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물러나자 마땅하게 할 일도 나이 들어 받아주는 곳도 새로운 취미를 찾아 즐길만한 것도 없다. 인생의 후반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고 하는데 그간 살아온 삶의 흔적을 글로 남기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에 글쓰기 강좌를 등록했다.
봄기운이 완연해지자 사방에 봄꽃이 만발했다. 겨우내 죽은 줄로만 알았던 고목에 핀 꽃이 아름답다. 나무는 때가 되면 꽃을 피우는데 사람도 때가 되면 꽃을 피우며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 사람과 나무가 다른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누가 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늘따라 눈의 시선이 나도 꽃이요 하고 손을 흔드는 어린나무 보다 고목으로 향한다.
뒤늦게 글쓰기를 배우려니 설렘이 일지만 나이 들어 글을 쓴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사고와 생각이 나무의 둥치처럼 굳어져 젊은 시절만큼 왕성하게 받아들이며 배울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고목과 어린나무에 꽃이 피었지만, 자태와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고목의 둥치는 바람에 휘어진 채 가지를 사방으로 뻗어 그 끝에 꽃을 피웠다. 나무껍질은 거무스레하고 모진 세월을 견뎌낸 둥치와 가지에서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배어난다. 그에 비해 어린나무에 핀 꽃은 성장통에 겪는 흔들림과 살아남기 위한 생의 치열함이 엿보인다.
사람도 나이 들면 추레함보다 아름답게 보여야 한다. 나이 들어 추레하면 그것보다 더 추한 것은 없다. 사람도 넉넉하고 은은하게 꽃을 피워야 인생이란 환희의 꽃이 피어난다.
나도 어느덧 이순을 넘어 고목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그간 삶을 여유롭고 넉넉하게 살아왔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의 거친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성장통을 겪으며 살아온 것 같다. 글쓰기를 배우는 것도 온갖 시련과 고통을 겪으며 성장해 가기를 바랄 뿐이다.
고목이 꽃을 피우는 것은 자신의 온 존재를 드러내는 생명의 치열함이다. 꽃은 피고 지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며 희로애락을 겪는다. 그러고 보면 나무는 참 공평한 삶을 산다. 고목이나 어린나무나 꽃을 피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성장하니 그보다 아름다운 화양연화는 없을 듯싶다.
늦은 나이에 글쓰기를 배워 세상에 이름과 흔적을 남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꽃이 피고 지면서 열매로 승화하듯이 뒤늦게 시작한 글쓰기도 피고 지면서 아름다운 과실로 맺어지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글쓰기를 통해 지나간 삶의 화양연화 시절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고목이 꽃을 피운 것을 알지 못하듯이 사람도 생명의 꽃을 피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고목이나 사람이나 아름답게 바라봐주는 것은 자신이 아닌 타인이다. 나도 남들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멋진 글을 써서 인생의 후반기를 꽃피워 보고 싶은 따뜻한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