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일까. 젊은 시절에는 피우고 싶은 삶의 꽃을 위해 직장에서 보내고, 나이 들어 물러나자 은퇴한 삶의 한가함 속에 외로움이 찾아온다.
인생의 전반기에는 성공과 꿈을 이루기 위해 공직에 몸을 담고 생활했지만, 가는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 옛말처럼 지금은 인생의 후반기인 은퇴생활을 하고 있다.
공직생활 하던 시절에는 사회공동체 일원으로 소속감을 갖고, 주어진 임무를 성취하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며 힘들면서도 행복해했다.
그러나 은퇴한 삶에는 오라는 친구도, 재취업할 곳도 없다. 직장의 은퇴로 소속감이 없어지자 홀로 존재한다는 생각에 고립감과 외로움만 가득해진다.
그 텅 빈 삶의 공간에 문학이란 친구를 담아보고 싶어졌다. 젊은 시절이라면 문학의 꽃을 맘껏 피울 수 있을 텐데. 나이 든 고목이 되고 보니 문학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그런 두려움 앞에 어디선가, “인생아,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꿈에 도전하라.”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고목이 된 삶 속에서 문학의 꽃을 피워 외로움을 채워보고자 용기를 내었다. 나이 들어 만나고 싶을 때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문학이란 친구. 지난 삶 속에 쌓이고 쌓인 이야기를 모아 남은 인생을 노래하며 살고 싶다.
오늘은 문학을 배우려 가는 첫날이다.
둥지를 나서 문학 공부하러 가는 길목에는 겨우내 죽은 줄로만 알았던 고목에 핀 꽃이 아름답기만 하다. 어린 나무에 핀 꽃은 성장통을 겪는 흔들림과 살아남기 위한 삶의 치열함이 엿보인다.
그렇지만 고목은 바람에 휘어진 채 가지를 사방으로 뻗어 그 끝에 꽃을 피웠다. 나무껍질도 거무스레하고 모진 세월을 견뎌낸 둥치와 가지에서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배어있다.
나도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물러나자 어느덧 이순을 넘은 고목이 되어 간다. 고목처럼 삶을 여유롭고 넉넉하게 살아온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의 거친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성장통을 겪으며 살아온 것 같다.
“저, 고목은 내년에도 다시 꽃을 피울 수 있는데, 나도 고목처럼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나를 다시 생각해 본다. 비록 늦게 시작한 글쓰기지만, 글다운 글을 써서 고목이 짙은 향기로운 꽃을 피우듯이, 나도 좋은 문학인이 되어 옅은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다.
고목에 핀 꽃처럼 남은 인생을 살아가련다.
젊은 시절에 아무리 삶을 잘 보냈다고 해도 나이 들어 잘 못 보낸다면, 그 자체로 평가를 받게 된다. 나이 들어 삶이 추해지면 그것보다 더 추한 것은 없다.
젊음이나 나이 듦이나 세상을 살아가고 살아온 시간만 다를 뿐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은 같다. 사람도 고목처럼 넉넉하고 은은하게 꽃을 피워야 좋은 인생으로 사는 것이다.
이제는 나이를 탓하지 않고 '나의 삶, 나의 인생을 담는 그릇인 수필가'로서, 좋은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 고목이 된 삶 속에서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인 ‘화양연화’를 즐기며 삶을 누리는 것이다.
고목의 삶에서 찾아온 외로운 공간을 문학으로 채워보리라. 고목이나 나이 든 사람은 외로움이란 공간을 달고 산다. 그렇지만 고목은 세월을 탓하지 않고 늦은 나이까지 꽃을 피우고 향기를 뿜어낸다.
나도 고목에 핀 꽃처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좋은 글을 써서, 인생의 후반기에 삶을 꽃피우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