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숲

by 이상역

아침에 산책하려고 구봉산에 들어서자 유월의 숲이 묵직해졌다. 어느덧 계절의 여왕 오월이 물러나고 유월이 시작되었다. 그간 숲에 들어가서 나무를 바라보면 나뭇잎 사이로 하늘이 하늘하늘 보였다.


유월이 되자 나뭇잎 사이로 하늘이 듬성듬성 보이고 신록이 짙어지고 우거져 숲도 무겁고 듬직해졌다. 봄꽃이 피었다고 찬양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꽃도 지고 녹음이 우거졌다.


우리들 곁에 머무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바람도 사람도 세월도 잠시 머무르지 않고 강물처럼 앞을 향해 흘러간다.


유월이면 한해의 절반이 사라져 버렸다. 그동안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 것일까.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남은 흔적이 아무것도 없다. 그저 바람과 시간을 타고 세상을 떠돌며 살아온 것 같다.


요즈음 구봉산에 들어설 때마다 뻐꾸기가 "뻐꾹뻐꾹"울면서 반갑게 맞아준다. 도시에서 뻐꾸기 우는 소리를 듣는 것도 신기하지만 뻐꾸기 우는 소리를 듣노라면 고향에서 보낸 시절이 떠오른다.


고향에서 뻐꾸기 우는 시기는 가장 바쁜 농번기다. 새벽에 모판에 나가 모를 찌고 아침 겸 새참을 먹고 여기저기 자리한 논에 모를 날라 종일토록 모를 심었다.


그리고 저녁에 모내기를 마치고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상엿집이 있는 비석거리를 올라갈 때면 산자락에서 "뻐꾹뻐꾹" 우는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고향집으로 걸어가던 시절이 생각난다.


뻐꾸기는 늦봄에 찾아와 여름을 안내하는 새다. 철새인 뻐꾸기가 오월쯤에 찾아와 "뻐꾹뻐꾹" 삼 개월 간 울면서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다가 무더운 여름날에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도시의 변두리에 살면서 뻐꾸기 소리를 아침마다 들을 수 있어서 참 좋다. 고향에서 자라던 시절 앞산이나 옆산에서 아침마다 뻐꾸기 우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러던 뻐꾸기가 나를 잊지 못해 찾아온 것인지 아침마다 구봉산을 찾아가면 "뻐꾹뻐꾹"하면서 울어준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익명의 도시에서 나를 알아주고 기다려주는 것은 뻐꾸기 밖에 없는 듯하다.


구봉산 능선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면 뻐꾸기가 "뻐꾹뻐꾹"하면서 산책을 나왔느냐고 인사를 한다. 그렇게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뻐꾸기 소리가 마치 산사의 풍경소리처럼 잔잔하게 들려온다.


아침부터 뻐꾸기가 반갑게 인사하면 나도 인사를 건네기 위해 휘파람으로 "뻐꾹뻐꾹" 소리를 내면 뻐꾸기가 잠시 울음을 멈추고 누군가 하고 주변을 살펴보고는 다시 소리 내어 울어댄다.


유월의 숲에 들어서면 기분이 상쾌하고 기분이 좋다. 숲에 들어서는 나를 뻐꾸기가 반겨주며 울어대고 나무마다 울창한 나뭇잎을 달아 그늘을 만들어 주니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다.


유월은 나무는 나무대로 뻐꾸기는 뻐꾸기 대로 사람은 사람 대로 각자의 숲을 만들어 간다. 그런 유월의 숲이 좋은 것은 세상 어딜 가나 새들이 노래하고 바람 따라 떠도는 나그네를 반갑게 맞아줘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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