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물러나고 나이 들고 보니 새롭게 즐길만한 것이 없다. 몸과 마음은 무거워지고 움직이는 것도 버거운데 무엇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벅찬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아직은 몸과 마음이 젊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하거나 무엇을 하기 위해 움직이려면 귀찮아지고 그런 것을 굳이 내가 해야 하나 하는 망설임과 두려움이 앞서면서 고민이 뒤따른다.
하지만 손주를 돌보는 일은 몸과 마음이 망설이거나 두려움이 앞서지 않는다. 손주와 얼굴을 맞대고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노는 일은 즐거움과 새대 간 소통을 나누는 동행을 동반한다.
요즈음 딸네집에 가면 손주를 데리고 밖에 나가 한 시간 정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들어온다. 손주의 몸 건강도 챙겨주고 다리 근육 힘도 길러줄 겸 건너편 아파트 놀이터나 근린공원에 가서 같이 걷고 뛰다 온다.
손주는 아직 잘 걷지도 뛰지도 못한다. 그런데 한번 뒤뚱거리며 달리기 시작하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다. 손주가 뛰어가면 넘어질지 몰라 같이 손을 잡고 뛰어가려면 손주는 내 손을 확 뿌리친다.
그리고는 혼자서 쏜살같이 앞을 향해 달려간다. 그런 손주를 뛰 쫓아 뛰어가면 손주와 내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달리기가 끝난 손주를 번쩍 들려 올려 가슴에 안으면 손주는 거친 숨을 새근새근 몰아쉰다.
손주가 숨을 몰아쉬면 잠시 진정시키기 위해 할아버지가 한참을 안고 걸어간다. 그러다 숨이 진정되면 다시 바닥에 내려놓고 걷기를 시킨다.
손주는 이십일 개월이 되어가는데 쑥쑥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대견하다. 엊그제는 손주에게 듣지 못했던 말을 들었다. 손주를 안고 가면 내게 "어디야", "어디가", "뭐야" 같은 단어로 묻는다.
손주와 달리기는 세대 간 소통이며 숨결의 나눔이다. 손주는 거친 들숨과 날숨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나는 손주의 숨소리를 들으며 세대를 넘어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손주와 한 시간 동안 밖에서 걷고 뛰다 들어와 맘마를 먹고 나면 이번에는 잠재우기에 나선다. 손주가 태어나서 첫해 동안은 할아버지가 어깨띠를 걸치고 재우는 것을 잘 따랐다.
손주가 성장하자 최근에는 할아버지가 어깨띠를 걸치기만 하면 잠을 자지 않겠다고 울거나 저항한다. 그러면 손주에게 경비할아버지 보러 가자거나 이삿짐 차 보로 가자고 유혹하면 쪽쪽이를 물고 따라나선다.
어깨띠에 손주를 앉히고 밖을 나와 십여분 정도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면 잠이 든다. 매번 잠재우기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잠이 들면 곧바로 딸네집에 들어가 낮잠을 재우면 두 시간 정도 잔다.
손주와 걷기나 달리기를 많이 한 날은 피곤해서 그런지 낮잠도 빨리 잔다. 손주에게 운동은 잠을 자게 하는 보약이나 다름없다.
손주가 낮잠을 자기 시작하면 떨네 집은 고요가 찾아온다. 그런 고요를 깨트리고 싶지 않아 문을 열고 나와 차를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마치 무슨 큰일을 한 것처럼 가슴이 흐뭇해지고 뿌듯한 기분이 들어찬다.
손주와 밖에 나가 언제까지 걷기와 달리기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손주가 원하는 날까지는 할아버지도 아직은 걷고 뛰어다닐 만큼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부지런히 몸 관리에 신경을 쓰려고 한다.