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의 만남에는 설렘을 동반한다. 고향의 부모나 형제를 만나든 연인을 만나든 그 만남에는 기대와 설렘과 크고 작은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삶은 만남에 의해 시작되고 가족 간의 관계와 사회적 유대가 형성된다. 그중에 손주와 만남은 새로운 관계의 탄생이자 가족에게 기쁨과 희열과 생의 희로애락을 생산하는 뿌리와의 만남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손주가 태어나자 일상과 생활이 달라졌다. 가족의 시선과 촉각은 온통 손주의 몸짓과 언어와 움직임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날이 많아졌다.
요즈음 한 주에 두세 번은 손주를 보러 간다. 손주와 내가 사는 곳은 거리로 약 6킬로 정도다. 손주를 보러 가는 날은 나와 아내의 움직임과 행동은 다른 날보다 바쁘게 돌아간다.
나는 손주를 안고 밖에 나가기 위해 운동 삼아 가벼운 등산을 가고 아내는 아침부터 손주의 먹을거리를 챙기기 위해 음식을 만드느냐 분주해진다.
등산을 마치고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면 손주가 먹을 음식의 냄새가 솔솔 피어난다. 아내는 남편이 먹는 음식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데 손주가 먹을 음식은 온갖 정성과 치성을 다해 준비한다.
그렇게 아침부터 아내가 음식을 만드느냐 소란을 떨고 나서 손주에게 가져갈 음식과 고구마나 수박 등을 가방에 챙기면 손주를 보러 갈 준비도 끝이 난다.
물론 손주 엄마인 딸이 손주를 잘 챙겨 먹이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음식을 챙겨주는 것이다. 그런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마음을 손주가 자라서 조금이나마 알아주기를 바란다.
양손에 가방을 챙겨 들고 문을 열고 나서는 마음이 여느 날보다 든든하다. 손주가 먹을 것을 들고 나서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이처럼 설레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숱한 만남이 있었지만 손주와 만남을 생각하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얼굴은 나도 모르게 엷은 웃음이 피어난다.
손주와 만남은 그 자체에 의미도 있지만 날마다 새로운 모습과 새로운 얼굴과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는 행동과 모습이 귀엽고 신비스럽기만 하다.
주차장에 내려가 가방을 차에 싣고 차의 시동을 걸면 운전대 앞 유리창에 손주 얼굴이 아른거린다. 손주는 그저 머릿속에 생각만 해도 웃음과 행복을 선사하는 선물과도 같은 존재다.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와 대로에 들어서면 손주가 사는 곳을 향해 기대감을 안고 간다. 고향에 가는 길보다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길보다 손주를 만나러 가는 길이 더 가슴을 부풀어 오르게 한다.
내가 언제 이렇게 어떤 대상에 흠뻑 빠져 본 적이 있었던가. 젊은 시절 시험을 보기 위해 여러 해를 공부하며 책에 빠져든 것 말고는 어떤 대상에 애가 타도록 빠져든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손주를 만나러 가는 길은 세상이 참 밝아 보이고 산자락의 초록은 더 짙어 보인다. 대로변에 선 아파트와 빌딩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인사를 건네고 옆 차선으로 달려가는 차들의 행렬이 오늘따라 다르게만 다가온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벌써 오월의 마지막 날이다. 신록의 계절 오월처럼 손주도 싱그럽고 푸르게만 자랐으면 좋겠다. 손주와 내가 만난 지도 어느덧 일 년 팔 개월이 되어간다.
그간 손주와 무엇을 나누며 살아왔을까. 이것저것 생각해 보니 참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현재 만나는 손주의 모습이 가장 귀엽고 자라온 시간은 저 멀리 언덕으로 사라져 간다.
그렇게 차를 운전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손주가 살고 있는 집이 나온다. 그나마 손주와 이렇게 한주에 두세 번 만날 수 있게 해 준 것에 감사드리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가 손주를 보고 싶다고 해고 손주를 만날 수 없으면 그만이고 손주가 할아버지를 보고 싶다고 해도 할아버지 사정으로 만날 수 없으면 서운함과 애절함과 그리움만 성장시킬 것이다.
손주가 사는 곳에 차를 주차하고 나면 으레 맑고 푸른 하늘을 한번 올려다본다. 그리고 주변에 자라는 울창한 나무들을 바라보며 변화된 것이 없는지 한번 쓱 둘러보고 손주가 사는 곳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간다.
손주를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초등 시절 소풍을 가는 것처럼 가슴을 들뜨게 하고 두근거리고 만남이 기다려진다. 내 인생에서 이런 행복을 누리는 것도 어쩌면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 아닐까.
내일도 모레도 오늘처럼 손주를 보러 가는 길에는 맑고 푸른 하늘이 펼쳐지고 푸르고 싱싱한 신록이 반갑게 맞아주는 날이 되기를 기도하며 손주가 살고 있는 문을 살포시 열어젖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