만들고 그 틀에서 쓰고 교정하고 퇴고하는 법을 수강하면서 깨달은 점도 많다.


나는 지금까지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글은 편지 쓰듯이 쉽게 쓰라고 하는 작법에 따라 편지를 쓰듯이 글을 써왔다.


하지만 최근 글쓰기 강의를 들으면서 수필 작법 <제목, 서두, 본문(1 소재+느낌, 2 소재+느낌, 3 소재+느낌), 결미(의미부여)>에 맞추어 수학의 공식처럼 글 쓰는 법을 익히고 있다.


수필을 현대적인 작법에 맞추어 체계적으로 쓰는 것은 쉬운 듯 하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다. 수필도 소설을 쓰듯이 사전에 구상하고 얼개를 그려놓고 작법에 맞추어 써야 한다.


최근 글을 쓰는 창이 다양해졌다. 사람과 컴퓨터가 글을 쓰는 시대로 변해간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발전해도 인공지능이 소설이나 시나 수필을 쓴다 하더라도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글을 쓰는 창은 영원히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유영역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앞으로 시대가 발전하여 어떤 도구가 등장할지 모르지만 사람의 이성과 컴퓨터 이성은 근원적으로 다르다.


글을 쓰는 창도 사람의 영역을 넘어 인공지능 등장으로 소설가나 시인이나 수필가가 사라지는 날이 언제 도래할지 모른다. 그런 생각에 글을 쓰는 손이 파르르 떨리며 갈피를 잡지 못한다.


오늘따라 글을 쓰는 것이 힘들기만 하다. 내가 생각한 것을 다른 누군가가 대신 생각해서 밖으로 표출할 수 있다는 현실이 도저히 믿을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어 마음만 뒤숭숭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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