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부터 직장에 근무하면서 틈틈이 글을 써왔다. 내가 쓴 글이 어떤 형태의 글인지는 따지지 않았다. 그저 감정이 가는 대로 생각이 나는 대로 글을 썼다.
어떤 목적과 이유를 정하지 않고 글을 쓰다 보니 글이 체계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사색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대상으로 목적성을 띈 글도 아니다.
지금도 어떻게 쓸 것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직도 명쾌하게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직장에 출퇴근길이나 천변을 걷거나 가벼운 산책을 하는 중에 떠오른 감정과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날그날 일상에 대한 감상과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해서 노트북에 표현해 보는 중이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글은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하는 것들은 배우지 않았다. 글은 배운다고 써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 어떠하냐를 정리해서 표현하는 것도 글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감정과 생각이 다르듯이 글도 쓰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각자 다르다. 글이 사람의 특성을 반영하듯이 감정이나 생각도 그 사람의 특성을 반영하는 영역이다.
아침에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집에 돌아와 책상에 앉아서 생각했던 것을 정리해 가면서 글을 쓰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글에 대한 구상과 얼개가 정리되면 그대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런 글쓰기가 얼마나 글을 쓰는 힘을 길러 줄지는 생각 해보지 않았다. 남들이 쓰니 나도 쓴다는 것은 아니다. 남이 글을 쓴다고 나도 글을 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글쓰기 재능은 없을 듯싶다.
글에 논리와 철학과 체계적인 생각이 전달되지 않아 글을 읽는 분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갖게 될지 가늠해 본 적은 없다. 나름 그때그때 생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해 보는 것인데 그것을 놓고 왈가왈부할 생각도 없다.
내 글이 읽는 분에게 어떤 생각과 어떤 전달력을 갖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저 붓 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과 단어를 손가락에 전달해서 그려내는데 열중할 뿐이다.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 화두나 마찬가지다. 스님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어떻게 깨우칠 것인가에 대한 화두처럼 어떻게 쓸 것인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 가져야 할 깨우침이 아닐까.
글쓰기 이론에서 글머리는 이러하고 주제와 소재는 어떻게 배치하고 결론은 어떤 식으로 하라는 것은 이론일 뿐 본질인 글쓰기에 들어가면 서두나 본문이나 결론에 대한 문법 의식은 하얗게 사라지고 만다.
글쓰기 이론은 그저 이론일 뿐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하여는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글쓰기 이론에 해박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열심히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글이 먼저냐 문법이 먼저냐는 일단 쓰고 나서 이러저러하다 해야지 글을 쓰지도 않고 서두가 어떠하다 본문이 어떠하다 단어나 문맥이 어떠하다는 식의 이론은 가치가 없다.
글을 쓰는 힘은 그날에 일어난 감정이나 생각에 대한 실행이자 실천력이다. 평소에 아무리 많은 감정과 생각이 떠올라도 그것을 글로 표현하지 않으면 그냥 공중으로 사라지는 연기와도 같다.
그날그날 사라지는 감정과 생각은 며칠 지나면 영원히 소멸한다. 따라서 그날그날 떠오른 감정과 생각을 글로 표현해 두면 그 글은 영원성을 갖게 되고 새로운 감정과 생각으로 태어난다.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이론이 아니라 그날의 감정과 생각을 어떻게 표현해서 기록할 것인가가 답이 아닐까. 글을 쓴 후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도 글쓰기의 한 방편이란 생각이 든다.
노트북 앞에 앉는다고 글이 저절로 써지는 것은 아니다. 글도 동기와 원인에 의해 문장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태어난 글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의 열정과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아직도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에 어느 정도 해법은 제시되었다고 생각한다. 글은 써본 자만이 누리는 마음의 평안이자 향유다.
어떻게 쓸 것인가는 글을 써놓고 생각하는 대상이지 글을 쓰지 않고 생각만으로 답을 얻을 수는 없다. 오늘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고민보다 먼저 생각나는 것을 글로 표현해 볼 것을 적극 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