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이란 느긋한 기분으로 한가로이 걷는 것을 말한다. 산책은 번잡한 시간을 벗어나서 공원이나 천변이나 오솔길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걷는 것이다.
요즈음 손주를 데리고 공원에 산책하러 종종 나간다. 손주의 건강도 증진시키고 사물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발로 밟으면서 온몸으로 자연과 교감하며 느껴보게 하기 위해서다.
지난주부터 손주의 손을 잡고 건너편 아파트 단지를 지나 두댐이공원의 오솔길을 아장아장 거닐면서 손주에게 공원에서 자라는 나뭇잎이나 풀잎 등을 손으로 만져보게 하고 있다.
두댐이공원은 작지만 손주가 걷기에 좋고 공원 조성도 잘 되어 있다. 비록 손주와 산책 아닌 산책을 한다지만 거의 할아버지 품에서 걷는 것이 반이다.
손주가 아직은 걸음마를 잘하지 못해 걷다가 안아달라고 하면 안고 걸어가야 한다. 그렇게 손주와 오솔길을 걸어가면서 걷는 것과 안아 주는 것을 두고 손주와 말씨름을 하다 보면 산책을 즐길 시간도 여유도 없다.
할아버지는 손주를 안고 가다 걸어가도록 품에서 내려놓기 바쁘고, 손주는 반대로 조금 걷다가 힘들다고 안아달라며 할아버지 두 다리를 집고 앞길을 가로막기 일쑤다.
손주가 홀로 걸을 수 있게 자주 땅에 내려놓고 걸어가라 하는 것인데 손주는 할아버지의 의지와 반대로 걷지 않겠다고 "안아 안아"하며 떼를 쓰며 안아달라 애원한다.
그렇게 손주와 걷는 것과 안는 것을 두고 팽팽한 신경 전을 벌이다 보면 어느새 두댐이공원 산책도 끝이 난다. 산책은 여유롭게 즐겨야 하는데 손주와는 여유로움이 아닌 세대 간 신경전과 눈치싸움이 되어버린다.
신록의 계절 오월은 봄에서 여름으로 접어드는 달이라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때다. 어쩌면 손주와 산책하는 것도 시절인연을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 젊음을 불태웠던 직장에서 몰러나 집에서 쉬고 있는데 때마침 손주가 태어나서 할아버지와 걸어 다니는 호시절을 누리고 있으니 이것도 인연이 아니던가.
내가 애를 태우며 손주를 만날 수 있게 기도한다고 손주를 만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손주가 자라서 나를 만나러 오기를 기다린다고 다가올 손주가 아니다.
사람의 만남은 때가 되고 시기가 되어야 성숙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손주도 자라서 할아버지를 만날 시기가 되고 할아버지도 때가 되어 직장에서 물러나 손주를 만난 것이다.
손주와 두댐이공원을 산책하는 것도 할아버지와 만남을 승화시키고 손주가 더 성숙해지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지켜보라는 간절함의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손주와 산책할 때 손주가 바라보는 세상과 할아버지가 바라보는 세상의 창은 서로 다를 것이다. 서로 다른 창을 같은 창을 통해 바라보도록 해방구 역할을 안내하는 연결점이 산책이 아닐까.
할아버지는 손주의 건강과 세상과 소통하는 창을 안내하기 위해 산책을 가는 것인데 손주는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다른 세상과 넓은 세상을 만나기 위해 할아버지 손을 잡고 따라나서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록이 익어갈수록 초록이 짙어지는 것처럼 손주와 산책이 거듭될수록 만남의 인연도 짙어지기를 기대한다. 손주도 무럭무럭 성장해서 할아버지와 산책을 즐기는 날이 다가오기를 바라며 하루의 인연을 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