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쓰기

by 이상역

최근 구민회관에서 진행하는 수필 쓰기 강좌를 수강 중이다. 수필이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현대 수필 작법에 맞추어 쓴다는 것을 배우자 수필 쓰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수필은 생각과 감정에 이끌려 붓 가는 대로 쓰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필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작법에 맞추어 쓰려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치 노래를 부를 때 박자에 맞추어 첫 소절은 어디서 시작하고 감정은 어떻게 잡고 불러야 한다고 가르치면 노래도 어렵게 다가온다.


수필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주제와 서두를 잡고 본문은 세 개의 소재별로 나누되 느낌과 깨달음을 전개하고 결미에 의미부여를 쓰는 것이라는 작법을 가르치가슴에 와닿지를 않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써 온 글을 수필 작법에 맞추어 합평과 비평을 하다 보면 어렴풋이 수필은 어떻게 써야 한다는 개념이 정립된다. 그다음은 작법에 따라 어떻게 쓰고 중간중간에 느낌과 마무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순차적으로 대두한다.


수필은 누구나 쓰는 것이 아니냐고 말은 하지만 막상 노트북 화면 앞에 앉으면 생각이 막히고 글이 가는 방향성을 잃는다. 그렇게 한두 번 글을 쓰다 보면 서서히 수필도 쓰는 실력이 향상된다.


수필 쓰기 작법은 누구에게 배웠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필은 홀로 열심히 쓴다고 느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문우들과 합평과 비평도 해가며 자신의 글쓰기를 가늠해봐야 한다.


오늘도 수필 쓰기 작법에 대하여 두 시간을 배웠다. 문우가 써 온 글을 보고 합평과 비평하고 강사의 생각과 수필 작법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수필은 어떻게 써야 한다는 방향성은 읽었다.


수필 쓰기는 3개월 과정인데 3개월 만에 마스터할 수는 없다. 수필도 다른 영역의 글과 같이 열심히 쓰면서 합평과 비평도 받고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어떻게 읽고 생각하느냐를 깨달아야 한다.


내가 수필 쓰기 강좌를 수강하는 이유도 그와 같다. 내 글에 대한 다른 문우의 생각과 강사가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느냐가 중요하고 그것을 토대로 글이 갈 방향을 잡고 다듬어 써야 한다.


수필은 한 작품을 썼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써야 한다. 수필 쓰기는 한 작품을 쓰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수시로 다른 작품도 쓰고 다듬으면서 이어가는 것이 생명이다.


수필가로 등단하는 것은 수필 쓰기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수필 쓰기의 시작이다. 등단을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다 등단한 후에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수필가의 길마저 잃게 된다.


직장에 다니던 시절 수필 쓰기 강좌를 다녔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수필 쓰기 강좌를 수강하러 가는 길어 멀어 고생했는데 중도에 하차하고 말았다.


중도에 하차한 이유는 그 강좌를 들으면서 수필을 쓰는 이유와 내가 수필을 써야 하는 정체성을 잃게 되었다.


당시 강사는 수필에 대한 이론도 실전을 가르치지 않았다. 게다가 거리도 멀고 시간이 없어 그만두려 했는데 강사가 가르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핑계로 그만두었다.


최근 구민회관에서 듣는 강좌는 수필 쓰기 이론과 실전 작법이 국어의 문법처럼 틀에 정해져 있어 배움이 수월하다. 수필도 어떤 강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발전이 결정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수필이랍시고 공모에 몇 번 응모했는데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수필의 기본적인 작법도 갖추지 않고 응모했으니 보나 마나 심사 위원이 읽지도 않고 버렸을 것 같아서다.


수필은 글 내용도 중요하지만 현대적인 수필 작법에 따라 썼느냐가 첫 번째다. 그다음은 수필 작법에 맞게 쓴 것 중에 신선한 주제를 선정하여 적당한 소재로 글을 잘 썼느냐다.


수필 쓰기 강좌를 들으면서 작법은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막상 작법에 맞추어 글을 쓰려고 하면 앞길이 턱턱 막힌다.


아마도 그 이유는 어떤 이야기를 주제 삼아 소재를 잘 버무려서 쓰느냐 하는 실천력 결여와 삶에 대한 진정성을 담아 써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부족함이 수필을 쓰는 과정에 나타나서 그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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